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학생과 인솔교사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촛불기도회가 안산지역 시민단체 주최로 열리고 있다.
▲ 단원고 실종자 무사귀환 촛불기도회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학생과 인솔교사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촛불기도회가 안산지역 시민단체 주최로 열리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구조자 0명.'

세월호가 완전히 뒤집어진 뒤 민관군이 총력을 기울여 실종자를 수색한 결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난 일주일 내내 TV 화면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았던 숫자 '구조자 174명'을 두고 어떤 이는 '구조자'가 아니라 '탈출자'라고 한다. 하긴 스스로의 힘으로 배 밖으로 나온 사람들을 건져 올리기만 했으니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24일 현재 침몰하는 세월호 속으로 들어가 구해 낸 목숨은 아직 하나도 없다.

21세기의 문명화된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낡은 배를 허가해 준 데서부터 무리하게 선체를 개조하고 평소 안전점검도 무시했던 선사,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던 당국, 항해도 미숙했고 구조도 내팽개친 승무원, 관제와 초동대응에 미흡했던 해경, 우왕좌왕했던 정부, 무책임하게 보도했던 언론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한 것이 없었다.

모든 단계에 걸쳐 다 같이 모의를 했다고 해도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 현실에서 버젓이 벌어진 것이다.

조류가 빠르고 시야가 흐리다... 4년 전에도 그랬다

세월호 참사 후 드러난 한국사회의 민낯은 이렇듯 흉측함 그 자체였다.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초고속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유일한 국가라는 우리의 자만심에 가려진 실체는 철없는 졸부의 모습에 지나지 않았다. 선진국이나 문명국가는 단지 더 많은 돈만으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졸지에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 중 일부는 체계적인 방법으로 큰돈을 벌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요행이나 기적을 바라기도 한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잠긴 세월호를 바라보면서 일주일 내내 '기적'만 바랐던 우리의 모습도 별로 다르지 않다.

조류가 빠르고 시야가 흐리다는 말은 4년 전 천안함 침몰 때도 들었다. 우리는 조류가 빠르고 시야가 흐린 바다를 끼고 산 지가 5000년이다. 후손들도 계속 그런 상황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지난 세월동안 대체 무엇을 해왔나.

언론에 회자되는 이른바 '다이빙 벨'이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나는 잘 모른다.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다이빙 벨 도입을 반대했던 해경이 최근 한 대학으로부터 대여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백번 양보해서 조류가 너무 빨라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장비도 무용지물이라면, 정조 시간에 대규모 인원이 즉각적으로 구조에 나설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의 끈질긴 요구가 있은 뒤에야 대형 바지선이나 야간작업을 위한 채낚이 어선 등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사고대책본부는 정말로 '기적만' 기다리고 있었다

안행부로 바꾸면서 추구했던 안전은 '정권의 안전'?

전남 진도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16일 당일 구조된 탑승객들의 임시 보호소로 쓰인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팔걸이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다. 서 장관의 뒤편으로 체육관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생존자들과 다급한 가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 장관님, 여기는 왜 오셨어요? 전남 진도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16일 당일 구조된 탑승객들의 임시 보호소로 쓰인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팔걸이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다. 서 장관의 뒤편으로 체육관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생존자들과 다급한 가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자신의 무능함이나 실책을 인정하지 않으려면 다른 희생양을 내세우거나 지금 벌어진 일들이 기적이 아니고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대다수 언론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선장의 잘못은 살인과 같은 행위로서 천인공노할 대역죄로 규정하지만 정작 정부와 사고대책본부의 잘못은 그저 안타까운 일로 치부될 뿐이다. 선장의 최우선 임무가 승객의 생명 보호라면, 대통령과 정부의 최우선 임무는 어떤 사태가 발생해도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구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모른 척 하는 것일까?

