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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우리 앞에 열린 정보사회는 지난 산업사회의 유물들과의 갈등과 투쟁으로부터 시작된다. 갈등은 불가피하다. 새로운 시대의 첫 장을 위해서는 당연히 존재해야 된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의 본질, 논쟁의 사회적, 철학적 맥락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이다. 논쟁을 통해 정보사회를 이해한다는 것은 현실 속에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정보사회학을 전공한 필자가 매주 하나씩 주요 쟁점들을 분석·정리해서 올린다. 독자 여러분의 논쟁적 참여를 기대한다. – 기자 말

미래에도 종이책이 살아남을까. 전철 안에서 종이책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대부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종이책은 사라지게 될까. 처음 책을 샀을 때는 그 첫 인상이 가져다주는 설렘으로 기억되고 밑줄 치며 읽을 때는 저자와 하나가 되는 느낌을 갖고 나중 서고에 꽂아두고 이따금씩 뒤적일 때는 오래 전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 종이책이 미래에도 살아남을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종이책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다. 우선 전자책의 확산이 만만치 않다. 통계에 의하면 2016년까지 종이책 시장은 매년 2.3%씩 감소하지만 전자책 시장은 매년 30.3%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식으로 전자책의 보급이 확산되면 결국 종이책은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종이책이 사라진다고 해서 '책'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종이책 안에 담겨있는 '콘텐츠'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종이'가 사라지는 것뿐이다. 나무를 원료로 해서 만들어진 종이라는 물질 위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이 전자 파일로 옮겨가면서 그 내용을 보존하고 있던 종이의 사용목적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그 '종이'가 점차 사라지는 것뿐이다.

내용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용은 좀 더 쉽게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사회 진보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질문은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저 복고주의자들의 넋두리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아직도 이런저런 이유로 종이책을 고수하고 있는 출판사들의 치기 어린 투정에 불과한 것인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

미래에도 종이책이 살아남을까. 전철 안에서 종이책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미래에도 종이책이 살아남을까. 전철 안에서 종이책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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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을 하나 던져 보자. 개인이 직접 그린 그림은 사라질 것인가? 회화는 없어지고 컴퓨터그래픽만 남을 것인가?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지속적으로 발달하면서 영상, 이미지 제작을 위한 소프트웨어 역시 계속 발전한다.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아바타와 같은 3D 영화를 보면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을 구별하기가 힘들다. 몽환적 느낌을 주면서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소프트웨어는 계속 좋아지고 있다. 사람이 원하는 모든 종류의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미지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이미지가 컴퓨터로 생산되면서 우리는 쉽게 이미지를 만들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저장하기도 쉽다. 아무 때나 볼 수도 있다. 굳이 루브르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된다. 디지털화된 모나리자가 스마트폰 안에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감상할 수 있다. 모나리자는 '이미' 그려진 작품이니까 디지털 아트에 관해 이야기 해보자.

많은 작가들이 캔버스를 포기한 지 오래다.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프린터를 이용해 출력한다. 컴퓨터의 해상도가 좋아서 원하는 칼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또 프린터의 칼라 잉크 역시 좋아서 컴퓨터의 칼라 그대로를 재현해 낸다. 이제 컴퓨터로 원하는 이미지(또는 회화)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으니 손으로 직접 캔버스 위에 그리는 회화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이제 아무도 더 이상 그림은 그리지 않게 되었는가?

우리에게는 이 질문이 무척이나 낯설게 여겨진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발달했다고 해서 회화의 종말이 가까이 왔다고 하는 주장을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계속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들은 전시되고 팔리고 경매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믿음에 별다른 의혹이 없다.

컴퓨터 그래픽 등장하기 이전에 회화는 이미 한 차례 전쟁을 치른 적이 있다. 카메라의 발명과 사진의 등장이 그 것이다. 현상을 생생하게 재생해 내는 카메라의 등장으로 회화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비판적 예측이 등장했다.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들라로쉬(1797~ 1859)는 사진이 등장할 때 '이 순간부터 회화의 역사는 막을 내릴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지금 시점으로 보면 들라로쉬의 '단견'에 냉소를 보낼 수도 있겠지만 당시 화가들이 느꼈을 위기의식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주장 속에서 우리는 이들이 생각하는 회화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공유할 수 있다. 현실의 충실한 재현이 회화의 목적이라면 우리는 이들의 우려에 동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화는 이런 도전을 무시하고 계속 주요 예술장르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는데 별다른 의의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사진 역시 하나의 예술 장르로 새롭게 탄생했다.   

사진이 회화와는 다른 독립적 예술장르로 발전한 것처럼 디지털 아트 역시 아날로그 그림과는 다른 예술적 장르로 자기 정체성을 확립했다. 둘은 서로를 인정하면서 발전해 가고 있다. 예술의 장르가 다양해 진 것이다. 이제 다시 이 챕터의 주제로 돌아가 보자. 종이책과 전자책의 관계를 회화와 사진 또는 아날로그 그림과 디지털 아트와 대비시켜 논의하는 것이 타당할까?

분명 책과 회화는 다르다. 책은 일반적 의미에서 예술장르에 포함되지 않는다. 책에서 중요한 것은 책 그 자체가 아니라 책 안에 담겨져 있는 내용이다. 책은 미학의 대상이 아니고 학문과 교양을 위한 도구다. 도구는 도구로서의 역할이 끝나면 더는 소용없게 된다. 그림은 일회성 감상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미적 요구를 충족시켜 준다. 책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회용으로 이용된다. 물론 나중 참고용으로 다시 볼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일회성 성격을 갖는다. 그러면 이제 종이책의 운명은 도구로서의 역할을 더 잘 수행하는 전자책에 달려있는 것일까.

