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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에 처박힌 부도재 두 기

□하당(荷堂) 부도를 살펴보는 천은사 주지스님
 □하당(荷堂) 부도를 살펴보는 천은사 주지스님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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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를 따리 이쪽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오르기를 30분 정도, 함께 한 천은사 주지스님이 골짜기 물가에서 부도재를 하나 발견한다. 장마가 심해 물이 불었을 때 파근사로부터 떠내려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함께 한 단국대 엄기표 교수가 부도를 자세히 살펴본다. '하당(荷堂)'이라는 명문이 보인다. 그리고 명문 위로 복련이, 명문 주위로 활짝 핀 연꽃이 양각되어 있다.

여기서 다시 파근사지를 찾아가면서 우리는 길을 좀 헤맸다. 골짜기를 따라 길이 잘 나있지 않기 때문이다. 남원 토박이인 김현식 문화원 사무국장도 길을 찾느라 애를 먹는다. 그렇게 헤매기를 50분 정도, 우리는 골짜기에서 또 하나의 부도재를 발견한다. 이것은 아까 것보다 이끼가 많이 붙어 있다. 그렇지만 앙련과 복련 조각이 꽤나 정교하다. 부도 덮개돌일 가능성이 크다.

물가에 처박힌 부도재
 물가에 처박힌 부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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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서 절의 흔적이 하나씩 나타난다. 기와편이 보이고 사람 사는 곳에서 볼 수 있는 머우 군락이 보인다. 머우는 절에서 재배하는 중요한 나물이기 때문이다. 또 돌 축대도 보인다. 이제야 파근사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골짜기가 끝나고 어느 정도 평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탑 부재와 주춧돌, 돌쩌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넓은 곳에 펼쳐진 석재가 절의 흔적을 이야기해 준다

우리는 황량한 파근사지를 이리저리 다니며 절의 흔적을 찾는다. 다행히 복련 조각을 한 주춧돌을 찾는다. 또 기둥을 세웠을 주춧돌도 발견한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는 우물도 있다. 이곳에 사람이 살았음을 증거 하는 흔적이다. 주변에는 인위적으로 심은 조릿대도 있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석재를 통해 이곳이 절이었음을 알 수 있고, 아직도 사용할 수 있는 우물을 통해 최근까지 법등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깨진 혜암당 부도
 깨진 혜암당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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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넓은 사역을 돌아보다 깨진 채 땅속에 반쯤 묻혀있는 부도를 하나 발견한다. 큰 틀로는 종형 부도인데 머리 부분에 연꽃 봉우리를 만들었고, 그곳에 범자를 새겨 넣었다. 범어를 좀 아는 이상령 선생이 옴마니반메훔이라고 쓴 것 같다고 말한다.

범자는 몸통 윗부분에도 있다. 정말 특이한 부도다. 그리고 몸통 한 가운데 혜암당(惠庵堂)이라는 명문이 보인다. 그런데 혜암당이라는 글씨가 상당히 현대적이다. 글씨로 보아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부도로 여겨진다.

천은사 주지스님이 우리와 동행한 것은 이 혜암당 부도 때문이다. 그렇다면 혜암당은 누구일까? 혜암선사는 천은사를 중창한 스님으로 유명하다. 1774년 혜암선사는 남원부사 이경윤(李敬倫)의 도움을 받아 화재로 소실된 전각을 중수 중창했다고 한다. 현재 천은사의 모습이 그때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한 스님의 부도가 천은사 부도전에 있지 않고 어째 이곳에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동명이인일 수도 있다. 더 연구를 해봐야 알 일이다.

타원형 알독
 타원형 알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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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근방에는 문양이라고는 전혀 없는 타원형 알독도 있다. 이것 역시 부도재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이런 석조물들이 빗물에 젖어 뒹굴고 있다. 절 주변으로 안개가 살짝 드리운다. 우리는 이제 내려가는 길을 재촉한다. 천은사 주지스님이 앞장선다. 그는 전에도 이곳에 한 번 와 봤는지 임도를 따라 안골로 내려가는 길을 택한다. 우리도 그를 따라 내려간다.

