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2일 <이데일리>에 보도된 <"연봉 2000만원이 적은가요?"..20대에 1억 모은 짠돌이> 기사
 22일 <이데일리>에 보도된 <"연봉 2000만원이 적은가요?"..20대에 1억 모은 짠돌이> 기사
ⓒ 이데일리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비정상이 정상을 능멸하는 기사 좀 안보고 싶다."
"돈 1억은 부러운데, 그간의 인생은 전혀 부럽지 않다. 앞으로도…."
"왜 우리 세대에게 2000만 원으로 미친 듯이 알뜰하게 살라고 강요하냐? 말이 알뜰이지 어떤 면에서는 구질구질하게 사는 거 아닌가? (중략) 요즘 보면 언론이고 정부고 국민 편은 없는 거 같네…."

지난 22일 <이데일리>에 보도된 <"연봉 2000만원이 적은가요?"…20대에 1억 모은 짠돌이>는 화제가 됨과 동시에 누리꾼들의 질타를 받았다. 기사는 28세 나이에 1억 원을 저축한 한 청년을 소개했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대학 졸업까지 아르바이트로 3500만 원을 모았고, 졸업 후 연봉 1800만 원 회사에 취직해 28세 현재 1억 원을 모았다고 한다. 기자는 그가 "가난한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면서 "패배주의가 없는" 그의 노력을 "결핍의 승화"라고 표현했다.

기자는 "대부분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스스로 옭아맨 패배주의의 덫 때문"이라며 20대에 1억 원을 저축한 청년을 치켜세웠다. 기사의 주인공은 "제도를 바꿀 수 없다면 제도 내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며 "35세까지 4억 원을 모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기사의 초점은 시종일관 '돈'에 맞춰져 있었다. "부자를 경멸하지 않는", "부자를 결심한" 소년의 이야기. 대학 생활 내내 각종 아르바이트로 악착같이 돈을 모은 이야기. 직장에서 받는 월급 160만 원을 대부분 저축한다는 이야기. 몇 살까지 얼마를 모으겠다는 목표….

28세 청년은 "일주일에 꼭 한 번은 자신의 돈이 어디에 있는지 머릿속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기사 어디에도 이 소년의 꿈,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 20대를 아르바이트의 상징으로 몰고 간 사회 제도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물론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알뜰히 저축한 그의 생활 태도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환경을 탓하는 것은 패배주의자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일반화시킨 기사가 불편할 뿐이다. 대학 등록금이 없어 학자금 대출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의 성토가 왜 패배자의 목소리인가. 제도가 썩었는데, 썩은 제도 안에서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으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마치 교훈처럼 써내려가는 기사가 불편한 것이다.

꿈은 없고 '액수'만 있는 청년 이야기... 닥치고 극복해라?

서울지역대학생교육대책위 소속 학생들이 3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정부의 대학구조개혁제도와 대학재정문제, 학사관리제도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지역대학생교육대책위 소속 학생들이 3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정부의 대학구조개혁제도와 대학재정문제, 학사관리제도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나는 궁금했다. "낮에는 공부하고, 저녁에는 노래방 웨이터, 패밀리레스토랑 등의 알바를 통해 3500만 원을 모은" 이 청년이 꿈꾸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그는 어떤 꿈을 가진 아이였는지. 졸업 후 어떤 회사에 취직했고, 그 회사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인지. 대학 생활 내내 아르바이트만 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를 분노하게 한 일은 없었는지.

기사에는 나의 궁금증을 긁어줄 만한 문장은 한 줄도 없었다. 다만 '노숙자처럼 되지 않으면 열심히 살아야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이다'라는 기자의 말만 있었다. "세상에 당하지 않기 위해 아침마다 경제신문을 읽는다"는 이야기만 있었다. 꿈은 없고 액수에 대한 목표만 있었다.

꿈을 먹고 자라기도 모자란 20대를 돈을 모으는 일 하나로 채워간 것이 성공신화처럼 그려진 기사가 불편하다. 돈이 최고라는 인식을, 가난하고 힘겨워도 '닥치고' 극복하라는 기사를 읽으며 씁쓸함을 느끼는 독자는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20대에 할 수 있는 다른 것들도 많은데 저 친구는 꽃다운 청춘을 알바에 쏟아서 1억 모은 거다. 대단하지만 정상이냐고. 슬픈 현실 아니야?" - '써비님' 댓글

언제부터인가 돈이 최고인 물신사회가 돼버렸다지만, 이 기사가 청년들의 아픈 곳을 긴 창으로 더 아프게 찌르는 이유는 우리는 아직 '꿈 많은 20대'라는 꽃다운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대학 등록금을 겨우 맞추는 것이 꿈이 돼버린 사회를 향해 '이건 좀 아니잖아' 하고 외칠 수 있는 패기를 갖기를. 가끔은 지옥 같은 현실에 반항도 해보고, 소리 지를 수 있기를. '이 제도에서 낙오된 패배자는 나'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보다, 이 제도 자체를 문제시 할 수 있는 눈을 잃지 않기를.

정말 좋은 사회는 노숙자를 경멸하는 사회가 아닌, 그들과 함께 더불어 가는 사회임을 알기를. 결핍은 그냥 좋지 않은 것이지, 성공하기 위한 밑거름이라는 어설픈 긍정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태그:#20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