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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고 있다.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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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 → 왜곡된 속보경쟁 → 예의에 어긋난 취재 → 거짓 인터뷰 논란 → 자극적 영상 → 선정적 어휘 남발 → 정정·사과보도 인색.

국가적 재난인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된 국내 언론들의 취재 보도 시스템이 드러낸 민낯이다. 16일 오전 사고 직후부터 온 국민들은 생존자들의 구조를 기원하며 눈물과 한숨, 슬픔에 젖어 있을 무렵,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기능에 충실해야 할 언론이 사건 초기부터 '전원구조'라며 대형오보를 낸 데 이어 왜곡된 속보경쟁과 비윤리적 취재보도 등으로 큰 신뢰를 잃고 말았다.   

1970년 321명이 목숨을 잃은 여천 앞바다 남영호 침몰사고, 1993년 292명이 숨진 부안군 위도 앞바다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1995년 502명의 생명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2003년 191명의 무고한 시민이 사망한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등 대형 참사를 겪을 때마다 보여주었던 대한민국 언론의 왜곡된 속보경쟁과 안일한 당국의 발표에 우왕좌왕하는 취재보도 시스템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의 수준임을 입증해 보였다. 마치 재난보도의 매뉴얼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특히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는 과거 남영호나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에서 보여준 것들과 흡사하다. 과적 또는 탑재인원 초과, 안전 불감증, 초기대응 허술 등이 낳은 '인재'라는 점이 같지만 정부의 재난관리 능력은 별반 나아진 게 없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한국기자협회>, "재난보도 준칙 마련하겠다"...그동안 뭐했나?

세월호 침몰 사고를 통해 <한국기자협회>는 부랴부랴 '재난보도 준칙'을 마련했지만, 부끄러운 실상을 또 한 번 드러낸 후여서 안타까움을 더하게 한다. <한국기자협회>는 세월호 침몰사고 이틀 만인 17일에야 성명을 내고 "지난 2003년 제정을 추진하다 무산된 <재난보도 준칙>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엄청난 국가적 재난 앞에서 늘 당국은 허겁지겁 늑장대응을 하기 일쑤고, 언론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당국의 발표를 받아 적느라 오보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왜곡된 속보경쟁을 벌이는 부끄러운 실상을 더 이상 기자협회 차원에서 바라만 볼 수 없다는 의지가 묻어났지만, 사후약방문 식이어서 아쉬움이 크다.

물론 일부 언론사들은 내부적으로 사건 취재현장에서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윤리강령이나 제작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고 있지만 속보경쟁 앞에서는 한낱 수사나 구호에 그치고 만다.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언론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중요 사건·사고들에 관한 정보를 다양하게 수집하여, 사실에 기초한 객관적 보도를 하기 위함이다. 언론의 사회적 기능 중 가장 중요한 환경감시기능은 바로 여기에 속한다. 신속한 보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한 보도라는 것을 모르는 언론사나 언론인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언론이 중대한 사건이나 위협적인 사고에 관한 확인과정을 거치지 않고 오보를 하거나 별 해설도 없이 갑작스럽게 정보를 전달했을 때 그 정보를 접한 독자나 시청자들은 어떻게 될까. 공포에 사로잡히거나 지나칠 정도로 과민반응을 일으켜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저널리즘에서 가장 중요한 실천적 과제는 사실과 진실, 객관성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환경감시에서부터 출발한다.   

유감스럽게도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국내 언론사들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속보로 내보내고,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인터뷰해 보도하는가 하면, 사고현장에서 구조작업이 한창인 때에  피해자 및 희생자가 받을 수 있는 보험료 액수를 보도해 빈축을 샀다. 여기에다 사고 직후부터 속보경쟁에 열을 올린 방송사들은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발표를 앵무새처럼 그대로 전달해 피해자 가족들을 두 번 세 번 울렸다.

오죽했으면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한국 언론도 같이 침몰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을까. 언론에 대한 불신은 언론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어서 더욱 따갑게 들렸을 테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국내 언론사들의 부끄러운 민낯은 세세히 알려졌다. 전 세계적으로.   

