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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에서 자랐습니다 얼마나 신기 한지 모릅니다
▲ 벌어져서 빨간 씨들이 보입니다 화분에서 자랐습니다 얼마나 신기 한지 모릅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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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한 개가 총총하게 돋은 크고 작은 돌기들까지 아주 골고루 노랗게 물이 들면서 익더니 오늘 보니까 벌어졌습니다. 신기합니다. 거실 화분에서 여린 싹이 돋아났을 때만 해도 한 겨울이니까 비실거리다가 죽어버릴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그 중 하나가 노랗게 익어 빨간 씨들을 보이며 벌어진 것입니다.

겨우내 정성껏 가꾼 덕입니다. 남향집이라 거실에 들이친 햇볕이 좋은 편입니다. 키가 두 뼘쯤인가 자랐을 때 가느다란 덩굴손이 나오자 남편이 신통해 하면서 긴 나뭇가지 하나를 주서다가 지지대로 세워주었습니다. 신이 났던지 덩굴손으로 지지대를 감고 기어 올라가면서 자잘한 노란 꽃들을 피우더니 봄이 오는 소리를 들었나 봅니다. 암꽃이 달고 있는 열매들이 눈에 띄게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창 밖에서는 벚꽃이 구름처럼 피고 목련이며 진달래가 한창일 때입니다

귀엽고 예쁩니다
▲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귀엽고 예쁩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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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는 별로 크지가 않습니다. 재래종이기도 하지만 실내 화분에서 자랐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래도 한 여름에나 볼 수 있는 열매를 몇 달 앞 당겨 보는 즐거움을 자랑하고 싶어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여주 하나가 익어서 벌어졌지 뭐야."
"어머, 그때 그 싹이 죽지 않고 제대로 자랐나 보네."
"죽긴 왜 죽어."
"몇 개나 달렸는데?" 
"주렁주렁 달렸어.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몰라, 구경 와."
"알았어, 내가 가서 수확해야지."

순간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재빨리 물었습니다.

"수확? 무슨 말야?" 
"나 당뇨인거 알잖아! 여주에 식물인슐린 성분이 들어있대. 내가 여름만 되면 모란시장 가서 잔뜩 사오잖아. 지난여름에 썰어서 말려 둔 거 겨우내 다 달여서 먹고 하나도 없는데 잘 되었네." 

친구가 당뇨가 있다는 것을 깜박했습니다. 여주가 당뇨에 좋다면서 특히 덜 익어 푸른 것이 쓴 맛도 강하고 유효 성분도 아주 많다면서 여름만 되면 푸른 여주를 많이 사다가 썰어서 거실이며 발코니에 잔뜩 널어놓던 친구의 모습도 깜박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어떻게 가꾼 건데. 

"관상용으로 가꾼 거야 안 돼!"

그러자 친구는 말이 없더니 조용히 전화를 끊었습니다. 기분이 이상합니다. 툭하면 '어이, 삼십년 지기!' 하고 넉살좋게 나오던 친구가 조용히 전화를 끊은 것입니다. 내가 너무 했나. 이해 받지 못해 섭섭했을까. 아니면 평생을 같이 가야 하는 당뇨병이 원망스러웠을까.   

여주 달인 물이 인에 박힌 친구는 내가 여주 자랑을 한 순간 여주 달인 물 냄새가 훅 하고 맡아졌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관상용으로 가꾼 줄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내가 가서 수확해야지' 라는 말이 튀어 나왔을 것입니다.

암꽃은 열매를 달고 세상에 나옵니다
▲ 암꽃입니다 암꽃은 열매를 달고 세상에 나옵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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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꽃 역시 예쁩니다
▲ 숫 꽃입니다 숫꽃 역시 예쁩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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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입니다. 건강검진을 받은 친구가 전화로 '나 당뇨가 있대. 뭐 좋은 거, 약이 되는 뭐 없을까' 하고 민간요법을 물어왔을 때 나는 무조건 병원에 다니라고만 했습니다. 그때 친구의 목소리는 불안에 떨고 있는 듯 했습니다. 건강검진 결과에 충격을 받아도 아주 크게 받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이내 충격에서 벗어났고 당뇨관리를 잘 하고 삽니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면서 식이요법을 철저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합니다. 누가 봐도 아주 건강해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여주 달인 물을 권유하자 '보리차 먹는 셈 치고 먹지 뭐' 하였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여주 달인 물도 병원진료, 식이요법 운동과 함께 치유 희망을 주는 존재였습니다. 

한창 햇볕이 들이치고 있는 여주 화분을 돌아보았습니다. 주렁주렁한 여주들을 세어 보았습니다. 작은 것까지 열한 개나 됩니다. 그 열한 개를 만나기 위해 나름대로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를 모릅니다.

겨우내 햇볕을 따라 화분을 돌려주기도 하고 물도 맨 위에 흙이 마르기 바로 직전에 주었고 꽃이 피면서는 숫 꽃을 따서 숫 수술 꽃가루를, 열매를 달고 세상에 나온 암꽃 수술에 묻혀주곤 했습니다. 더러는 열매가 자라다가 노랗게 말라 죽기도 했습니다. 암꽃 보다 숫 꽃이 더 많았습니다. 덩굴이며 열매가 튼실해 지라고 번번이 숫 꽃을 솎아 내기도 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왕성하게 벋어 나오는 새 덩굴가지도 많이 잘라주었습니다

천장까지 닿으려나 봅니다
▲ 왕성합니다 천장까지 닿으려나 봅니다
ⓒ 김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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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전화를 끊은 친구의 마음을 짚어 보았습니다. 여주 달인 물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것까지 남김없이 모두를 친구에게 주어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손으로 딸까 하다가 덩굴도 여주도 상처내지 않으려고 가위를 찾아 들었습니다. 덩굴은 왕성하게 계속 퍼지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들을 맺을 것입니다. 덩굴의 수명이 언제까지인지는 몰라도 여주들이 시장에 나오는 여름이 올 때까지는 가꾸는 재미를 즐기면서 친구에게 인심을 제법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태그:#여주 , #벌어져서 빨간 씨들이 보입니다, #왕성한 덩굴, #열매를 달고 세상에 나온 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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