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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침몰 후 9일째인 24일 오늘까지 구조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바쳐 다른 이를 구조한 승객이나 승무원, 기타 기부 등으로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는 훈훈한 기사들이 눈에 띈다.

그런가 하면 구조 작업이나 원인 규명 관련 내용뿐만 아니라, 연일 누군가의 막말과 태도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 덕분에 더딘 구조작업과 반복되는 원인 규명 뉴스 외 자극적인 제목의 '세월호' 관련 기사도 많다.

또 세월호 침몰 사고가 아니었으면 더 큰 화제가 되었을 국내 일류 기업들의 사고도 방송을 탔다. 삼성SDS 과천 센터 화재며 현대중공업 선박 화재까지. 재산 피해뿐만 아니라 사상자가 나와 안타까움을 더했다. 삼성SDS 화재 사건은 삼성카드사의 데이터베이스 손상을 야기 시켜, 20일 화재 이후 23일까지 카드 결제에 무리가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복구 중이다. 그런데 23일, 이런 사고도 있었다.

KTX 열차 지연 "안전한 객실에서 대기하라"는데...

KTX 열차가 지나가고 있는 모습.
 KTX 열차가 지나가고 있는 모습.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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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1시 서울을 출발해 부산을 향하던 KTX 139번 열차가 오후 1시 41분 오송역에 도착했다. 나는 그 열차에 타고 있었다. 출장을 나왔는데 애매한 점심시간 때문에 약속시간보다 일찍 대전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오송역은 천안아산역을 정차하지 않은, 139번 열차의 첫 번째 정류장이었다.

8호차 창측에 앉아있던 나는 갑자기 무언가 타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버스를 타거나 할 때도 가끔씩 그런 적이 있어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채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리곤 잠시 후인 59분에 도착 예정인 대전역에서 내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열차는 출발하지 않았고, 대신 실내에서 방송이 나왔다.

"제동장치 점검으로 열차 출발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점검이 완료되는 대로 곧 출발할 예정이오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 방송을 듣고, 가벼운 점검 중이구나 했다. 그러나 열차는 오후 2시가 넘도록 출발하지 못했다. KTX에서 일반열차로 환승을 하려던 승객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거듭 안내 말씀 드립니다. 제동장치 '점검'으로 열차가 지연되어 대단히 죄송합니다. 승객께서는 안전한 객실에서 대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때 남자 승무원이 다급하게 무전기를 손에 들고 복도를 빠르게 지나갔다. 단순한 '점검'이 아닌 듯했다. 열차 객실에서는 "안전한 객실에서 대기해 달라"는 내용의 방송이 계속해서 나왔다. 트라우마처럼 스쳐가는 생각들.

주변을 살폈다. 다들 두리번 거리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몇몇 승객들은 누구라도 들으라는 듯 코레일 측에 원망을 늘어놓고 있었다.

"아니. 점검을 왜 지금 하는 거야?"
"열차 환승해야 하는 이미 시간이 지나 버렸어."
"엄마, 나 OO인데 지금 열차가 멈췄어. 고장났나봐. 조금 늦을 것 같아."
"OO입니다. 아무래도 도착이 늦어질 것 같아서 다음에 봬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다시 몇 분 후 열차가 조금 움직이더니 이내 멈췄다. 출발 시간이 20여 분 지난 시점이었다. 다시 방송이 나왔다.

"열차에서 내리셔서 반대편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타시기 바랍니다."

반대편 승장강은 말 그대로 반대로 서울로 올라는 열차가 들어올 승강장이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지하 계단을 통해 이동하는 동안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으로 이동하는 사람들, 그렇지만 일사불란했다.

그런데 승강장에 올라오면서 곧바로 다른 기차를 기대했던 승객들은 당황했다. 텅빈 승강장에는 아직 기차가 들어와 있지 않았다. 그때 승무원들이 뛰어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 들어오는 열차는 부산행 열차입니다. 서울로 가실 분들은 지금 열차를 타시면 안 됩니다."

승무원은 다급하게 승객들에게 직접 안내를 하면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다시 기차가 들어왔고, 승객들은 빠르게 탑승했다. 나는 노파심에 자리를 못 찾는 승객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나이 지긋하신 분들까지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조금 전과 똑같은 객실이 만들어졌다.

열차는 곧 출발하였고, 승객들의 일사불란한 협조에도 불구하고 40분 이상 연착했다. 차내에서는 요금의 25%를 돌려준다는 안내 내용과 제동장치 '고장'으로 열차가 지연되어 죄송하다는 방송이 나왔다.

나는 넉넉하게 출발한 덕분에 약속시간에 5분 늦게 도착하는 것으로 이 소동은 마무리됐다. 그렇지만 '안전한 실내에서 대기하고 계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문구가 계속해서 머리속에 맴돌았다. 연착을 원망하며 담당자가 일을 소홀이 해서 그렇다고 볼멘소리를 하던 승객의 목소리도 떠올랐다.

돈보다 중요한 건 안전, 더이상의 대가는 없어야

아무리 저렴한 운임비가 좋다고 하지만, 안전이 무시된 절감은 너무나 위험하고 무의미하다.
 아무리 저렴한 운임비가 좋다고 하지만, 안전이 무시된 절감은 너무나 위험하고 무의미하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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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위 정해진 곳을 달리기만 하는 열차라 그 어떤 교통 수단보다 안전할 줄 알았는데, '제동장치 고장'이라는 어이없는 일을 당한 이날의 일을 무용담처럼 이야기 하는데, 한 분의 얘기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코레일 지금 구조조정하고, 인력들이 많이 축소됐을 거야."

아무리 저렴한 운임비가 좋다고 하지만, 안전이 무시된 절감은 너무나 위험하고 무의미하다. 건강과 바꿀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해서도 승무원 등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처후가 낮은 것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선실 개조, 화물 과적 등 문제가 된 것 모두가 안전보다는 이익에 중심을 두어서 일어난 일일 것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에 겪은 KTX 40분 연착은 나에게 많은 여운을 남겼다. 앞만 보고 달려가기 보다는 이제는 조금 더 안전에 대해 '저절로' 생각이 미치는 듯하다. 인도의 버스 사진을 봐도 마냥 놀라기보다 걱정이 앞선다. 갑작스럽게 강화된 경기도 광역버스 승객의 입석금지도 어쩌면 당연했을 일이다. 다만 관련 사고가 없어 피부에 와닿지 않아 그동안 '관행'적으로 허용되었을 뿐. 이런 것들을 계속 돌아보게 된다.


태그:#KTX, #안전불감증, #연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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