'참사' 첫날, "전원 구조" 오보행렬... 어뷰징 경쟁까지

'세월호 침몰사고' 4일째인 19일 오전 수학여행에 나섰다 실종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의 가족이 모여 있는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한 학부모가 영국 방송사인 BBC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이은 오보사태로 인해 국내언론에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해외언론의 인터뷰 등 취재에는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 '세월호' 실종자 학부모 BBC와 인터뷰 '세월호 침몰사고' 4일째인 19일 오전 수학여행에 나섰다 실종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의 가족이 모여 있는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한 학부모가 영국 방송사인 BBC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이은 오보사태로 인해 국내언론에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해외언론의 인터뷰 등 취재에는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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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침몰한 16일 오전부터 사망자와 실종자가 속출하기 시작했지만, 많은 언론사들은 '전원 구조'라는 오보로 출발했다. 세월호 침몰로 인한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두고두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또 다른 사건이다. 아울러 초기부터 수습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한 당국의 갈팡질팡하는 모습에 언론은 놀아나기 시작했다. 사고대책반측의 잘못된 발표 때문에 언론은 연일 오보를 내기 바빴다. 그러나 속보경쟁에만 눈이 어두운 언론사들은 사과나 정정보도는 안중에도 없었다. 언론에 대한 불신과 원성은 사고 첫날부터 고조되기 시작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수많은 탑승자들의 생사 확인이 이뤄지지 않고, 구조작업이 지지부진하기만 한 상황에서 일부 언론들이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받을 보험금 보도를 앞 다퉈 내보내는 등 저널리즘의 기본인 윤리의식마저 상실했다는 점이다.

사고 첫날 <조선일보> <스포츠 동아> <이투데이> <스포츠서울> 등 일부 언론사들은 인터넷 온라인판을 통해 사고가 난 세월호 보험가입 현황을 내보내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다른 언론들도 어뷰징 경쟁에 가세해 탑승객이 가입한 특정 보험상품을 소개하는 등 대형 선박들이 침몰하는 것을 주제로 다룬 영화들까지 소개했다. 게다가 특정 이동통신사의 광고 시그널 음악을 인용하며 간접광고에 나선 기사도 눈에 띄었다.

사고 첫날 저녁 방송사 가운데는 MBC가 보험금 보도를 노골적으로 내보내 더욱 분노를 샀다. 낮부터 많은 비난이 인터넷과 SNS상에서 일고 있는데도 MBC는 이날 <특집 이브닝뉴스>에서 추후 보상계획을 보도해 부끄러운 언론의 밑바닥을 드러냈다. 어둡고 차가운 바다 깊은 곳에서 수많은 탑승객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을 무렵, MBC는 "인명피해가 났을 경우 한 사람당 최고 3억 5천만 원, 총 1억 달러 한도로 배상할 수 있도록 한국해운조합의 해운공제회에 가입된 것으로 전해졌다"면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도 단체여행자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여행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상해사망 1억 원, 상해치료비 5백만 원, 통원치료비 15만 원, 휴대폰 분실 20만 원 등을 보상한다"고 보도해 거센 질타를 받았다.

SBS도 이날 <생생영상>의 '세월호서 구조된 6세 어린이 "혼자 나왔어요" 눈물' 편을 통해 구조된 6세 어린이를 인터뷰하는 영상을 내보냈다가 논란이 일자 급히 삭제했다. 이밖에 국내 통신사를 비롯한 일부 언론들은 안산시 단원고등학교로 취재진들을 보내 사고를 당한 학생들의 책상과 소지품 등을 경쟁적으로 찍어 내보내는가 하면,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는 구조자의 모습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내보내기도 했다. 이마저도 부족했는지 구조된 학생들을 상대로 경쟁적으로 인터뷰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산소공급 중", "선체진입 성공" 또 오보...거짓말에 휘말린 언론

그러나 왜곡된 속보경쟁과 비윤리적 취재보도는 다음날도 계속 이어졌다. 17일 오전,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의 구조작업 중 '산소공급이 진행 중'이라는 뉴스가 속보로 등장해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들은 큰 기대를 가졌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기대는 실망과 분노로 이어졌다. 해양경찰청은 이날 오후 12시 30분 쯤 침몰된 여객선에 공기를 주입해 실종자의 생존확률을 높이는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정작 해양수산부측은 "산소공급 장비가 오후 5시에 도착한다"고 밝힘으로써 실제 산소공급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첫날 '전원구조' 오보에 이어 또 다시 언론들이 대형 줄오보를 한 셈이다. 대부분 국내 언론은 속보라며 선체에 산소를 공급하고 있다거나 산소 공급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정작 사고 현장에는 산소를 주입할 수 있는 장비도 준비되어 있지 않아 희생자 가족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얼마나 방송사들의 오보가 얄미웠으면 이날 KBS2 <굿모닝 대한민국>에서는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소식을 전하던 도중 한 민간인의 야유와 욕설이 그대로 전달되는 일이 발생했을까.  

