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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5일 오전 9시 41분]

애초 계획하지 않았던 방문이었다. 원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계획(일본, 말레이시아, 필리핀)에 한국은 빠져있었다. 지난해 10월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부분 기능정지) 때문에 취소됐던 아시아 4개국(말레이시아·필리핀·인도네시아·브루나이) 순방을 살려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여,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18년만에 일본을 국빈방문하기로 하자, 우리 정부도 뛰어들었다. 일본만 가고 한국이 빠질 경우 오바마 행정부가 노골적인 우경화 행보를 하고 있는 아베 정부를 지원하는 것으로 비춰진다고 설득했고, 결국 그의 네 번째 방한이자, 박 대통령과 세 번째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이다. 정부와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 외교의 승리'라고 평가했지만, 그의 이번 방문은 여러 면에서 부담스럽다.

핵심은 역시 북한 핵 문제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4차 핵실험을 예고했다. 지난 23일 국방부는 북한이 핵실험 준비를 마쳤다고 밝히면서, "(현 단계를) 한미 정보당국이 똑같이 보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결심여부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 체류하는 25~26일 중에도 핵실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북 강경 발언할 수 있는 조건·분위기 조성돼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지난 3월 25일 오후(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미대사관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지난 3월 25일 오후(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미대사관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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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하순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키리졸브와 독수리연습에 대응해 북한은 단거리 로켓과 방사포를 대량 발사했고, 이어 3월 25일에는 노동미사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6일 뒤인 31일에는, 한미가 21년 만에 최대규모로 벌인 상륙훈련(쌍용훈련)을 공개하자 북한은 서해 NLL(북방한계선) 이남으로 해안포와 방사포 100여 발을 발사했고, 이에 대해 남측도 대응사격을 해 군사적 긴장도가 크게 높아졌다. 거기에 '무인기 사건'까지 발생했다.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아래 사실상 북핵 문제 해결을 방기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의 태도 역시 여전하다. 오바마 대통령 자신이 지난달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 시절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추동해서 북한에 제기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다시 북한에 요구하고 나섰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지난달 26일 "북한은 악"이라며, 북한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또 지난 11일 한국 정부 고위당국자가 "비핵화 사전 조처 없어도 북한과 대화가능하다"고 밝혔으나, 미국은 "말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북한의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이를 일축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이 서울에 와서 북한에 대한 강경 발언을 할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는 상황이다.

"미국, 한국이 MD 참여해야 북핵문제 해결 나서나..."

북미관계를 오랫동안 관찰해온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서울에 와서 북한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는 "경제력이 약화되고 있는 미국은 동맹국들의 도움아래 중국과 경쟁하는 것이 핵심전략이고, 이런 기조아래 한미 간 공조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며 "오바마 대통령 집권 초기 미국 정부가 북핵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는 이미 사라졌고, 한국이 미국의 MD(미사일방어)체제에 확실히 참여하기로 한 다음에야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나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실제 오바마 대통령이 강하게 북한을 자극할 경우, '북한의 중장거리 로켓 발사→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 북한의 4차 핵실험→ 안보리 추가 대북 제재 결의→ 북한의 전시 상태 선언'같은 지난해 3월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은 이미 지난달 30일 외무성 성명에서 "보다 다종화된 핵억제력을 각이한 중장거리목표들에 대하여 각이한 타격력으로 활용하기 위한 여러가지 형태의 훈련들이 다 포함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국의 하와이, 괌 등을 사정권 안에 두는 중장거리 미사일인KN-08(사정거리 최소 6000km이상)과 무수단(3000~4000km) 등의 발사가능성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의 이번 아시아 순방에는 그 실체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에 대한 확인과 강조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중국의 급부상에 대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미국으로서는 '굳건한 한미일 3각동맹'이 긴요하다.

한미일 3각동맹 공고화 원하는 미국... 우리는 중국 의식할 수밖에 없어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 지원 입장을 분명히 하는 모양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중일 영유권 갈등지역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에 대해 "미일 안보조약 대상"이라고 일본의 손을 들어줬고, 중국이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또 한미일 군사보호협정을 원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MD와 관련된 것으로, 한미일 3각동맹 공고화를 위해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나가야 한다"며 한일관계 개선을 주문해온 오바마 행정부가 이번 방한에서 이와 관련해 어떤 요구를 해올지 주목될 수밖에 없다. 과거사 문제로 일본과 갈등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고, 중국의 반응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이 23일 '북한 핵실험 징후'를 고리로 시진핑 국가 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사전 양해'의 성격이 강해 보인다.

한국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참여 문제와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이행문제도 주요사안이다. 미국의 유력지인 <워싱턴포스트>가 "아시아 4개국 순방을 시작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과제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 진전"이라고 할 정도로 미국은 TPP에 힘을 쏟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TPP 공식 참여를 희망한다"고 밝혔으며, 현재 기존 참가국들의 승인을 위한 예비 협의들을 진행하고 있다.

TPP참여 지렛대로 '한미FTA 완전이행' 요구할까

결국 이번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방한이 한국의 TPP 참여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미국이 한국의 TPP 참여를 승인하는 조건으로 무엇을 요구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는 미국의 한미FTA 이행 요구와도 연결된다. 태미 오버비 미국 상공회의소 아시아 담당 부회장은 지난달 16일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방문 기간에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이행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며 "이행이 안 되는 협정은 종이로서의 가치조차 없다는 게 미국 산업계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3월 한국의 무역통계를 인용해 "FTA 이전 120억 달러였던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발효 첫 해 170억 달러, 둘째 해인 올해 200억 달러로 확대됐다"고 보도했는데, 오버비 부회장은 이런 맥락에서 한미 FTA 이행문제를 거론하고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한국의 TPP 가입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지렛대로 삼아, 자동차·금융·제약·의료장비·원산지규정·관세 등 분야에서 한미FTA 완전이행을 주문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계획에 없었으나, 우리 요청으로 방한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에게 내밀 청구서가 가볍지 않아 보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태그:#오바마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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