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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순이 되자 계산댁이 망태기를 매고 슬슬 무너미로 올라갔다. 

"뭣허러 간다요?"
"꼬사리 난능가 보러가지매."

하동댁이 밭둑에 앉아서 말했다. 고사리 철이 돌아온 것이다.

"나 좀 한 번 데꼬(데리고) 가보셔요."

또랑갓집이 요새 고사리 뜯으러 다닌다길래 부탁을 해서 나도 모처럼 따라나섰다.

사실 동네사람들이 나물 뜯으러 갈 때나 버섯 따러 갈 때 따라가고 싶다는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모두들 자기만 아는 나물 나는 데, 버섯 나는 데가 있기 때문이다. 버섯 나는 데는 아들한테도 안 가르쳐 준다는 말이 있다. 게다가 못 뜯으면 걸리적거리게 되고, 잘 뜯으면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 나 같은 초짜가 경쟁자가 될 일은 절대로 없지만.

나에게는 새벽인 아침 일곱 시. 좋아라고 배낭에 갈아입을 옷과 물, 간식거리인 쑥버무리를 넣어서 등에 매고 또랑갓집네로 갔다. 그 집 아저씨는 내 차림을 보고 어이가 없어 웃더니 배낭 내려놓고 망태기를 매고 가란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산에 가려면 배낭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꽉 박혀있다. 나는 굳세게 배낭을 매고 고사리 따 담을 앞치마만 빌려 허리에 차고 갔다. 이날은 고지박 골로 향했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왔응게 쪼끔이라도 뜯어봐."
"보여야 뜯제."

또랑갓집은 잘도 뜯는데 내 눈에는 고사리가 하나도 안 보인다.

 나에게는 잘 안보이는 고사리
 나에게는 잘 안보이는 고사리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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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그 발 밑에 있네. 그거 뜯어."
"어디?"

발 밑에 있다는 데도 한참을 두리번거려야 겨우 보인다.

"이것은 꼬침이여. 이것이 더 맛나."

 두계마을 꼬침 (고비)
 두계마을 꼬침 (고비)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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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를 이 동네에서는 꼬침이라고 한다. 동그랗게 말린 고비가 하나라도 보이면 무슨 보물이라도 찾은 듯 오지다. 또랑갓집 망태기가 제법 묵직한데 비해  나는 겨우 한 주먹 정도 뜯어가지고 내려왔다.

"오늘은 요꼴로 가봐."

하며 다음 날 새벽 우리 집에 들른 또랑갓집이 마당에서 잘기(자루)를 주워 망태기를 만들어 주었다. 나물 뜯을 때는 배낭이 오히려 성가시고 망태기가 훨씬 쓸모가 있다. 신발도 등산화나 운동화보다 장화가 낫다. 덕분에 나도 배낭은 그만두고 망태기 매고 장화신고 따라나섰다.

 또랑갓집이 만들어 준 나의 첫 번 망태기. 보통보다 작다.
 또랑갓집이 만들어 준 나의 첫 번 망태기. 보통보다 작다.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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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바로 뒤에 있는 요꼴로 올라가면서 보니 아랫쪽에서 병기네하고 제금이네가 올라오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온 동네사람들이 다 이 골짜기로 들어가서 고사리를 뜯어왔다고 했다. 비 온 뒤끝이라 아직 해가 안 나고 추웠다.

산등성이를 이리 저리 넘어 다니면서 고사리를 뜯자 금방 장갑에 물이 차서 손까지 시려왔다. 산타는 것쯤이야 나도 한 솜씨 한다고 생각했는데 또랑갓집한테는 도저히 당할 수 없었다. 번쩍하면 저 너머에 가있곤, 저 너머에 가있곤 했다.

꼬침이나 고사리가 보이면 보물인 듯 반갑고 서너 개 오복이 솟아 있는 것을 한꺼번에 뜯으면 얼마나 오진지, 그 재미로 고사리를 뜯는 가보았다. 그러나 역시 초짜인 내 눈에 고사리나 꼬침이 얼른 보일 리 없고 못 찾는 보물찾기 수준이었다.

또랑갓집은 부지런히 손을 놀려 고사리를 뜯었다. 열여덟 살에 시집와서부터 나물을 뜯었다니 이력이 날대로 났을 터였다. 내 망태기에는 고사리가 두 줌 될까 말까인데 또랑갓집 망태기를 들어보니 무거워서 들기도 어려웠다. 실력차이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또랑갓집은 그 무거운 망태기를 어깨에 매고 이리저리 가시 덤불사이로 다니다 엎드려서 뜯고, 산을 넘어다니면서 고사리가 보이면 엎드려서 뜯고 또 뜯었다.  

 엎드려서 뜯고 또 뜯고
 엎드려서 뜯고 또 뜯고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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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날은 건너편 무너미를 갔다. 무너미는 처음 가보는 곳이다. 이 두계마을은 어느 골을 들어가도 다 좋다. 어디나 물이 있고 숲이 있다. 세상에 이런 마을이 또 있을까.

"아침에 벌써 누가 올라가대." 
"누굴까? 배낭매고 가면 외지사람이고 망태기매고 가면 동네사람인디."

아하. 이런 구분법이 있구나.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무너미는 꼬침은 별로 안보이고 고사리가 보였다. 

고사리를 뜯는 것도 힘이 드는데 집에 오면 그만큼의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꼬침을 덮고 있는 하얀 솜털을 일일히 벗겨야 한다고 했다. 꼬침을 엎드려 딴 횟수 만큼 또 손이 가는 것이다. 보물인 줄 알고 뜯었던 꼬침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그것뿐 아니다. 손질한 꼬침과 고사리를 삶아서 말려야 했다. 

 고비. 이 흰털을 일일히 뜯어내야 한다.
 고비. 이 흰털을 일일히 뜯어내야 한다.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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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뜯어서 삶아서 말려서 한 근에 6만원에 판다고 한다. 말린 고사리 한 근이 되려면 망태기가 터지도록 가득 뜯어야 한다. 세상에, 이렇게 힘들게 뜯어서 손질해서 삶아서 말려서 그 돈이라니. 뭐든 내가 해봐야 속을 안다.

"내가 삶은 고사리가 죽이 되얐는디 어쩌까?"
"어치께 삶았는디? 끓는 물에다 넣어 안 삶고?"
"처음부터 물에 넣고 삶았제. 그러고도 뜨거운 물에 한참 뒀어. 매 삶을라고 했잖어."

고사리를 처음 삶아본 나는 동네웃음거리를 또 하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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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에서 30년을 보낸 과천댁이 섬진강변 샹그릴라 - 두계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겨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