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일 저녁 경기 안산시 초지동 화랑유원지 원형 광장에서 안산지역 시민과 학생들이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단원고 언니오빠들 기다립니다" 20일 저녁 경기 안산시 초지동 화랑유원지 원형 광장에서 안산지역 시민과 학생들이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세상 속으로는 신록이 짙어오는구나. 연둣빛 여린 잎들이 뿜어내는 빛이 얼마나 눈부시고 아름다운지, 마치 너희들의 싱그러운 모습과 반짝이는 웃음을 보는 것만 같아 그만 또 울컥 솟구치는 감정을 다스리기 힘들구나.

너희와 직접 사제간의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니지만 교사로서 참담하고 부끄러운 현실을 함께 지켜보며 견디는 일이 너무나 사무치는 아픔이어서 이렇게 펜을 들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더 못 견디게 사무칠 것 같아서, 사무치는 분노가 되어 무너지고 말 것 같아서.

벌써 엿새째. 아직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친구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여전히 바다 속 가라앉은 세월호 안에서 세상 밖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 나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는 있지만, 그래서 더욱 화가 나고 슬픔이 깊어지는데 착하기만 한 너희들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또 한 번 무너지고 만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후 지난 17일부터 너희들은 학교 운동장에 모여 촛불을 켜고 친구들과 선생님의 무사 생환을 바라는 염원을 담은 손팻말을 하나씩 들었더구나. "차가운 바다  속에 있을 친구들을 생각하며 침묵의 메시지를 전달하자"는 뜻에서 마련했다지.

너희들이 손에 든 팻말에는 "기다릴게, 무사히 돌아와 줘, 우리가 아무 것도 못해줘서 미안해, 희망 잃지 마, 친구야 빨리 돌아와, 조금만 참아, OOO선생님 정말 보고 싶어요…". 한 자 한 자 천천히 읽으면 왈칵 또 눈물이 솟구치고 마는 그런 말들을 간절한 염원으로 담았더구나. 아직 다른 어떤 말보다 모두의 무사 생환을 믿고 기다리겠다는 염원이야말로 가장 애끓는 기도일 테니 그토록 아프고 간절한 마음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원망을 앞지르는 미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20일 저녁 경기 안산시 초지동 화랑유원지 원형 광장에서 안산지역 시민과 학생들이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촛불을 밝혔다. 부모와 함께 이날 광장을 찾은 어린 아이들도 "단원고 형아 누나, 꼭 돌아오길 기도합니다"라고 손수 적은 편지를 꺼내들고 있다.
▲ "단원고 형아 누나, 우리가 기도해요" 20일 저녁 경기 안산시 초지동 화랑유원지 원형 광장에서 안산지역 시민과 학생들이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촛불을 밝혔다. 부모와 함께 이날 광장을 찾은 어린 아이들도 "단원고 형아 누나, 꼭 돌아오길 기도합니다"라고 손수 적은 편지를 꺼내들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나는 너희가 손팻말에 적은 그 말들을 보며 미안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분노가 다시금 가슴을 치더구나. 너무도 착하고 순한 말들로만 채워놓은 하얀 종이 앞에서 원망을 앞지르는 미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하얀 종이에는 소중한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차가운 바다 속에 넣어놓고도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노릇을 못 하고 시간만 보내며 기념사진 따위나 찍기에 바쁜 정치인과 어른들,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하소연은 들어있지 않았으니 말이야.

너무나 착하고 예의바르게도 너희들은 '바다 속에 있는 제 친구들을 빨리 구해주세요'라거나 '사랑하는 친구와 선생님을 살려 주세요'하는 등의 힘 있는 정치인이나 어른들, 세상을 향한 외침은 적지 않았더구나.

가라앉은 세월호 안에 있을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오기 싫어서 안 나오는 게 아니란 걸, 너희들이나 그들의 부모님, 그리고 온 국민들이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걸 몰라서 그 차갑고 무서운 바다 속에서 일부러 안 나오며 숨바꼭질 하고 있는 게 아니란 걸 너희 역시 잘 알고 있을 테지.

그런데도 너희들은 어른들에 대한 분노나 원망을 적지 않고 바르게 배운 착한 모습 그대로더구나. 무책임한 세상과 어른들에 대한 원망보다는 무사생환을 바라는 염원을 표현하는 것으로 분노보다는 더 큰 기적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으리라 생각한다. 소중하고 값진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더 슬프고 화가 났다. 어른들이나 세상에 무엇을 요구하고 바라는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되바라졌다거나 반항아나 문제아라는 이름으로 낙인찍어 격리, 배제하는 이 나라의 교육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아서 말이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최선을 다 해달라

20일 저녁 경기 안산시 초지동 화랑유원지 원형 광장에서 안산지역 시민과 학생들이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안산 밤하늘 수놓은 '촛불' 20일 저녁 경기 안산시 초지동 화랑유원지 원형 광장에서 안산지역 시민과 학생들이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어른이나 선생님에게 자기의 생각을 말하면 무례하게 대든다고,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삐딱한 사람 취급하는 현실이 거울처럼 반사되어 있는 착하기만 한 하얀 손팻말들. 너희는 충분히 세상과 어른들에게 친구와 선생님을 살려내라고 항의하고 요구할 자격이 있고 그래도 누구 하나 너희를 나무라거나 꾸짖을 수 없는데.

그걸 보면서 어른들 말 잘 듣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순하게, 착하게, 성실하게만 살라고 가르치며, 그것이 당연한 양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세뇌한 몹쓸 선생이 돼 버린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아 몹시도 아프고 괴롭더구나. 그래서 이렇게 다른 흰 종이를 꺼내 모든 너희들 앞에 반성문을 쓰고 있는 것이란다. 이 같은 아픔을 서로 두 번 다시는 겪지 않아야 하겠기에 말이야.

하루하루 속절없는 시간이 지날수록 간절함은 더 절실해 지고 오늘도 너희들은 손과 가슴마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무사 생환을 바라는 촛불을 켤 테지. 나 역시 모든 이들의 무사 생환을 염원하며 거기에 뜨거운 참회와 속죄의 마음을 담은 촛불 하나를 보탠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너희를 대신해 아니 너희와 함께 대통령님을 비롯한 정치인 그리고 힘 있는 이들에게 하얀 종이를 펼쳐 쓴다. 바다 속 세월호에 갇혀 있는 모든 이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최선을 다 해 달라고, 일분일초를 제 목숨 구하듯 써 달라고!


태그:#세월호, #단원고, #안산 단원고, #세월호 침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