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추방되나 한국사회10년표류기 이번사건이남긴것 인터뷰 페이스북 공유 트위터 공유 유우성 스토리 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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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han) 기자 l 2014.04.25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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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관련 사진 ▲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가 2심에서 국보법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정원의 증거조작이 사실로 드러났지만 과연 누가, 어떤 이유로 위조문서를 작성했는지 등은 정확한 경위가 드러나지 않았다. 사진은 지난 3월 증거조작 고소건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은 유씨가 변호인들과 함께 "검찰이 수사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항의 기자회견을 연 모습.
ⓒ 유성호

결국 항소심에서도 유우성씨는 간첩 혐의 무죄를 받았다. 1심에 이어 두 번째다. 초유의 증거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 "본질은 간첩이냐 아니냐"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이제 뭐라 할 것인가.

이번 판결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검찰의 증거조작 수사결과 발표가 있던 다음날인 지난 15일자 사설에서 "'증거 조작' 사건, 국정원·검찰이 민변에 완패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는 적확한 표현이 아니다. 국정원과 검찰이 완패한 대상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몇몇 변호사가 아니라 유우성씨라고 해야 옳다.

이번 소송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민변 소속 간부로서 비교적 가까이에서 사건을 지켜본 한 변호사는 "유우성이 장경욱 변호사를 잘 만난 것이 아니라, 장 변호사가 유우성을 잘 만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는 장 변호사가 변호했던 여러 탈북자들과 유씨는 확연히 달랐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간첩 혐의로 조사받고 재판에 넘겨진 탈북자들은 대부분 중간에 포기했다. 하지만 유씨는 그렇지 않았다.

대공수사의 민낯

기사 관련 사진 ▲ 대국민 사과하는 남재준 국정원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4월 15일 서울 내곡동 청사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에 대해 대국민사과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기사 관련 사진 ▲ 간첩조작 사건 수사결과 발표, 대공수사국 처장까지만 불구속 기소 윤갑근 대검찰청 강력부장이 4월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강당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의혹 재판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수사 결과를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이날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의혹 재판 증거조작 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은 피고발인인 남재준 국정원장과 이시원·이문성 검사에 대해 불기소 처분한다고 발표했다.
ⓒ 유성호

유씨 사건의 의미는 단순히 한 탈북자 개인의 무고함이 밝혀졌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선 국정원과 검찰의 대공수사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자신의 절대적 지위와 상대의 약점·무지를 이용하는 비열함, 불법과 탈법을 넘나드는 장기간 구금과 지능적인 가혹행위, 국정원이 해주는 그대로 받아먹기만 하는 검찰의 무능 혹은 일체감, 자신들의 불법행위를 정당화하는 뻔뻔함, 무엇보다 한 번 간첩이라고 확신하면 없는 증거를 만들어서라도 단죄를 해야한다는 무서운 사고방식까지. 국정원과 검찰이 간첩을 잡는 일은 사법의 영역이 아니라 종교의 영역에 더 가까워 보인다.

앞으로 간첩 수사가, 특히 탈북자에 대한 간첩 수사가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기는 힘들 것이다. 당장 검찰이 두 번 바보가 될 수는 없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이달 초 한 자리에서 "앞으로는 (국정원에) 자료가 위조된 거 아니냐? 그런 얘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질문을 검찰이 국정원에게 말하기가 그렇게 힘들었단 말인가. 유씨 사건과 그로부터 잉태된 증거조작 사건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은, 국정원과 검찰이 한몸이 되면 안 된다는 상식을 힘들게 가르쳐줬다.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탈북자에게 변호인 접견권이 보장된 것도 제도적으로 중요한 성과다. 지난해 3월 합신센터에 수용되어 있는 유씨의 여동생 유가려씨에 대해 국정원이 변호인 접견권의 대상이 아니라며 접견을 불허하자, 변호인들은 준항고장을 제출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합신센터는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가 제일 먼저 거치는 곳으로 수많은 간첩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그동안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곳이다. 이번 법원의 결정은 비록 한계도 명확하지만 합신센터를 감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구멍을 뚫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사회적으로 탈북자 간첩사건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번에 보니 이런 지경인데, 다른 사건은 안 그랬을까?' 이런 의심은 지극히 당연하다. 지난 3월 초 발표돼 현재 재판 초기인 소위 '보위부 직파 간첩' 홍아무개씨 사건은 어느 때보다 언론의 취재 열기가 뜨겁다. 간첩 혐의 유죄가 확정돼 형까지 살고 나온 원정화씨에 대해 최근 다른 증언이 나오는 것도 유씨 사건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탈북자들에게 용기와 두려움을 동시에 주다

