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방송된 SBS <신의 선물-14일> 마지막 회는 기동찬(조승우 분)이 샛별이 대신 죽음을 맞이하는 듯한 모습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 22일 방송된 SBS <신의 선물-14일> 마지막 회는 기동찬(조승우 분)이 샛별이 대신 죽음을 맞이하는 듯한 모습으로 막을 내렸다. ⓒ SBS


'허무'하다. 아마도 16회까지 숨 가쁘게 달려 온 SBS <신의 선물>에 대한 한 마디 소감을 말하자면 이 단어가 가장 적절할 듯싶다.

지난 22일 방송된 마지막 회, 강력하게 주사된 알콜 성분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진 기동찬(조승우 분)은 샛별이(김유빈 분)를 안고 강물로 들어간다. 자신의 어머니로 위장된 전화 목소리에 어머니가 샛별이를 죽였다고 오해한 기동찬은 이를 감추기 위해 10년 전 자신을 대신하여 죄를 뒤집어쓴 형처럼 샛별이를 강물로 던지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타임워프 하긴 전의 기억이 돌아온다. 자신이 보았던 환상, 즉 누군가를 안고 물속으로 들어가던 장면이 환상이 아니었음을, 결국 자기가 2주 전 샛별이를 강물에 유기한 당사자였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순간, 동찬의 옷깃을 잡는 손. 다행히 샛별이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샛별이가 죽지 않았다는 기쁨도 잠시, 동찬은 깨닫는다. 자신이 타임워프하여 돌아와 달려온 그 시간 동안 결코 운명은 바뀌지 않았음을, 죽어야 할 사람은 늘 죽어갔음을.

그리하여 결국 샛별이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대신 누군가 죽어야 한다는 운명을, 두 사람 중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는 수현의 말대로라면, 그 두 사람이 바로 자신과 샛별이었음을 동찬은 깨닫는다. 그리고 풍덩!

바꿀 수 없는 '운명'의 제물이 되어버린 기동찬

1회, 수현이 우연히 마주친 카페 여인의 예언에서부터 시작된 드라마의 수많은 '떡밥'들은 16회 마지막 회에 이르기까지 모두 순차적으로 정교하게 회수되었다. 결국 기동찬이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샛별이 대신 죽음을 택하기까지(물론 기동찬의 죽음을 분명하게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전후의 맥락으로 보아 과거 살인에 휘말리게 된 기동찬이 결국 타임워프를 통하여 죽음으로 속죄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작가가 풀어놓은 모든 사건들은 명확하게 풀렸다. 그런데 박수를 치게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기동찬의 희생 자체가 석연치 않다. 결국 16회에 이르러, 과거 기동찬에 의한 샛별이의 죽음은 이명한과 영부인의 올가미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기동찬 역시 해리성 기억 상실에 의한 우발적 행위의 희생자인 것이다. 그런 그가 타임워프하여 한 일은 줄곧 몸이 부서져라 자신의 형과 샛별이를 위해 뛰어다닌 일 밖에 없다. 그런 고군분투가 무색하게, 결국 그는 또 한 번 희생양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의 죽음을 단지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말로 단정 짓기엔 억울하다. 진정 운명과 속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면, 기동찬이 자신의 형의 무죄 증거로 손에 넣었던 귀걸이와 반지를 수현에게 넘겨 준 순간, 그가 용서받았어야 했다. 그래야 진정한 '신의 선물'이 아닐까. 결국은 기동찬의 속죄라는 단호한 마무리에 감동도, 여운도 없이, 그저 운명에 이용만 당한 듯하다. 단호하다 못해 잔인한 작가의 떡밥 회수만이 느껴진다면, 지나치게 드라마를 감상적으로 바라본 시점이 되는 것일까.

기동찬의 희생은 수미쌍관의 일관된 작가 정신이나, 결국은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운명론적인 세계관에 압도된 작가 세계라 치자. 하지만 그런 결론을 차치하고서라도, 16회의 전개는 그간 장르물로서 이 드라마를 본방 사수해온 시청자들의 허무함을 달래주지 못한다.

꼬이고 꼬였던 사건...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해결?

 <신의 선물>의 김남준 대통령(강신일 분).

<신의 선물>의 김남준 대통령(강신일 분). ⓒ SBS


아이를 버린 미혼모를 잔인하게 죽인 연쇄 살인범 차봉섭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유괴범 장문수를 거쳐, 기동찬의 어머니, 헤파이토스를 넘어선 사건은 결국 샛별이 유괴 사건의 실체로서 대통령 비서실장 이명한(주진모 분)과 영부인(예수정 분)을 밝혀냈다.