"미디어는 메시지다" 

우선 종이책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다음 글을 읽어 보자.

'종이책의 위기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점이 한 가지 있다. 지난 2천 년간 문자혁명을 주도해 온 종이이고, 지난 500여 년간 지식혁명을 주도해 온 종이책이기 때문에 그 패러다임이 쉽게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더욱이 불과 20년도 채 안 된 전자책에 그 자리를 넘겨준다는 일도 기가 막힌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매체는 변화하기 마련이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과거를 통해 확연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 <책의 미래> 47p 

인용한 글의 저자가 종이책의 미래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유는 '매체는 변화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발달한 시대에 책의 내용을 굳이 '종이'라는 매체로 전달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의문 겸 비판이다.

매체는 '종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종이책은 도로, 철도와 같은 아날로크 네트워크를 통해 운반된다. 물리적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되고 물류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책 안에 담겨져 있는 내용만 중요하다면, 다시 말해 종이책이 갖고 있는 어떤 형식은 의미가 없고 그 안에 있는 내용만 중요하다면 책의 내용을 운반하는 매체의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일 수 있다. 종이 책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대부분이 갖고 있는 생각이 바로 이것이다.

이제 반대로 종이책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어 보자.

'확실히 전자책의 미래는 밝다. – 중략 – (그러나) 문화가 아무리 변화하고 e-북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인간의 손을 거친 순수예술로서의 책은 남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수작업으로 하는 목제나 철제 인쇄기의 유산으로, 손으로 만든 활자, 손으로 한 인쇄, 손으로 꿰맨 제본도 그대로 존재할 것이다. 출판사가 책의 미래에 관해 기대하는 것만큼 항상 과거를 바라보는 인쇄업자도 있을 것이다. 구텐베르크 시대와 그 이전에 존재했던 솜씨와 기술의 결합을 보존하려는 희망을 품고 말이다.' - <책, 문명과 지식의 문화사> 282p

이 책의 저자 니콜 하워드의 이런 주장은 어느 정도 감상적 주장으로 여겨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의 요지는 종이책과 전자책은 다른 미디어라는 것이다. 같은 풍경을 대상으로 했다 하더라도 회화와 사진이 서로 다른 장르인 것처럼 콘텐츠가 동일하다 하더라도 종이책이 가져다주는 아날로그적 질감과 전자책이 가져다주는 편의성은 서로 다른 미디어로 귀결된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질감과 편의성 차이 이전에 본질적으로 다른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제 위에서 인용한 두 글에 기초하여 의미 있는 질문 하나를 던져 보자. 우선 잠시 마샬 맥루한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미디어의 '내용'은 우리가 미디어의 본성을 아는 데 있어서 오히려 방해가 되기 쉽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그 전임자를 예술형태로 만들었다. 인쇄가 새로운 테크놀로지로 등장했을 때 중세는 예술의 형태로 받아들여진다.' - <미디어의 이해> 25p 

이미 많은 사람들이 종이책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다. 우선 전자책의 확산이 만만치 않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종이책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다. 우선 전자책의 확산이 만만치 않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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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술의 발명이 중세의 기록문화를 소멸시킨 것이 아니라 중세의 기록문화를 예술의 형태로 변환시켰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 이전 미디어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미디어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맥루한에 의하면 모든 매체는 그 매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관계없이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같은 메시지라 하더라도 얼굴을 보면서 직접 말하는 것과 신문을 통해 이해하는 것, 또 방송을 통해 알게 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즉 매체가 다르면 메시지도 달라지고 결국 메시지를 수용하는 수용자의 인식세계도 달라진다.

매체가 메시지라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다시 말해 내용보다 전달하는 매체나 방식이 더 중요하다면 결국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전달하는 매체가 다르면 수용자들에게는 다르게 인식되기 때문에 다른 미디어가 된다.

이제 이 논리를 책에 적용해 보자. 종이책과 전자책은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하여 전달된다. 같은 콘텐츠이지만 하나는 아날로그 시스템을 통해 다른 하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 전달된다. 수용자들의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논리에 따르면 종이책과 전자책은 서로 다른 미디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자책이 활성화된다고 해서 종이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사람 역시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습득한다. 그러나 독서를 할 때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른 맥락이다. 내용 이전에 자신이 선호하는 미디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종이책의 미래를 마샬 맥루한의 관점에서 분석해 보는 것은 하나의 의미 있는 시론(試論)이다. 만약 종이책이 살아남는다면 그 이유는 종이책이 전자책과 다른 미디어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전자책과 종이책을 둘러싼 논쟁은 이제 시작되었고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 정리될지 모른다. 그리고 이 논쟁은 아마도 사진과 회화가 벌렸던 논쟁보다 더 치열할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김홍열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독문학, 국문학을 공부했고 성공회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 박사 과정 후 <정보네트워크 변화에 따른 가상공간의 확장과 권력관계의 재구성>으로 학위 취득했다. 저서로는 <축제의 사회사> (2010. 한울), <디지털 시대의 공간과 권력>(2013, 한울)이 있고 현재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성공회대와 명지대에서 '과학기술의 사회학'과 '정보사회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태그:#종이책 ,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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