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더 주목받는 팀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그 팀을 이끌고 친정에 자랑하러 들어왔다. 하지만 보여준 것은 별로 없었다. 그냥 일상적인 패배만이 아니라 다음 시즌에 유럽축구연맹 주관의 챔피언스리그에 명함도 못 내밀게 된 참담한 결과를 받아든 셈이었다. 맨유의 오랜 팬들 입장에서는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소식이었다.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이끌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가 우리 시각으로 20일 밤 12시 10분 구디슨 파크에서 열린 2013-2014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5라운드 에버턴 FC와의 방문 경기에서 전반전에만 내리 두 골을 내주며 0-2로 완패했다.
위기의 맨유? 그냥 그래어느 팀 선수들의 목표 의식이 더 뚜렷한가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맞대결이었다. 3만9436명의 안방 관중들 앞에 선 에버턴 선수들은 지금보다 좀 더 높은 순위표를 갈망하는 기색이 뚜렷했다. 아스널과의 순위 경쟁을 이겨내고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에 뛰어보겠다는 목표 의식이 느껴질 정도였다. 반면에 방문 팀 맨유 선수들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절박함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맨유는 수비 라인부터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에브라-리오 퍼디낸드-네마냐 비디치-하파엘 다 시우바'로 상징되는 맨유의 간판 수비수들이 모조리 뛰지 못하는 바람에 겨우 포 백 라인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맨유의 벤치(긱스, 펠라이니, 야누자이, 발렌시아, 치차리토, 웰벡)에는 후보 문지기 린데가르트를 빼고 전문 수비 자원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뒤가 찜찜한 이 부담감은 끝내 발목을 스스로 잡는 꼴이 되고 말았다. 축구에서 기본적인 수비력이 경기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잘 말해주는 것이었다.
경기 시작 후 26분만에 이 부분이 고스란히 입증되었다. 맨유 벌칙구역 오른쪽 모서리 부분에서 역습 드리블을 시도한 로멜루 루카쿠가 왼발 감아차기를 시도하는 순간, 맨유 수비수 필 존스가 마치 문지기처럼 넘어지며 오른손을 내뻗었다. 코앞에서 보고 있던 주심이 이를 간과할 리 없었다. 에버턴은 이 페널티킥 기회를 왼발잡이 수비수 베인스가 침착하게 가운데로 낮게 차 넣어 맨유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맨유의 수비 라인이 붕괴되었다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증거가 42분 추가골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에버턴 오른쪽 측면 수비수 콜먼이 재빠르게 찔러준 공이 측면 미드필더 미랄라스의 오른발 돌려차기로 이어졌다. 맨유의 골문이 또 한 번 뚫린 것이었다.
문제는 이 순간 맨유 수비수들이 만든 오프 사이드 함정에 있었다. 에브라 대신 왼쪽 측면 수비를 맡은 뷔트너가 줄 맞추기를 잘못하는 바람에 빠져 들어오는 미랄라스가 온 사이드 위치에서 마음놓고 슛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맨유의 수비 조직력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를 잘 말해주는 순간이었다.
유로파리그 티켓은 따낼 수 있을까?전반전에 두 골을 내준 맨유는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따라잡을 기회를 얻었지만 머뭇거리다가 슛조차 시도하지 못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후안 마타의 찔러주기를 받은 간판 골잡이 웨인 루니가 에버턴 골문 바로 앞에서 슛 동작을 취했지만 수비수들이 매우 적절하게 커버 플레이를 이뤄냈다. 전반전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던 맨유의 수비 조직력과는 사뭇 대조적인 장면이었다.
로빈 판 페르시의 부상 공백 때문에 무뎌진 맨유의 공격을 그나마 이끌고 있는 웨인 루니는 87분에도 혼자서 상대 문지기와 맞서는 결정적인 만회골 기회를 잡았지만 각도를 잡고 과감하게 달려나온 팀 하워드의 선방에 걸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로써 맨유는 34경기 57점의 승점을 그대로 유지하며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진출권이 주어지는 6위(토트넘 홋스퍼, 35경기 63점) 추격도 어렵게 되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와 유럽 챔피언스리그 시스템이 현행처럼 개편된 이후 처음 겪는 충격적인 결과다.
세계 클럽 축구 전통의 강호라고 자부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이제 네 경기 일정을 남겨놓고 있는 가운데 토트넘 홋스퍼를 밀어내고 6위 자리에라도 올라서야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얻어낸다.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맨유로서는 다행스럽게도 남은 네 경기 일정 중 세 경기가 안방인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리게 되어 있다. 그리고 안방 경기의 상대 팀 대부분이 하위권이기 때문에 부담은 덜한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에는 우승 싸움 못지 않게 강등권 탈출 경쟁에 사활이 걸린 만큼 단 한 경기도 방심할 수 없는 노릇이다.
특히, 오는 27일(일요일) 새벽에 벌어지는 17위 노리치 시티와의 경기가 가장 긴박감이 넘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강등권인 18위 이하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맨유는 그 경기를 포함하여 네 경기 모두를 승리로 장식한다고 해도 현재 6위 토트넘 홋스퍼의 결정적 패배를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라 구차스럽기 짝이 없다. 토트넘이 26일(토요일) 밤 11시에 벌어지는 스토크 시티(10위)와의 방문 경기나 다음 달 3일 밤 8시 45분에 열리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12위)와의 방문 경기에서 휘청거리기를 노골적으로 빌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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