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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낭콩보다 더 푸른 남강이 휘돌아 가는 진주의 진산(鎭山)은 비봉산이다. 높이 138.5m인비봉산은 고분처럼 왕들의 고분처럼 봉긋봉긋 부드럽다. 최근에 비봉산에서인 선학산(134.2m)에 이르는 길에 봉황의 날갯짓을 형상화한 '봉황교'가 만들어졌다. 비봉산 정상을 거쳐 선학산 정상까지 4.5㎞ 구간의 도심 등산로가 연결되어 진주를 순환하는 명품 둘레길이 탄생했다. 명품 시계는 없어도 진주의 명품 둘레길을 마다할 수 없어 쉬는 날 길을 나섰다. 진주 시내 갤러리아 백화점 앞 사거리에서 시내버스에서 내렸다. 갤러리아 백화점을 가로질러 맞은 편에 옛 진주 객사 자리에는 주상복합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다. 아파트 옆 한쪽에 있는 주춧돌이 객사 터임을 알려준다.

길 건너는 "중 상투와 처녀 불× 빼곤 다 있다"는 서부 경남 최대 상설시장인 중앙유등시장이 있다. 여기서 비봉산 자락은 10분 이내 거리다. 산 정상까지 30분이면 올라갈 수도 있고 걸음 빠른 사람은 올라갔다 내려오기도 한다. 다행히 햇살은 좋았다. 바람은 심어진 나무의 초록 잎을 살랑살랑 흔들거리며 지나갔다. 진주중학교와 진주고등학교를 지나자 삼거리에 정자나무가 서 있다. 정자나무는 수령 50년 정도의 느티나무다. 느티나무에 앉아 걸어온 길을 잠시 둘러보니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의 신나는 재잘거리는 소리가 저만치 따라온다. 

삼거리 서편으로 비봉산이고 동편으로는 선학산 가는 길이다. 비봉산은 예전에 대봉산이었다. 옛날 대봉산(大鳳山)이라 불렸다. 조선 건국 무렵 이성계를 도운 무학대사가 뛰어난 인물이 많이 나는 대봉산 정기를 끊기 위해 산에 있는 큰 바위를 깨자 봉황이 날아갔다고 한다. 이후 대봉산은 비봉산으로 바뀌었다. 봉황의 전설이 깃든 비봉산 동편에 자리 잡은 의곡사는 봉황이 알을 품는 명당자리라 한다. 의곡사라는 절 이름도 조선이 임진왜란이라 불렀던 <동북아 국제전쟁> 때 승병을 양성하고 왜적과 맞서 싸웠던 까닭에 근정사에서 '의로운 골짜기에 있는 사찰'이라는 뜻에서 의곡사(義谷寺)로 바뀌었단다.

의곡사에는 ‘父母生天目連經 南無阿彌陀佛 塔(부모생천목연경 나무아미타불 탑)’이란 한자(漢字)와 ‘부묘?쳔목연경’이란 한글이 함께 새겨진 작은 비석이 정겹게 서 있다.
 의곡사에는 ‘父母生天目連經 南無阿彌陀佛 塔(부모생천목연경 나무아미타불 탑)’이란 한자(漢字)와 ‘부묘?쳔목연경’이란 한글이 함께 새겨진 작은 비석이 정겹게 서 있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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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산 의곡사'란 편액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으로 끝까지 지조를 잃지 않은 오세창 선생이 쓴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현판은 다른 이의 글씨다.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 오른편에 산기슭에 '父母生天目連經 南無阿彌陀佛 塔(부모생천목연경 나무아미타불 탑)'이란 한자(漢字)와 '부묘쳔목연경'이란 한글이 함께 새겨진 작은 비석이 정겹게 서 있다. 목련경은 아들 대목건련(나복)이 아비지옥에 빠진 어머니 청제부인을 부처님께 공양하여 건져낸 일을 기록한 불경으로서, 음력 7월 보름 백중날이면 이 경전을 읽고 기념한다고 한다.

대웅전을 새로 짓는 공사 중이었고 임시 법당에서는 법문이 한창이었다. 조용히 귀 기울여 들었다. "여기 의곡사에서 기도한다고 집안일에 소홀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 기도라는 성스러운 일을 한다고 다른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말씀에 커피 한 모금 들이키니 달짝지근하다.