기사 관련 사진 ▲ 초기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강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유씨는 지난해 3월 증거보전절차에 나온 동생을 보고 끝까지 싸울 결심을 한 듯 돌변했다. 변호인단은 그와 함께 1년 넘게 치열한 싸움을 벌여왔다. 사진은 3월 12일 국정원 증거조작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검찰에 출석한 모습.
ⓒ 유성호

지난 2월 14일 중국 정부가 한국 법원에 문서 조작 사실을 공식 통보하면서 유씨 사건이 새 국면에 돌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변호인단 사무실에 복수의 탈북자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자신들도 국정원으로부터 똑같이 당했다고 했다. 수개월간 독방에 수용된 채 간첩행위에 대한 허위진술을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최종적으로 간첩 사건화 되지 않은 채 하나원으로 보내졌다.

이들과 접촉한 한 변호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여러번 만났는데 초기에는 자신들의 억울함을 알리려는 의지가 강했지만 지금은 좀 달라졌다"며 "아직 준비가 안 돼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유씨 사건을 보며 용기를 얻었지만, 계속 유씨가 당하는 것을 보니 엄두가 안 나는 것 같더라"고 덧붙였다.

이 일은 두 가지를 말해준다. 첫째는 탈북자들도 꿈틀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유씨 사건은 탈북자들에게 용기도 줬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줬다는 점이다. '이렇게까지 드러났는데도 국정원과 검찰과 보수 언론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괴롭히는구나' 하는 두려움 말이다.

지켜보는 탈북자들이 용기와 두려움을 동시에 느낄 만큼 유씨는 고통을 견뎠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다른 탈북자들과 달랐던 것은 아니다. 양승봉 변호사는 "처음 유우성을 구치소에서 접견했을 때, 의지가 충만한 상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양 변호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 말 유씨를 처음 접견했을 당시는 아직 국정원의 허위 진술 강요에 넘어간 상태는 아니었지만, 확고히 중심이 잡힌 상태도 아니었다고 한다. 억울하다고는 했지만, 힘이 없었다. 양 변호사는 "변호인단이 조금만 늦게 만났더라면 내가 보기에는 유씨도 (허위 진술 쪽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컸다"고 말했다. 이날부터 변호인단은 거의 매일 유씨를 접견했다.

낙관적이지 않던 초기 상황, 그리고 반전

초기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 양 변호사의 말이다.

"굉장히 어려운 싸움이었다. 사실 초반에 '나도 솔직히 뭐가 네게 좋은 건지 모르겠다'고 유씨에게 말 한 적이 있다. 생각해보라. 아무리 자신이 간첩이 아니라도 해도, 친동생이 오빠는 간첩이라고 하는 상황인데, 객관적으로 누구 말을 믿겠는가. 그리고 국정원은 퇴로를 차단하고 선택지를 준다. (간첩 행위를) 인정을 하면 한 2~3년 (감옥에서) 살고 나와서 동생과 한국에서 살게 해준다고 한다. 반면 부인하면 20년일 수도 있다. 인정하면 도와주겠다고, 김현희처럼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넌 왜 니 생각만 하고 동생 생각은 안하냐고 하는데,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외부에 도와줄 사람도 전혀 없는 탈북자 신세일 때 말이다."

지난달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야당 위원들에 의해 공개된 지난해 3월 4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증거보전절차 녹음 파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씨에 대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법정에서 흐느껴 울고 있는 동생 유가려씨를 향해 유씨는 단호하게 "울지 마, 울지 말고, 검사님이 무서운 게 아니고 대한민국에선 법이 지켜주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가려야, 변호인을 선임하겠다고 해. 네가 한국 법을 몰라서 그래"라며 "국정원에서 어떤 회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재판정에서는 판사님도 계시고 여기 계시는 분들이 있어서 무서워하지마"라고 외쳤다.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양 변호사는 "그날 모습은 평소와 전혀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유우성은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다, 접견 때도 한숨만 쉴 뿐이었다"면서 "그런데 그날은 돌변했다, 이제 막 한국에 와서 만나본 사람이라고는 국정원 직원들 밖에 없는 동생에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혼신의 힘을 다해 설명하려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날 밤, 재판 후 구치소에 다시 수감된 유씨는 심장 쇼크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지난해 8월 22일 1심 법원은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유씨는 구치소에서 석방됐다. 그는 올해 1월 7일 증거은닉·날조 혐의 고소고발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각종 공개된 자리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러 자리에서 그가 한 발언을 자세히 살펴보면 "저는 간첩이 아닙니다, 억울합니다"까지다. 국정원과 검찰을 적극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다.

