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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령암지 가는 길

개령암지 마애불
 개령암지 마애불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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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령치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고리봉 쪽으로 올라간다. 이곳은 출입 통제구역이기 때문에 지리산 국립공원 직원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중간에 우리는 인월 초등학교 학생들을 만난다. 우비를 입고 재잘거리며 개령암지로 간다. 이처럼 비가 오는데 문화유산을 찾는 애들과 선생님의 정성이 대단하다. 하긴 우리도 이런 환경에서 해발 1200m가 넘는 폐사지를 찾고 있으니 문화유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멀리서 보니 바위 절벽 앞에 안전진단을 실시하기 위한 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나무로 만든 일종의 전망대로, 안정된 자세로 불상을 보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모두 이 구조물에 올라 마애불상군을 개관한다. 불상을 조각한 암벽이 검은색 현무암 재질이어선지 불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전체 12기의 불상이 있다고 하는데, 언뜻 보기에는 서너 개 밖에 확인이 안 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두 부처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두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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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눠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각 부분에 세 기씩 있어 모두 12기가 되는 것이다. 1992년 9기만 확인되어 보물 제1123호가 되었으며, 2000년 추가로 3개를 확인 보물이 12기로 확대되었다. 이들 마애불에 대해 민학기 선생이 설명을 하려는데, 막 도착한 초등학생들이 재잘거려 설명이 쉽지 않다. 또 학생들도 함께 들을 수 있도록 쉽게 설명을 하자니 그것도 쉽지 않다. 잠시 후 학생들이 내려간다.

부처님 두 분이 먼저 확인된다

우리는 이제 마애불에 대해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간다. 우선 눈에 띄는 부처님이 세 분이다. 가운데 가장 큰 불상은 좌상으로 높이가 4m나 된다. 울퉁불퉁한 자연 암벽에 조각을 해서 양각이 고르지 못하다. 특히 인중 부분이 쑥 들어가 부처님이 합죽이처럼 보인다. 전체적으로 원만구족하다기보다는 우울하고 그로테스크해 보인다. 그것은 이 지역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마애불을 바라보는 인월초등학교 학생들
 마애불을 바라보는 인월초등학교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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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궁 계곡에는 마한의 별궁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고, 후백제 견훤이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넘어가기 위해 이 지역을 공략했다는 전설도 있다. 그래서 일부 재야사학자들은 마애불상군이 후삼국시대 만들어졌다고 추정한다. 남원지역은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한 892년 이후 후백제에 속하는 땅이 되었다. 견훤은 이 지역을 정복하고 나서 그 세를 과시하고 종교적 원력을 빌기 위해 마애불상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있다.

가운데 가장 큰 불상 옆에는 '세전·명월지불(世田□明月智佛)'과 같은 명문이 확인된다고 한다. 이것은 온 세상에 밝은 달처럼 지혜를 선사하는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영토에 부처님의 지혜와 가피가 가득하길 바라는 염원을 새겨 넣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후백제는 견훤(甄萱)과 신검(神劍) 부자간의 갈등으로 936년 망하고 말았다.

명월지불
 명월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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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지불은 조각에 있어서 얼굴부분의 양각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진다. 육계와 나발, 눈썹과 백호, 눈과 귀, 코와 입술의 조각이 분명하다. 그 중 코의 양각이 가장 두드러진다. 목의 삼도가 분명하고 옷주름은 약하게 양각으로 처리했다. 두 손은 옷 속에 집어넣어 보이지 않는다. 두 발 역시 가부좌 자세이나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가부좌 아래로 연꽃 대좌가 어렴풋이 확인된다.

두 번째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명월지불 왼쪽 위에 있는 불상이다. 얼굴은 양각으로 옷은 선각으로 표현했다. 그래선지 눈, 코, 입, 육계와 나발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높이가 2m쯤 되고, 오른쪽 아래 비로자나불이라는 명문이 보인다. 비로자나불은 청정법신(淸淨法身)으로, 중생이 간절히 희구하면 나타나서 진리를 가르쳐준다고 한다. 이들 외에도 1-2m의 작은 불상들이 몇 기 더 보인다. 조각수법이나 양식이 비슷해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선유폭포

선유폭포
 선유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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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마애불상군을 보고 정령치로 다시 내려온 우리는 차를 타고 다음 행선지인 고기리(高基里)로 내려간다. 중간에 선유(仙遊)폭포가 있어 그곳엘 잠깐 들른다. 선유폭포는 선녀가 놀던 폭포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매년 칠월칠석날 아름다운 선녀들이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며 놀았다. 그들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올라갈 줄 몰랐다고 한다. 폭포 쪽으로 접근하니 물 떨어지는 소리가 꽤나 크게 들린다. 봄철인데도 수량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면 칠석쯤 되는 여름에는 수량이 더 많을 것이고 폭포도 더 장관을 이룰 것 같다. 선유폭포는 또한 이단 폭포여서 못이 두 개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더 웅장하다. 선녀들은 경치에 반해 수량에 반해 이곳으로 내려와 목욕을 했을 것이다. 선유폭포는 남원쪽 지리산에서는 구룡폭포와 함께 가장 유명하다.