오솔길 사이로 진주 도심이 보인다.
 오솔길 사이로 진주 도심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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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곡사에서 숨을 고른 뒤 다시 절을 나왔다. 산으로 가는 여러 길이 있다. 가장 빨리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버렸다. 사람 사는 동네 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시멘트 좁은 길을 몸이 불편한 어르신 한 분이 지팡이에 의지한 채 잘 지나가신다. 막다른 길은 없었다. 모두가 산으로 갈 수 있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뚫고 보랏빛 향기처럼 옹기종기 모인 봄까지꽃이 낯선 길을 찾아든 나를 반겼다. 골목길 사이로 진주 도심이 보인다. 불과 20여 분 거리에 이렇게 한적한 곳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골목길을 지나 좀 더 위로 올라가자 오솔길이다. 넉넉한 비봉산이 품은 길을 알지 못했다. 그저 산 정상으로만 올라가는 길만 알았을 뿐이다.

<봉래동 느티나무>로 올라가는 길은 굽이 굽이 우리 인생길을 닮았다.
 <봉래동 느티나무>로 올라가는 길은 굽이 굽이 우리 인생길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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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옆으로는 부지런한 시민들이 만든 밭들이 나를 호위하듯 펼쳐 있다. 매화나무 아래는 고추 모종을 심는 할아버지. "익어도 좋고, 안 익어도 맛있는 고추"라는 어르신의 재치 어린 말에 한바탕 웃었다. 고추 모종을 심는 어르신을 뒤로하고 다시 10분여. 300여 년의 당산나무 <봉래동 느티나무>가 시원하게 서 있다. <봉래동 느티나무>를 홀아비 느티나무라고 부른다. 원래는 두 그루였는데 한 그루가 죽고 없어지면서 홀아비가 되었단다. 느티나무는 비봉산과 선학산 그리고 시 외곽 하촌동으로 나뉘는 삼거리에 서 있다. 시 외곽에 사는 시민들이 도심으로 오다 여기 느티나무 아래에서 나처럼 땀을 훔치며 잠시 걸음을 쉬어 갔을 것이다.

경남 진주 <봉래동 느티나무>
 경남 진주 <봉래동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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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동 느티나무>에서 비봉산 정상은 0.5km, 의곡사는 0.3km, 말티고개 봉황교는 2.5km다. 비봉산 정상이 아니라 봉황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멘트로 포장된 산복도로는 원래가 농로로 개설되었다. 덕분에 비봉산 속살을 구경할 수 있다. 포장길 아래로 흙길이 있다. 능선 주위에는 곳곳에는 느티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걸음을 붙잡는다.

산 능선에서 만난 <소망의 돌>.
 산 능선에서 만난 <소망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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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동 느티나무>를 지나 두번째 느티나무를 만났을 때 지압보도와 함께 <소망의 돌>이 보인다. 양손이 음각된 바위에 손을 가만히 데었다. 눈도 지그시 감았다. 무덤 봉분 위로 제비꽃 무리가 한들한들 바람에 짙은 보랏빛 춤을 춘다. 보랏빛 제비꽃 무리 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폭신폭신한 흙이 내 몸무게만큼 살짝 들어갔다. 옥봉동 가야고분이 보이고 그 너머로 진주성과 남강이 보인다. 3번째 느티나무 그늘에서 쉬었다. 근처 야외 헬스 기구에 열심히 운동하는 어르신들 사이로 진주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 UhUh ) 둘이 걸어요'라는 노래 <벚꽃엔딩>이 절로 흥얼거리게 한다. 뾰족한 가시 사이로 하얀 꽃이 그만인 탱자나무가 서 있기 때문이다. 둘레길 사이사이로 농작물을 보호하려는 농부들이 울타리로 심은 까닭에 탱자나무가 자주 보인다. 오래전부터 심은 탱자나무 울타리는 도둑을 막겠다는 의미보다는 가시가 귀신을 쫒는다는 주술적인 의미로 더 많이 심었다고 한다. 지금은 둘레길을 걷는 시민들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어른 키보다 더 높게 심어져 있다.