하지만 밝혀내기만 할뿐, 대통령 아들이 자신의 범죄를 자백한 것과도 같은 병실 장면에서 그 흔한 장르물의 클리셰인 녹음 따위는 하지도 않은 채 울분만 터트리던 기동찬과 김수현의 해결 방식은 전직 형사요, 공개 수배라는 프로그램의 작가라는 직업을 무색하게 했다. 그저 기동찬은 그 자신이 살인범이라 자백했고, 김수현은 대통령을 찾아가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사실을 알아챈 양심적 대통령은 일사천리로 사건을 해결한다. 1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에 짓눌려 자살을 하고, 죽어가고, 이제 어린 아이까지 죽음의 위기에 몰렸는데, 대통령의 단호한 결심으로 해결된다. 그럴 거였으면 그 고생하지 말고, 진작 대통령에게 모든 걸 말하지 그랬냐는 불평이 나올 만큼.

자기 아들이 살인범이라는 걸 알고, 자신의 비서실장과 부인이 그걸 덮기 위해 공모하여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안 후 하야를 결심한 양심적 대통령은 SBS 수목드라마 <쓰리 데이즈>의 대통령 이동휘(손현주 분)와 비슷하다. 하지만 어쩐지 이동휘의 신념이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큰 주제로 부각된다면, 마지막 회에서야 등장하는 김남준(강신일 분)의 강직함은 뜬금없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에 그가 김수현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내내 용의자였다. 드라마는 장르물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각 캐릭터를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극적 긴장감을 살려왔겠지만, 그런 결과로 마지막 회 대통령의 반성은 반전이라기보다는 어쩐지 해프닝처럼만 여겨졌다. 더구나, 내내 김수현과 기동찬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달려온 노력이 무색하게 대통령의 한 마디로 해결되는 사건은 허무하기까지 하다. 사유화된 권력이 그보다 더 큰 권력의 한 마디로 해소되는 과정은 운명론만큼이나 조악하다.

하긴 되돌아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사건의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별개로, 등장했던 인물들에게 그다지 친절한 드라마는 아니었다. 오히려 범인으로 등장했던 차봉섭이나 장문수, 그리고 헤파이토스의 배경 설명은 친절했지만, 기동찬을 제외한 김수현, 그녀의 남편 한지훈(김태우 분), 딸 샛별이 모두에게 가혹한 드라마였다.

딸을 살리려고 직접 뛰어 다니는 엄마가 되기 위해 김수현은 정작 엄마로서 딸을 돌보지 않는다는 오명을 뒤집어썼고, 한지훈은 의뭉스런 캐릭터를 위해 토마토를 맞는 것도 불사하며 수호했던 인권 변호사라는 직업을 땅에 팽개치고, 불륜도 모자라 일신의 영달을 위해 딸의 유괴 사건 앞에서도 거래를 하는 비열한 인간이 되었다. 어린 딸 샛별은 겨우 아홉 살의 나이에 스타의 뒤를 쫒아 다니다가 비호감의 대상이 되었다.

허무한 결론에 이르렀을 때, 굳이 그들을 그렇게까지 만들 이유가 무엇이었나 반문하게 된다. 그런 그들의 이율배반적인 캐릭터가 이중적인, 혹은 유혹에 약한 인간의 모습에 대한 천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극의 전개를 위해 희생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16회에 이르러 들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긴 호흡의 장르물로서 <신의 선물>을 단호하게 '실패'라 몰아붙일 수는 없다. 운명론에 빠진 결론과 그것에 이른 조급한 결말, 그리고 사건의 늪에 빠져버린 캐릭터들이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내 다음 회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까 시청자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이야기의 맛은 반감되지 않는다.

마치 까도, 까도 또 깔게 남은 양파의 속살처럼(물론 그래서 다 까고 보니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 또한 양파와 같지만) 흥미진진하게 이어진 사건의 사슬들은 분명 묻혀서는 안 될 <신의 선물>의 장점이었다. 마지막은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장르물의 실험 자체가 묻혀서는 안 될 일이다. 부디 충분한 준비와 캐릭터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 다음에 좀 더 충실한 장르물로 돌아와 주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신의 선물 조승우 이보영 결말 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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