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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건' 6일째인 21일 오후 어둠이 내린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이 부두에 나와 구조작업을 위해 투여된 조명탄을 바라보고 있다.
▲ 팽목항에서 본 구조작업 현장 조명탄 '세월호 침몰사건' 6일째인 21일 오후 어둠이 내린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이 부두에 나와 구조작업을 위해 투여된 조명탄을 바라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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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여드레째 가슴을 졸이고 있습니다. 끝끝내 세월호 생존자를 구해내리라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허망하게도 손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한 채 열일곱 열여덟 꽃다운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TV화면으로 생중계되는 세월호의 침몰을 우리는 그렇게 속절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도처에서 왜 아이들을 구해내지 못하느냐 원망과 탄식이 쏟아졌지만 현재까지도 아이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엄마!"하고 나타날 것 같지만, 이제는 번호를 단 시신이 된 채로 가슴팍에 파묻히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게 나라냐, 국가가 무엇이냐, 목젖을 타고 거꾸로 치솟는 울분은 방울방울 눈물져 뺨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이 나라의 모든 어른이 죄인이요, '구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노란 물결이 SNS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통곡하는 4월의 봄, 유독 '네 탓 공방'에 시간을 허비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무리도 있습니다. 정치권이 가장 심합니다.

책임 떠넘기기 바쁜 정치권

한기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드디어 북한에서 선동의 입을 열었다"며 "이제부터는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 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 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한기호 위원은 "국가 안보조직은 (좌파 단체) 근원부터 발본색출해서 제거하고, 민간 안보 그룹은 단호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때 아닌 색깔론 제기에 보수언론마저 한 최고위원에게 등을 돌렸고 지탄을 받자 그는 자신이 썼던 글을 스스로 삭제했습니다.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SNS에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을 '선동꾼'이라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사과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 권은희 "물의를 일으켜 죄송"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SNS에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을 '선동꾼'이라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사과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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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입니다. 권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월호 실종자 가족 행세를 하며 정부를 욕하며 공무원들 뺨 때리고 악을 쓰고 욕을 하며 선동하던 이들. 학부모 요청으로 실종자 명찰 이름표를 착용하기로 하자 잠적해버린 이들. 누구일까요? 뭘 노리고 이딴 짓을 하는 걸까요? 현장에 혼란과 불신, 극한 대립을 일으키는 전문 선동꾼은 누굴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인지?"라고 올렸습니다.

또한 권 의원은 "유가족들에게 명찰 나눠주려고 하자 그거 못하게 막으려고 유가족인 척하는 선동하는 여자의 동영상이다. 그런데 위의 동영상의 여자가 밀양송전탑 반대 시위에도 똑같이 있다"며 해당 영상을 함께 공개했습니다.

그러나 권 의원이 제시한 영상은 조사결과 합성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여당 국회의원이 '일베'에서 퍼온 영상을 확인도 없이 무작정 올린 것이지요. 권 의원은 현재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정몽준 의원의 막내아들은 세월호 실종자 가족을 빗대 국민정서가 미개하다고 비하했습니다. 정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지만 그 충격의 여파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사고현장인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탄식하고 있을 당시 구조자들의 응급치료를 하던 테이블에서 의약품을 치우고 팔걸이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었습니다.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에 따르면 왜 굳이 그 자리에서 라면을 먹었던 것인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서 장관의 부적절한 처신을 질책해도 모자랄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대화하던 중에 "라면에 계란을 넣어서 먹은 것도 아니고, 끓여서 먹은 것도 아니다. 쭈그려 앉아서 먹은 건데 팔걸이 의자 때문에, 또 그게 사진 찍히고 국민정서상 문제가 돼서 그런 것이다"라고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문제가 될 것 같으니 나중에 기자들에게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약속)를 요청했습니다. 