하지만 철저하게 통제된 언론마저도 그 모습을 다 막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사고 당일부터 터져 나온 이들의 활약상은 정말 눈부시다. 사고 당일인 16일 목포해경은 청해진해운과 진도군청, 해양경찰청 등에 2차 피해가 우려되니 세월호를 빨리 인양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날 밤엔 서남수 교육부장관이 그 유명한 '컵라면'을 먹었다. 이튿날엔 해경의 어느 과장이 "80명을 구조했으면 할 만큼 한 것 아니냐"라고 했다. 18일에는 서남수 장관이 안산 희생자 학생의 빈소를 찾았는데, 수행원이 유가족에게 '교육부 장관님 오십니다'라고 귓속말을 건네 실종자 가족들의 공분을 샀다.

20일에는 안전행정부의 한 국장이 기념촬영을 했고,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이 실종자 가족을 선동꾼으로 매도했고, 같은 당의 한기호 의원은 좌파색출론을 들고 나왔다. 21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서남수 장관의 컵라면 논란에 대해 "라면에 계란 넣은 것도 아니고"라며 두둔하고 나섰다. 이날 정몽준 의원은 며칠 전 아들의 미개인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22일에는 송영선 전 국회의원이 한 방송에 출연해 '국민의식을 재정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다양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도 대단하지만,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는 부지런함과 민첩함도 놀라울 따름이다. 국민 위에서 군림하는 자신의 모습을 과시하는 사람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진짜 주인은 그들이었나 보다.

자신들의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 2004년 참여정부 시절 만든 통합적 국가위기관리체계(NSC, 국가안전보장회의)를 해체하는 순간부터 국민들의 생명은 내버려졌는지도 모른다. 수억 원을 들여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면서 추구했던 안전은 정권의 안전이었던 건가. 아마도 그들에게는 기업 활동에 대한 온갖 규제가 정말로 박근혜 대통령 말마따나 '암 덩어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암 덩어리에는 선박안전과 관련된 규제도 많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구조 실패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약속한 바 있다.  사진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난 2012년 10월 19일 서울 양천문화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서울시당 선대위 출범식에서 박근혜 대선후보가 연설을 하는 장면.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아이와 엄마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약속한 바 있다. 사진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난 2012년 10월 19일 서울 양천문화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서울시당 선대위 출범식에서 박근혜 대선후보가 연설을 하는 장면.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국민의 생명'보다 '정권의 생명'에만 집착하는 이들은 만약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침몰하기라도 한다면 세월호의 선장마냥 엉터리 방송을 틀어 놓고 제일 먼저 배를 빠져나갈 사람들이다. 기가 막힌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이분들이 국부라고 추앙하는 '대한민국 1호 선장',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한국전쟁 때 세월호 선장과 똑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서울시민은 정부를 믿고 동요하지 말라"는 라디오 방송까지 어쩜 그리 똑같을까.

정부의 늑장대응과 무능함에 대한 질타가 연일 쏟아지자,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23일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는 재난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실토했다. 또 행정부의 수반인 박근혜 대통령은 본인은 정작 사과의 말도, 책임지는 행태도 보이지 않으면서 '정부는 반성하라'는 알 수 없는 주문을 쏟아낸다. 사고 이후 지금까지 각 지역에 만들어진 사고대책본부만 무려 10개가 넘는다. 대통령은 대체 무얼 하고 있었나?

사고 발생 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구조자는 0명.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구조 실패다. 그것은 무능함 때문이다. 차라리 정부와 사고대책본부와 고위직 어르신들이 단지 무능하기만 했다면 국민들의 분노가 이렇게 크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실종자를 구하는 일에는 기적만 바라던 사람들이 정권을 구하는 일에는 염치도 품위도 상식도 내던지고 없는 기적이라도 만들어 내려는 모습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능력도 없다면, 최소한의 품위라도 지켜주기 바란다. 지금은 누군가를 미워하고 혐오하는 감정조차도, 저 차가운 바다에 아직 누워 있는 어린 생명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사치스럽다.


태그:#세월호
댓글108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7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In Tenebris Lux 어둠 속에 빛이

이 기자의 최신기사윤석열 최악의 시나리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