경남 진주 비봉산과 선학산을 잇는 봉황교
 경남 진주 비봉산과 선학산을 잇는 봉황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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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봉황교에 이르렀다. 봉황의 왼쪽 날개에 해당하는 말티고개에 큰길을 내고 난 뒤부터 고려 시대와 조선 초에 융성했던 인재가 줄었다는 전설이 있다. 말티고개 도로개통으로 꺾였던 봉황의 왼쪽 날개가 다시 이어져 봉황이 힘차게 날갯짓을 할 수 있듯 모두가 비상(飛上)하는 기운을 받을 수 있을 듯하다. 봉황교는 길이 56m, 폭 3m 규모로 지상 12m 높이로 봉황의 날갯짓을 형상화했다. 일일 교통량이 4~5만 대에 달하는 말티고개의 여건을 고려 교량 중간에 교각이 없는 구조다. 봉황교 개통으로 4.5km의 등산로는 물론이고 남강둔치 산책로를 포함 10km의 시 순환 둘레길이 완성된 셈이다. 봉황교 근처는 작은 공원이 꾸며져 있다. 봉황교 아래로 굽이치는 물줄기처럼 아스팔트 길이 놓여있고 지나가는 차들이 물고기인 양 유유히 지나간다. 길 따라 시내로 가면 진주 강씨의 시조인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 장군을 모신 봉산사가 있다.

숲을 걷는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다. 저마다 좋아하는 음악을 길동무 삼는다.
 숲을 걷는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다. 저마다 좋아하는 음악을 길동무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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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교를 지나자 햇살이 잘 보이지 않는 숲 한가운데다. 산속을 걷는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신 나는 트롯트 음악을 길동무 삼는다. 40~50대 중년들은 '사랑은 저만치 간다'는 포크송을 들으며 걷는다. 젊은 사람은 노래 소리를 훔쳐 들을 수 없다. 아예 귀에 이어폰을 꽂고 걸어서 어떤 노래인지 알 수 없다. 숲 한가운데에서 고개를 들었다. 봄 햇살이 나뭇잎에 어려있다. 초록 물감을 손에 묻힌 듯 내 손과 마음도 초록이다.

경남 진주 선학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진주 시내 전경
 경남 진주 선학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진주 시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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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산 전망대를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오리나무'가 보인다. 꽥꽥거리는 오리와는 전혀 다른 오리나무는 오리(五里)마다 이 나무를 심어놓고 이정표로 삼았다고 한다. 선학산 전망대에 올랐다. 남강과 진주성은 물론이고 진주 시내 전경이 다 들어온다. 진주 시내 구경을 마치고 동방호텔 쪽으로 내려왔다. 활터였던 람덕정 앞에 겹벛꽃이 활짝 피었다. 하얀색과 분홍색의 겹벚꽃은 마치 꽃 떡처럼 맛나게 피었다.

등산로는 산길 위치에 따라 저너머 풍경이 다르다.
 등산로는 산길 위치에 따라 저너머 풍경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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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곡사를 거쳐 선학산 전망대까지 보통은 2시간이며 충분히 올 거리를 나는 4시간 가까이 걸었다. 걸어오는 산길 위치에 따라 저너머 풍경이 다르고 진주의 속살을 훔쳐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산 능선 주요 길목마다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 정자나무 아래에서 바라보는 진주의 풍광은 저마다 달라 걸음을 재촉할 수 없었다. 명품 시계는 없다. 보석처럼 빛나는 진주의 진주(珍珠)를 가졌다.

※ 등산로 코스

○비봉산 왕복코스(7.4km, 1시간 50분 소요) : 봉산사-비봉산 정상-봉황교(말티고개)-비봉산 정상-봉산사
○선학산 왕복코스(5.2km,1시간30분) : 상대배수장-선학산전망대-봉황교(말티고개)-선학산전망대-상대배수장
○종주코스(6.3km,1시간40분) : 봉산사-비봉산정상-봉황교(말티고개)-선학산전망대-상대배수장

덧붙이는 글 | 경상남도 인터넷신문 <경남이야기>http://news.gsnd.net/



태그:#진주 둘레길, #비봉산, #선학산, #봉황교, #의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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