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태주의(行態主義). 행태주의란 기존의 정치적, 직관적, 관념적 사고에 대해서 철저히 수학적, 통계적으로 객관적 증명을 시도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이것은 '모든 것을 수치화는 물론, 계량화, 객관화 시킬 수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20세기 중반 이후 최강국 반열에 오른 미국에 의해 전파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가치척도와 개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행태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근거가 가시적이고 객관적이라는 데 있다. 객관적인 통계적 수치 앞에 반론은 존재하기 힘들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스포츠에서도 이러한 행태주의를 찾아볼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종목은 바로 야구일 것이다. 야구라는 스포츠는 모든 것은 수치화시킬 수 있다. 타율, 방어율, 홈런 수, 도루 수, 장타율, 출루율, 그리고 OPS까지. 이러한 수학적인 자료들은 '왜 야구가 미국 스포츠인가'를 잘 대변해 준다.

하지만, 벤치클리어링에 있어서 만큼은 이러한 행태주의적 관점을 취하면 매우 위험하다. 벤치클리어링의 핵심은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보복성 행태인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복성 행태주의의 결과물인 벤치클리어링은 양 팀으로 하여금 흥분을 자제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이르게 할 뿐더러 즐거운 경기를 관람하러 야구장에 온 관람객들에게까지 그 감정이 전이되어 자칫하면 야구장 전체를 전쟁터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게 된다. 또한 이것은 페어 플레이를 중요시하는 스포츠의 근본이념과도 상반되는 행위이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 야구경기에서든지 벤치클리어링의 발생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아니 언젠간 반드시 일어난다. 야구도 사람이 하는 스포츠이기에 서로 감정 컨트롤이 안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심판들도 벤치클리어링 자체를 허용한다는 말보다는 큰 사고로 번지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 벤치클리어링을 어느 정도 묵인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벤치클리어링 후, 심판들은 모여서 이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난 경위와 그 상황에 대한 판단을 거쳐 시시비비를 가린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과도한 폭행이나 고의성이 포함된 악의적인 행동이 있을 경우에는 퇴장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물론 되장 후에도 그 악의적 행동에 대한 사회적인 시각을 고려하여 추후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 추가적으로 징계를 부여하기도 한다.

지난 20일 LG트윈스와 한화이글스와의 맞대결에서 올 시즌 2번째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다. 사건의 발단은 6회 1사 상황에서 선발 우규민의 뒤를 이어 구원등판한 LG투수 정찬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날 정찬헌은 초구를 몸쪽으로 바짝 붙여 던졌고, 2구째 다시 붙인 몸쪽 공이 정근우의 어깨를 맞혔다. 146km의 직구. 정근우는 고통을 호소했지만, 고의적인 '데드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1루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도 정근우는 정찬헌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데드볼의 경우, 최소한의 미안함의 표시는 선후배를 막론하고 투수가 타자에게 하는 것이 암묵적인 예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찬헌은 정근우가 있는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때부터 정근우의 심기는 다소 불편했다.

그렇게 1루에 나간 정근우는 1사 1·3루에서 김태균이 유격수 땅볼을 쳤을 때 2루로 슬라이딩을 하면서 LG 유격수 오지환을 향해 다리를 다소 높게 들었다. 오지환은 넘어지며 공을 던졌지만 원바운드가 돼 정성훈이 잡지 못했다. 3루 주자가 홈을 밟은 한화가 8-5로 도망갔다.

이러한 장면을 목격한 LG의 이병규는 직접적으로 항의 의사를 전했다. 공수 교대 때 발을 들어올리며 정근우에 "왜 그러냐?"고 물었다. 하지만 정근우는 "왜?"라고 말하며 자신의 행동에 정당함을 표시했다. 필자가 보기에도 정근우가 1루주자를 살리기 위해 다리를 다소 높게 들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프로야구 팀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다소 적극적인 주자가 병살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2루로 뛰면서 일어나는, 야구경기를 보다 보면 빈번하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 팀이 처한 상황이 근본적으로 이러한 사소한(?) 문제에도 예민해 질 수밖에 없었다. 한화는 몇 시즌 연속을 최하위로 마감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이번 시즌에 정근우와 이용규라는 대어를 합류 시켰지만, 최근 잦은 블론세이브와 전체적인 투수난으로 인해 (바로 직전경기에서도 이겼음에도 불구) 팀의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LG 또한 이번 한화와의 3연전 전까지 '643일 만의 6연패'라는 충격적인 행보를 이어가면서 작년의 좋은 분위기는 이미 사라질대로 사라진 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근우의 행동은 LG 선수들에게 예민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다 그 장면이 승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추가점에까지 연결이 되었으니, 이번 시리즈를 위닝시리즈로 만들어 반전의 계기로 삼고 싶었던 LG의 입장으로서는 충분히 억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판정은 심판이 하는 것이고 심판은 그에 대한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았다.