이 대화는 지난 21일 진도 팽목항 사고상황실에서 기념 촬영을 시도해 물의를 빚은 안전행정부(안행부) 공무원의 사표는 즉각 수리했는데 라면을 먹은 교육부 장관은 어떻게 되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18일 세월호 사고현장 지휘를 위해 진도에 내려갔다가 최고급 펜션 한옥체험관에 머물러 빈축을 샀습니다. 실종자 가족은 차가운 체육관 바닥에서 잠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총리는 온돌에서 편히 쉬어도 되는 것이냐는 비난이 일었습니다. 총리실 관계자는 "고급 펜션이 아니라 농촌체험관"이라며 "진도에 3박4일간 머물면서 하루는 체험관, 이틀은 군수실 간이침대 그리고 세종시로 올라왔다"고 반박했습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혹여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가 지방선거에 악재가 될까 노심초사 하는 분위기입니다. 새누리당은 선거운동 중단은 물론 사무총장인 홍문종 의원이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에게 신중한 언행을 주문하며 금지사항을 담은 지침까지 전달했습니다. 특히 ▲후보자 이름이 들어간 진도 여객선 추모 문자메시지 발송(국민 불쾌감 유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 여객선 사고 관련 부적절한 글 게시 ▲빨간 점퍼 착용 금지 등을 강조했지요.

당이 지침으로 자신들의 상징색인 '빨간 점퍼'를 입지 말라고 하자 송영철 논산시장 새누리당 예비후보는 흰색 옷을 입고 선거운동을 하고 다녔습니다. 새누리당 세종시장 후보에 선출된 유한식 현 세종시장은 지난 18일 폭탄주가 돌아가는 술자리에 참석했다가 사흘 뒤 당 윤리위원회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고, 새누리당 파주시장 예비후보들은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일부 지지자들과 웃고 떠들며 헹가래를 쳤다가 구설에 올랐습니다.

보수논객으로 알려진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은 22일 오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박근혜, 정신 바짝 차려야'라는 제목을 글을 통해 "제2의 5·18폭동에 단단히 대비하라"면서 "'무능한 박근혜 퇴진'과 아울러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봉기가 바로 북한의 코앞에서 벌어질 모양이다. 매우 위험한 도박이다. 시체장사에 한두 번 당해봤는가? 세월호 참사는 이를 위한 거대한 불쏘시개"라고 주장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주요 국정목표 '국민안전', 어디로 갔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오전이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오전이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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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대형사고가 터지면 서로 '네 탓 공방'을 하며 책임 떠넘기기 하는 모습은 새로운 모습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번에도 그려려니 하고 넘어가야 할까요? 박근혜 정부의 주요 국정목표는 '국민안전'입니다.

그런데, 보수정권인 박근혜 정부는 이 엄청난 국가재난 앞에 국민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사고 수습과정에서 보수 정치인과 관료, 보수논객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나요. 리더십의 위기, 위기관리 대응체계, 허술한 안전망 등 총체적 난국 앞에 '보수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남 탓'의 결정판은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1일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무원의 안이한 복지부동 행태에 엄단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강력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습니다.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선장과 일부 선원이 '살인과도 같은 행위'를 했다고 정조준 합니다. 유언비어도 진원지를 끝까지 추적해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도 풀이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본인의 책임은 쏙 뺐다는 문제도 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호 운항의 책임이 선장에게 있다면 대한민국호를 책임질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온 국민이 도탄에 빠진 이 엄청난 국가재난에서 대통령은 무슨 능력을 보여주고 계신가요?

세월호 실종자 학부모들 입에선 "내 새끼도 지키지 못한 못난 부모"라는 자책이 나옵니다. 한 학부모는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자식을 죽인 부모구나. 이 나라에서는 나 정도 부모여서는 안 돼요. 대한민국에서 내 자식 지키려면 최소한 해양수산부 장관이나 국회의원 정도는 돼야 해요. 이 사회는 나 같은 사람은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는 사회에요"라고 원망했습니다.

그는 "다 정리하고 떠날 거"라면서 "나 대한민국 국민 아닙니다. 이 나라가 내 자식을 버렸기 때문에 나도 내 나라를 버립니다"라고 말합니다.

지난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로 부산외대 학생들을 잃은 지 불과 두 달 남짓입니다. 올해만 벌써 두 번째 대형 참사를 목도하는 우리 국민들은 매우 불안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불안의 망령이 한반도 남단을 휘감고 있습니다. 원칙과 신뢰를 그토록 강조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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