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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해역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 1주일이 돼 간다. 온 나라가 침통한 분위기에 빠져 있다. 애타게 기다리는 생존자 구조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대신 날이 갈수록 사망자 숫자만 처절하게 불어나고 있다. 37m나 되는 칠흑 같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버린 세월호처럼, '대한민국'호 전체가 짙은 슬픔과 분노의 수렁 속으로 빠져 들고 있는 듯하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우리는 왜 이토록 슬품과 분노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가. 선장을 포함한 파렴치한 승무원들 때문인가, 아니면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 때문인가. 이 끝 모를 슬픔과 짙은 분노의 끝은 어디일까. 그 끝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전쟁터보다 더한 나라 대한민국 

2013년 7월,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다가 목숨을 잃은 공주사대부고 학생 5명의 합동영결식이 충청남도 공주시 공주사대부고 운동장에서 학교장으로 엄수됐다. 재학생들이 고인들을 추모하며 헌화를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3년 7월,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다가 목숨을 잃은 공주사대부고 학생 5명의 합동영결식이 충청남도 공주시 공주사대부고 운동장에서 학교장으로 엄수됐다. 재학생들이 고인들을 추모하며 헌화를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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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의 서해 훼리호 사고로 292명이 죽었다. 1994년에는 성수대교 상판이 내려앉아 꽃다운 학생들을 포함한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5년에는 서울 서초동에서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렸다. 사망자만 502명으로 집계됐다.

대규모 참사는 2000년대에 들어선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2003년에는 대구지하철 화재로 192명의 평범한 시민들이 속절없이 죽어갔다. 5명의 목숨을 앗아간 2013년의 안면도 해병대 캠프 사고, 지난 2월 10명이 깔려 사망한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까지 어처구니 없는 대형 참사는 끊이지 않았다. 그 끝에 실종·사망자가 300여 명에 이르는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라크 전쟁 9년간 미군의 연평균(!) 사망자 수는 900명 정도였다고 한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는 단 한 번만에 300명이 넘는 실종·사망자가 생겼다. 전쟁터보다 더한 나라가 대한민국 아닌가.

그토록 무시무시한 참사들에서 우리가 배운 게 무엇일까. 사고 때마다 쏟아져 나왔던 슬픔과 분노가 만들어낸 게 무엇이었을까.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다. 그토록 많은 대형참사가 할퀴고 갔는데도 대한민국에서는 비슷한 일이 끊이지 않는다. 사고가 터지면 모두가 허둥지둥한다. 그 수많은 사고들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도 얻지 못했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우리는 크고 깊은 슬픔과 분노를 토해 내기에 바빴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와 탐욕스러운 기업들을 비난했다. 그러고는 끝이다. 슬픔과 분노로 달아올랐던 세상이 조금 잠잠해지면 대다수가 조용히 입을 닫았다. 먹고 살기 바쁘다거나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이유를 댔다. 고장난 시스템을 고치자고 외치는 사람들만 거리를 외롭게 지켰다.

"하루 두 끼를 먹어도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

'세월호 침몰사고' 6일째인 21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부두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하고 있다.
▲ "사랑해, 끝까지 기다릴께" '세월호 침몰사고' 6일째인 21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부두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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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을 배우려 하지 않은 대가는 컸다.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되풀이되었다. 이번 사고도 그렇다. 끝까지 남아 승객들을 지켜야 할 승무원들은 자신들만 아는 통로를 통해 침몰 중인 배에서 빠져나왔다. 해상관제센터는 배들이 깜깜이 운항을 하는데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했다. 언론은 특종 경쟁 속에서 선정적인 낚시 기사로 피해자 가족들과 국민들을 우롱했다. 정부와 관료들은 몰염치와 무능함의 본보기를 보여 주었다.

'하루 세 끼 먹는 나라보단 하루 두 끼를 먹어도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이번 세월호 사고로 숨진, 안산 단원고의 새내기 교사 최혜정 선생님의 유족이 <경향신문>에 보낸 편지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 절절한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언젠가 우리는 이런 외침을 그저 한 귀로 흘려 들을 것이다. 두 끼로는 부족하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돈과 경제가 중요한 건 맞다. 그렇다고 돈과 경제가 우리 삶의 전부는 아니다.

사람들은 대형 참사가 터질 때마다 앞다투어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를 향해 분노를 쏟아내고, 몰염치한 기업들의 탐욕을 질타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시스템의 문제를 고치기 위한 일상의 소소한 실천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법과 제도를, 자신과 무관한 곳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보기 일쑤다. 실천과 변화에 따른 불편을 떠올리거나, 눈앞의 손해와 불이익부터 계산한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재난 대응 훈련이나 안전 교육은 대개 형식적으로 이뤄진다. 고3과 같은 입시생들은 아예 열외다. 그들이 재난으로부터 열외될 리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 시간에 공부해야지 무슨 훈련이냐며 항변하는 교사나 학부모들도 없지 않다. 당장 '나'에게 닥치는 문제가 아니면 사람들은 금방 마음의 눈길을 거둔다.

"우리가 건물을 만들지만 이 건물들은 또한 우리를 만든다." 영국 수상 처칠이 1960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공간과 장소의 중요성을 말한 것인 듯하지만, 지금의 이 나라 이 땅을 살피는 데 되새겨보아도 되지 않을까.

우리가 이 나라를 만들지만 이 나라는 또한 우리를 만든다. 세월호 참사는 그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 대한민국이 우리를 만들었으니, 세월호 참사는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사건이 아닐까. 일상속의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또한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제2, 제3의 세월호 사고는 언제든지 우리를 할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세월호 침몰 사고, #대형 참사, #교훈,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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