결국 8회에 사달이 났다. 8회 말 원아웃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LG의 정찬헌이 던진 공이 정근우의 몸을 향한 것이다. 똑같은 구질, 구속을 가진 직구가 정확하게 정근우가 6회에 맞았던 부위를 재강타했다. 이에 정근우는 화를 참지 못하고 보호대를 풀며 마운드로 걸어갔고, 이것은 결국 벤치클리어링으로 이어졌다. 위 단락에서 언급했던 6회의 전초전이, 이에 사단이 되었음은 경기를 재대로 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미묘한 감정으로부터 시작된 신경전이 결국 벤치클리어링까지 번진 것이다.

벤치클리어링은 양 팀에 별다른 부상이나 피해 없이 심판과 코치진의 중재로 잘 마무리되었지만 LG의 정찬헌은 그 사구의 고의성을 인정하여 퇴장조치가 내려졌다. 그가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이 표정에도 역력히 드러났다.

퇴장 조치는 내려졌지만, 우리는 그가 뿌렸던 고의적인 빈볼이 가지는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벤치클리어링 당시에도 정찬헌 투수의 표정은 자신의 의도가 고의라는 것을 당당히 내비치고 있었다. 물론 정근우가 빌미를 제공하긴 했으나, 이러한 빈볼은 야구에서 어떠한 이유에도 정당화 될 수 없다.

특히 어제와 같은 빈볼이 실투가 되어 상대타자의 머리를 강타했다고 가정해보자. 어제에도 볼이 살짝만 제구가 덜 되어 10cm 정도만 높았다면 정근우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끔찍한 장면이 나올 수도 있었다. 결과론적으론 그러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우리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벤치클리어링과 정찬헌 투수의 빈볼은 필자가 보기에는 뒤따르는 상당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이것이 한 번 퇴장으로 끝나는 일이라면 언제라도 이러한 상황이 재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KBO(야구협회)에서 그냥 묵인한다면 또 다시 시즌 중 이러한 상황이 재연됐을 때, 그들은 1경기 퇴장외에 별다른 조치를 내릴 수 없다. '저번에는 경기 퇴장으로 끝났는데 왜 지금은 추가 징계가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되어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빈볼은 고의성은 둘째치고, 한 선수의 생명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기에 충분히 징계의 대상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번 사건을 되짚어 보는 일 또한 중요한 일이지만, 필자가 이번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벤치클리어링을 보면서 바로 현  MBC 스포츠플러스의 해설위원인 차명석 코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는 작년까지 LG트윈스의 투수코치로 있으면서 LG가 작년시즌 정규리그 2위를 거두는 데 상당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현재는 건강상의 문제로 필드를 떠나 다시 해설위원으로 복귀했지만, 그가 LG선수들에게 가지는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각별한 무언가가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식처럼 365일 내내 고된 훈련과 역경 그리고 즐거움을 함께 나눈 선수들이 각별하지 않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런 그가 이번 경기를 중계하다가 이번 벤치클리어링을 보고 "이번 일은 이유와 원인이 어찌되었건 간에 어떠한 변명으로도 허락될 수 없는 플레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물론 해설위원으로서 중도적인 입장에서의 시각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작년까지 한솥밥을 먹던 자식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이기도 했다. 그의 야구관이 고스란히 담겨있던 뼈대있는 발언이었다.  

사실 그의 야구에 대한 철학은 그가 예전부터 해설을 해 오면서 즐비하게 남겨놓은 명언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런 그에게 어제의 사건은 멀리 떠나 있는 기러기 아빠와도 같은 입장에서 자식과도 같은 선수에게 "어떠한 상황에도 야구 선수가 기분대로 공을 던진다면 그것은 투수에 대한 근본 자격이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진심어린 한 마디였다. (아래의 기사를 본다면 차명석 해설위원이 정찬헌 투수를 얼마나 아끼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http://sports.donga.com/3/all/20140327/62049780/1)

작년 시즌 LG에게는 강한 불펜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강한 불펜을 진두지휘했던 차명석 전 LG투수코치가 있었다. 그 덕분에 그들은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의 야구 철학은 작년 LG선수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했고, 그들은 그것은 결과로 보여주었다.

이제는 그가 떠나고 없지만, 정찬헌을 비롯한 LG의 모든 투수들, 그리고 선수들은 그의 철학까지 잊어선 안된다. 이미 일어난 일에 만약이란 말은 있을 수 없지만, 차명석 해설위원이 올해도 LG의 투수코치를 역임하고 있었더라면 어제와 같은 벤치클리어링, 아니 정찬헌의 고의성이 있는 빈볼은 적어도 없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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