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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에서 만난 한 어린이 팔에 크로스로 새겨진 'Dear mother' 글귀. 문신이라기 보다 흉터에 가까웠다.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한 어린이 팔에 크로스로 새겨진 'Dear mother' 글귀. 문신이라기 보다 흉터에 가까웠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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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살(SAMSAL-한끼의 식사기금) 지부(에티오피아 현지 방과후 학교) 정원에서 만난 아이는 자신을 '존 유한니스'(12세)라고 소개했다. 그는 자신의 팔뚝에 날카로운 어떤 물체를 이용해 글자를 새겼다. 문신이라기 보다 흉터에 가까웠다.

"뭐라고 써 놓은 거니?"라는 내 질문에 그는'Dear mam'이라고 읽었다. 그의 설명이 아니었다면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글자다.

자신의 팔뚝을 보며 돌아가신 어머님을 떠올렸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한순간이라도 엄마의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려울 땐 늘 그녀가 옆에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그가 자신의 팔에 글자를 새긴 이유란다.

"2년 전에 에이즈로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님도..."

구두닦이 소년, 둘째 존유한니스(우측), 막내 아포웨르크(좌측)
 구두닦이 소년, 둘째 존유한니스(우측), 막내 아포웨르크(좌측)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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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설은 삼살(SAMSAL)과 코이카(KOICA)가 협력하여 조성한 방과후 교육운영사업을 추진하는 곳이다. 한국전 참전 에티오피아 병사 후손들의 교육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 지부장인 하옥선씨는 어느 날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시내를 걷다가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구두를 닦고 있는 세 아이들을 발견했다.

에티오피아엔 일을 하기 싫어 노숙자 또는 떠돌이로 사는 사람들이 많단다. 취직을 해 한 달간의 급여를 받으면 그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일을 하지 않는 이들도 다수라고 했다. 1년 내내 비슷한 온도와 기후, 그것이 그들의 습성까지 바꾸어 놓았을지 모를 일이란다. 

"운동화도 닦니?"

매연과 먼지가 자욱한 도시. 한참을 지켜봐도 아무도 구두를 닦으려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더란다. 뭔가 돕고 싶다는 생각에 '운동화도 닦을 수 있냐'고 묻자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표정으로 반기는 눈망울. 운동화를 닦는 건지 더럽히는 건지. 구두 솔을 이용해 먼지를 털고 운동화에 비눗물을 바르고 물을 칠한 흰 운동화는 더 지저분해졌다.

"이 아이들이 얼마나 성심성의껏 운동화를 닦아 주는지 (깨끗해지고 그렇지 않고를 떠나)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하씨가 얼마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3비르(birr 한화 180원)를 요구했다. 그들의 성실함에 감동한 하옥선씨가 5비르를 건넸더니 3비르 이상은 절대 받을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는 아이들. 왜 이 뜨거운 뙤약볕에 거리에 나왔는지 물었다.

"2년 전에 에이즈로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도 아버님을 따라 가셨어요."

맏이인 큰 아이(14살)와 둘째(12살), 막내(8살)는 졸지에 고아가 되었다. 부모가 남겨준 집은 월세 한 칸이다. 한 달에 300비르(1비르, 한화 60원)를 지불해야 한다. 월 300비르의 집이라면 누렇게 녹이 슨 양철 지붕에 쇠똥을 바른 벽, 두 평 남짓한 공간이란 걸 (14년간 그곳에서 살아온) 하씨는 잘 알고 있었다.

"혹시 너희들 삼살(samsal)지부라고 아니? 시간 날 때 그곳에 와서 책도 보고 컴퓨터도 배울래? 아줌마가 돈 받지 않을게"

6개월 전 하씨와 구두닦이 아이들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가끔 찾는 아이들을 위해 컴퓨터 교육도 받게 하고 얼굴도 씻도록 했다. 컴퓨터가 마냥 흥미로웠던지 이 아이들이 찾는 횟수가 잦았다.

When You Grow Up...

아이들을 위해 오마이뉴스 기자수첩을 찢어 메모를 적어줬다. '크면 한국어 공부해라'라고... 문장이 틀린 것 같다.
 아이들을 위해 오마이뉴스 기자수첩을 찢어 메모를 적어줬다. '크면 한국어 공부해라'라고... 문장이 틀린 것 같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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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서 내 구두도 닦아 줄 수 있어?"