길은 올라올 때보다 좋고 평탄하다. 부도재를 보기 위해 올라올 때 난코스를 택했으니, 내려갈 때는 평이한 코스를 택한 것이다. 우리는 비정문화재를 자주 찾아다니기 때문에 이처럼 고생을 한다. 정말 길 없는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경우도 꽤나 많다. 함께 한 회원들이 많이 지쳤다. 옛님은 늘 저 산길 끝에 있고, 우리는 그 옛님을 만나러 산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출발지인 안골로 내려오니 오후 3시가 되었다.

파근사지에서 수습된 일부 석재는 안골 마을에 있어

탑의 옥개석
 탑의 옥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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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골 마을에서 우리는 파근사지에서 수습된 유물을 몇 가지 더 살펴본다. 한 때 파근사지 유물을 반출하려던 골동품상들로부터 회수한 것들이라고 한다. 석조물인데 가운데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건축부재로 보인다.

그리고 탑의 옥개석도 있다. 조각이 단순하면서도 아름답다. 또 푸른 이끼가 끼어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다른 쪽에는 석조(石槽)도 있다. 이것은 그렇게 오래돼 보이지 않는다.

이 집은 한 때 절로 이용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민가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선지 대문이 일주문 형식이다. 대문을 나오면서 보니 계단도 법당으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파근사지의 일부 부재와 와 있다고 해도 이 정도로 파근사의 과거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료를 찾아보니 몇 가지 사서에 파근사가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파근사가 나나오는 것을 보면 역사와 사세가 대단했던 절인데, 그 흔적이나 기록이 너무 미미해서 안타까울 뿐이다.

그나마 조경남의 <난중잡록>이나 이긍익의 <연려실 기술>에 기록이 있어 우리도 파근사지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당대의 정치를 반성하고 국정에 참고하기 위해 정조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성록(日省錄)>[1793년(정조 17년) 6월 25일]에 호남 암행 어사 정동간(鄭東榦)이 복명(復命)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곳에 파근사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 후기 기록에 나오는 파근사 이야기

이끼 낀 건축부재
 이끼 낀 건축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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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南原)에서 공물로 바치는 종이에 대한 폐단이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장인(匠人)들에게 지급할 급료에 값을 조금 더 쳐준 뒤에는 별다른 원망이 없었고, 영문에서 지정(卜定)하는 것에도 그 양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또한 크게 법을 어기는 폐단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에 따라 이 공물을 맡았던 승려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6개 절 중 4개 절이 모두 비었고, 천은사(天銀寺)와 파근사(波根寺) 두 절에만 약간의 승려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은사와 파근사가 남원지역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절이 된다. 조선시대 절은 이처럼 먹고 살 수 있는 벌이가 있어야 운영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송환기(宋煥箕: 1728-1807)의 문집인 <성담선생집(性潭先生集)>에 보면, 성담이 경자년(1780년) 10월 보름 여러 사람과 함께 파근사에 오른다. 그는 그곳에서 논 다음 가마를 타고 내려오면서 '파근사에서 놀다(遊波根寺)'라는 시를 짓는다. 

구름 자욱하고 비 내리는 지리산
 구름 자욱하고 비 내리는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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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경승을 찾아 출발할 때는                           探勝頭流發軔初
산꼭대기에 올라 거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却思尋向上頭居
구름이 깊고 높아지니 산세가 빼어남을 알겠더라.       雲深尙識山容秀
이른 서리 내려 나뭇잎 드물게 남아 있고                   霜早惟嫌木葉踈
방장은 오랜 정으로 하릴 없이 약초를 거두는구나.      方丈遐情空採藥
융화를 축원하는 글을 호기롭고 낭랑하게 읊조리고는  祝融豪氣朗吟書
돌아오는 길에 바위 못 위에서 술 한 잔 기울이니        歸程細酌巖淵上
비속에 가마 타고 임지로 가는 것 같더라.                  雨裏箯輿任所如

성담은 우암 송시열의 5대손으로 청주 문의현에서 태어나 회덕에서 살았다. 운평 송능상(宋能相)에게 공부했고, 34세에 생원이 되었으며, 평생 <우암집(尤庵集)> 편찬에 진력했다. 1780년 남원에 간 것도 <우암집>정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의 벼슬은 판서에 이르렀고, 문경(文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성담은 또한 산수 유람을 좋아해 지리산 외에도 청량산, 북한산, 금강산, 속리산 등을 찾았다.


태그:#파근사지, #부도재, #혜암당, #《일성록(日省錄)》, #《성담선생집(性潭先生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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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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