조선 전기와 중기에 기록된 파근사 이야기

조경남의 <난중잡록>
 조경남의 <난중잡록>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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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폭포를 보고 난 우리는 주천면 고기리 안터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파근사지(波根寺址)로 향한다. 파근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 남원도호부 불우조에 그 이름이 나온다. 그러나 지리산에 있다는 정도로 아주 간략하게 설명된다. 이 책에 나오는 대표적인 남원의 절이 만복사, 승련사, 화엄사, 연곡사다. 고려 말의 학자 목은 이색은, 남원의 산수가 좋고 경치가 빼어나 절들이 많다고 적고 있다.

이후 파근사가 비교적 자세히 언급되는 책은 <난중잡록(亂中雜錄)>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조경남(趙慶男)이 지은 책으로, 13세 때인 1582년(선조 15년)부터 1610년(광해군 2년)까지 난중에 일어난 중요한 사실을 엮어 4권으로 완성했다. 내용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기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폐허가 된 파근사
 폐허가 된 파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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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따르면 조경남은 1597년 9월 7일 파근사지에 머물고 있다. 그것은 왜적 떼가 온 세상을 차지하고 있어 일을 도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산속에 머물 수 밖에 없음을 통탄하고 있다. 이긍익의 <연려실 기술> '난중 시사총록'에도 조경남의 의병활동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남원 선비 조경남(趙慶男)이 지리산 파근사(波根寺)에 피난하고 있다가 강개한 마음으로 의병을 일으키니 이에 천인 박언량(朴彦良) 등이 그를 따라서 낙오된 적군을 많이 죽여 피난하는 사람을 구제하였다. 9월 22일에 적의 머리 36급을 베었고 12월 7일에 적 1백 23급을 산음(山陰)에서 베었는데, 그가 거느렸던 군사는 손상을 입은 자가 없었으며 또한 공을 자랑하여 적의 머리 벤 것을 나라에 바치지도 않았다. 또 일찍이 <난중잡록(亂中雜錄)>을 지었는데 내용이 자못 소상하였으며 또한 나라 일에 분개하는 마음을 발하는 뜻이 많았다." 

파근사지 가는 길에 만난 자연풍경

지리산 깃대종 히어리
 지리산 깃대종 히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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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근사지 가는 길은 60번 지방도 비폭교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비폭골을 따라 1.5㎞쯤 올라가면 파근사지가 나온다. 비폭교에서 우리는 비지정 탐방로를 따라 들어간다. 그 때문에 지리산 국립공원 직원이 동행한다. 직원 중 한 명이 생태전문가여서 지리산의 식물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비폭교에서 비폭골로 접어드는 초입에 지리산 깃대종인 히어리(Corylopsis coreana)가 보인다.

히어리는 키가 1-3m쯤 자라는 낙엽교목으로 조록나무과에 속한다. 잎이 나오기 전 이른 봄 꽃이 핀다. 가지 끝에 꽃이 촘촘하게 피며 노란색을 띠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꽃받침, 꽃잎, 수술은 각각 5개고, 암술은 2개다. 한국 특산종이라 그런지 더 정감이 간다. 우리는 이제 계곡을 따라 골짜기로 올라간다. 중간 중간 작은 폭포가 여럿 보인다.

물속의 도롱뇽 알
 물속의 도롱뇽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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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물웅덩이에서 도롱뇽 알을 볼 수 있다. 또 봄을 알리는 꽃도 여럿 보인다. 현호색, 돌방제비꽃, 꿩의 바람꽃, 앉은 부채 등 귀한 꽃들을 볼 수 있었다. 내 눈에는 현호색과 제비꽃 정도만 보이는데 국립공원 직원은 꿩의 바람꽃과 앉은 부채를 쉽게 찾아낸다. 그 중 앉은 부채는 꽃을 잎 속에 가리고 있어 정말 찾기가 어렵다. 또 날씨가 흐리고 비가 와서 꽃을 펼치지 않고 오므리고 있다.

앉은 부채
 앉은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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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부채는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지만, 땅 위로는 줄기가 거의 자라지 않고 잎과 꽃만 핀다. 잎은 길이와 너비가 30~40㎝ 정도며, 잎 아랫부분이 말려 심장 형태로 이룬다. 그런데 잎을 펼쳐보니 마치 취나 상추처럼 넙적하다.

잎 아래 땅바닥에 연한 자주색의 꽃을 피웠는데, 아름답다기보다는 신비하다. 꽃자루가 거의 없고 자주색 꽃잎이 도르르 말려 마치 거북이 등처럼 보인다. 앉은 부채는 물가의 그늘진 곳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골짜기 물가에서 앉은 부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꽃과 나무를 벗 삼아 파근사지로 올라간다.


태그:#정령치, #개령암지 마애불, #선유폭포, #파근사, #히어리와 앉은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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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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