국내 언론사들의 오보행렬은 사고 발생 사흘째에도 이어졌다. 18일 오전 YTN은 "세월호 침몰 해역에서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는 해경이 세월호 선체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며 첫 보도를 했다. 그러자 많은 언론들이 "선체 진입에 성공해 생존자를 수색중"이라고 잇따라 보도했다. 그러나 불과 1시간여 만에 이 같은 소식은 오보로 드러났다. 해양경찰청은 구조대가 공기주입 사전작업은 했으나 선체 진입은 아직 하지 못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재난방송 주관방송사 KBS마저 오보...항의 '폭주'

종합평성채널 MBN 이동원 보도국장이 18일 오후 2시 뉴스를 통해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민간잠수부 홍아무개씨 인터뷰 내용의 문제점을 인정하며 사과를 하고 있다.
▲ '민간잠수부' 인터뷰 관련 MBN 사과방송 종합평성채널 MBN 이동원 보도국장이 18일 오후 2시 뉴스를 통해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민간잠수부 홍아무개씨 인터뷰 내용의 문제점을 인정하며 사과를 하고 있다.
ⓒ MBN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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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방송 주관방송사인 공영방송 KBS도 이날 결정적인 오보특종을 했다. 18일 오후 4시 30분 경 <뉴스특보>에서 KBS는 '선내 엉켜 있는 시신 다수 확인'이라는 속보를 내보냈지만 이는 해경의 공식 브리핑 사실과는 다른 오보로 밝혀져 드센 비판을 받았다.

해경은 "세월호 2층 화물칸 출입을 개방해 선내 안쪽에 진입했으나 장애물로 인해 진입이 막혔고 실종자도 찾지 못했다"고 밝혀 공영방송인 KBS가 얼마나 신중치 못한 재난방송을 하고 있는지를 증명해 주었다.

이에 앞서 MBN은 이날 오전 6시 한 민간 잠수부를 인터뷰하면서 "해경이 다른 민간잠수부의 구조를 막고 있고, 일부 민간 잠수부가 세월호 생존자를 확인했다"는 등의 발언을 여과 없이 전했지만 이 또한 사실과 다른 오보였다. MBN 보도국장은 이날 오후 "민간잠수부의 인터뷰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공식 사과했지만 언론에 대한 불신은 격한 분노로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SNS에 이러한 기사들을  퍼 나르며 '대한민국 언론 누가 누가 미쳤나', '대한민국 언론은 미쳤다' 등의 제목과 함께 힐난하기 시작했고, 사고 현장에서는 "카메라 들이대면 가만히 안 둡니다"란 무서운 분위기가 고조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세월호 침몰 사고를 색깔론에 결부시켜 SNS에 유포시키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고 현장에서의 구조성과가 전혀 없어 애가 타들어가는 판국에 한기호 새누리당의 최고위원은 20일 아침 자신의 페이스북에 "드디어 북한에서 입을 열었다"며 "이제부터는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단체와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 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북괴와 좌파의 정부 전복작전 전개할 시점'으로 규정하고 발본 색출하라고 주장했다가 문제가 되자 글을 내리는 해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위기관리 능력 시험대", 외국 언론사들 되레 '냉철'

이 같은 부끄러운 국내 모습을 외국의 언론들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오히려 외국의 유력 언론사들은 차분하고 냉철하게 이번 세월호 사건을 분석하며 사실보도에 주력했다.  

우선 주요 외신들은 승객들은 두고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과 한국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비중 있게 다뤘다. 한국 언론들이 왜곡된 속보경쟁과 오보, 심지어 사망보험금 등을 보도하고 있을 때, 미국의 CNN, ABC 방송, 뉴욕타임스, 영국의 BBC 등은 "침몰한 배에서 선장이 가장 먼저 탈출했고, 구명정 44개가 거의 사용되지 못했다"며 "실종자들에 대한 생존 희망이 사라지면서 인재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가 하면 외국 언론사들은 "세월호 침몰사고로 박근혜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한국 정부의 안일한 대처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확산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기업 총수들의 비겁한 리더십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꼬집어 눈길을 끌었다.

아무리 다양한 채널과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고 해도 사실과 다른 오보나 정확하지 못한 분석은 뉴스로서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외국 언론사들이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 세월호 참사는 저널리즘의 가장 중요한 실천 과제가 무엇인지, 또 저널리즘의 윤리와 신념이 무엇인지 되돌아 보게 한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늘 그랬듯이 이번 참사도 국내 언론사와 언론인 모두에게 깊은 성찰과 반성의 필요성을 던져주었지만 과연 개선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태그:#세월호, #오보, #속보경쟁, #대형참사, #외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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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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