한국전 참전용사 에티오파아 장병 후손 장학금 지급을 위해 현지 출장에 동행했던 '화천군청 자전거 기획담당' 윤선희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포웨이크(막내 아이, 8살)는 구두닦이 통을 가져왔다. 직사각형 모양의 송판으로 만든 그것은 우리네 1970년대 대도시에서 볼 수 있었던 구두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두닦이 형제들, 그야말로 성의를 다해 구두를 닦았다.
 구두닦이 형제들, 그야말로 성의를 다해 구두를 닦았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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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를 털고, 구두약을 바른 후 천을 이용해 광을 내는 방법 또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두에 입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대고 입김을 불어 윤기를 내기 위해 애쓰는 두 꼬맹이의 모습. 동생들을 위해 학업을 포기했다는 맏이는 (구두 닦는)일 때문에 그날 그곳에 오지 못했다고 했다.

"가까운 시장이 어딘지 물어서 이 아이들 옷이라도 사다 주고 싶어요."

두 꼬마 형제를 위해 이무영 화천 부군수와 윤선희 자전거 정책 담당은 옷을 한벌 선물했다.
 두 꼬마 형제를 위해 이무영 화천 부군수와 윤선희 자전거 정책 담당은 옷을 한벌 선물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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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세탁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남루한 그들의 옷은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다. 옷을 산 이후로 한 번도 세탁을 하지 않은 듯했다. 마음씨 착한 윤선희 담당은 그것이 못내 가슴이 아팠나 보다. 낯선 도시, (혼자가기 무섭다고 생각했던지) 부군수와 하옥선씨를 동행해 결국 아이들을 위한 옷을 세 벌 사왔다.

"집에는 매일 가니? 그리고 식사는 어떻게 하니?"

내 느닷없는 질문에 두 아이는 구두닦이 통에서 허름한 천 조각을 끄집어내곤 그 위에 눕는 시늉을 했다. 집에 가지 못하는 날엔 길거리 아무 곳에서나 거적을 펴 놓고 잠을 잔다는 표현을 그렇게 했다. 밥은 식당에서 버린 음식으로 해결한단다.

연출이 아닙니다. 집에 가지 못하는 날은 길에서 이렇게 잠을 잔단다.
 연출이 아닙니다. 집에 가지 못하는 날은 길에서 이렇게 잠을 잔단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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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치고 직업전선에 뛰어 든 아이 삼형제는 하루에 20비르(한화 1200원)를 번다고 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을 했을 때 계산상 한 달에 600비르를 번다. '300비르의 집세를 내면 그래도 300비르는 남으니까 식비는 되겠다'라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막내는 "빼앗길 때가 더 많아요"라고 말했다.

불량 청소년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며칠 간 모은 돈을 전부 빼앗겼다. 대부분의 그곳 사람들은 은행계좌가 없다. 시내에서 은행을 찾기도 힘들다. 또 자리를 옮기면 또 다른 불량한 사람들에게 돈을 빼앗기기를 반복한다. 나름 요령도 생겼다. 집안 한구석 또는 거리 어느 모퉁이에 돈을 숨겨 놓은 방법. 주머니에 현금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귀신같이 안다고 했다.

아이들의 구두닦이 장비, 과거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의 구두닦이 장비, 과거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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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 꿈이 뭐니?"

내 질문에 아이들은 고개를 숙였다. 괜한 질문을 했나보다. 의식주가 시급한 아이들은 당장 내일이 걱정이었던 거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글을 하나 써서 줄 테니까, 아저씨 말대로 해 줄래?"

'When you grow up, study korean language(크면, 한국어 공부 해라).'

오랜만에 써보는 영어라 '랭귀지' 스펠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허접하게 쓴 내 쪽지를 받은 존유한니스(둘째아이)는 'Thank you'를 반복하며 바지 주머니 깊숙한 곳에 쪽지를 넣었다.

'한국어를 배워라'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직은 낯선 미지의 이 땅에 '언젠가 한국기업들이 대거 진출할 기회가 올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에 한국어에 능통한 원어민이 있다면 취업이 한결 쉬워질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 에티오피아 그 네 번째 이야기는 '길거리에서 몸무게를 달아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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