양 변호사는 "외부에서 보면 유씨가 투사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면서 "그가 남달랐던 점은 항소심에서 증거조작 사건이 터져서 직접 나서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뒤로 숨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약점이 있는 사람은 그 약점을 잡혔을 때 견디기 힘들다. 유씨의 약점은 명확했다. 대대로 북한에서 나고 자랐지만, 엄격히 말해 북한 공민이 아닌 중국 국적의 화교였다. 이런 약점이 있었지만, 그는 국정원의 회유를 견뎠다. 그리고 끝까지 숨지 않았다.

국정원이 간과했던 것

기사 관련 사진 ▲  '서울시 공무원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를 변호한 양승봉 변호사는 "그는 남다른 투사가 아니다"라며 "증거조작사건이 터져 직접 나서야 한다고 했을 때, 뒤로 숨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유씨의 싸움은 한국 사회의 그늘, 사법이 아닌 종교의 영역처럼 여겨졌던 대공수사의 민낯을 드러냈다.
ⓒ 이희훈

이번 사건에서 국정원이 간과한 것이 있다. 유우성씨는 이미 한국에서 10년 가까이 산 탈북자였다는 점과, 남한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가 매우 강한 젊은 청년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몸속에 북한 출신만 갖고 있는 뼈가 있고 그 뼈를 잘라내서 완전히 한국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잘라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럴 정도로 그는 남한 지향적이었다. 여기에 민변이라는 버팀목이 더해지자 다른 탈북자들과는 다른 양태로 흘러갔다.

그가 닥친 운명 앞에서 숨지 않고 견딘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남한 땅에서 거대한 국가의 폭력적 행위 앞에 노출된 평범한 개인은 좀 더 안전해졌다. 그가 의도했든 안 했든, 우리가 유우성이라는 탈북자에게 감사해야 할 점이다.



© 2014 OhmyNews

유우성의 변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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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낙붕(53. 연수원 25기. 법무법인 상록) : 변호인단의 맏형. 차분하고 신중한 성격으로 평정심을 잃지 않으면서 전체적인 변론의 방향을 설정했다. 긴급조치, 외국인노동자, 미국범죄 관련 사건 등 시국 및 공익 사건의 경험이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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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욱(46. 연수원 29기. 법무법인 상록) : 법정에서 검사를 향해 "조작하려니 힘드시죠"라고 일갈할 만큼 다혈질이다. 갑자기 사라진 유우성을 찾아내 국정원에서 제일 먼저 접견했다. 국정원과 검찰에 맞서야 할 때 주로 총대를 멨다. 합신센터에 수용된 유가려의 변호인 접견권이 불허되자 법원에 준항고를 제출해 관철시키는 등 특히 절차와 관련된 법리에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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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봉(45. 연수원 37기. 법무법인 율) : 다른 일을 거의 제쳐두고 이 사건에 몰두할 만큼 정열을 쏟았다. 변호인단이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의 70~80%를 썼다. 1심 무죄 판결이 나올 때까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유우성을 거의 매일 접견했다. 인신구제절차에 의해 합동신문센터에서 풀려난 유가려도 낮 시간에는 거의 그의 사무실에 머물렀다. 외부 도움을 줄 사람과 접촉하거나 컴퓨터를 뒤져 반박 증거를 수집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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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민(38. 연수원 35기. 법무법인 주원) : 1심과 2심 변호인 최후진술 PT를 모두 맡을 만큼 논리와 언변이 뛰어나다. 아이디어가 풍부해 유가려에 대한 인신구제절차나 중국에 위조 여부 사실조회 신청 등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총 4번 이루어진 중국 현지 출장에 모두 참여한 유일한 변호사다. 양 변호사와 호흡을 맞춰 검찰이 제출한 서류가 위조됐다는 증거들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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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형(38. 연수원 41기. 법무법인 주원) : 국정원 측 핵심 인물인 일명 '큰삼촌 수사관' 증인 신문을 주도했다. 중국 출장 및 의견서 작성, 보도자료 작성 등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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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정(33. 연수원 41기. 법무법인 정평) : 변호인단의 막내. 또한명의 국정원 측 핵심 인물인 일명 '아줌마 수사관' 증인 신문을 주도했다. 자료 수집과 의견서 작성 등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