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하지 못했던 큰 사건이 벌어졌다. 거대한 무언가가 아이들과 많은 사람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그리고 미처 손 쓰지도 못한 채로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망연자실하게 그 광경을 넋놓고 바라봐야만 했다. 희생자는 제대로 집계되지도 않으나 대략 수백 명을 예상 중이다.

그 와중에 '희생자 부모 중 한 사람이 생존자의 전화를 받았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아마도 살아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누가 만들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아직 누군가 그 안에서 살아있으리라'는 간절한 희망을 놓을 수 없다. 감히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이 와중에 다수의 언론은 희생자 가족을 비추면서 최대한 자극적인 기사를 끌어내려고 애쓴다. 정부는 사태의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안일한 대처능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게 부끄러웠는지 '사태의 책임자'를 찾겠다며 만만한 희생양을 물색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같이 끔찍한 요소들로 가득한 대형참사다.

영화 <괴물>, 세월호 침몰 사건과 닮았다

 영화 <괴물>의 한 장면. 괴물이 사람들을 물어간 후, 무능한 정부와 자극적인 기사를 원하는 언론으로 인해 서울은 아수라장이 된다.

영화 <괴물>의 한 장면. 괴물이 사람들을 물어간 후, 무능한 정부와 자극적인 기사를 원하는 언론으로 인해 서울은 아수라장이 된다. ⓒ 청어람


▲ 첫 공개된 수중 수색작업 영상에 분노하는 실종자 가족 '세월호 침몰사건' 나흘째인 지난 19일 오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에서 해경과 실종자가족대책위가 침수된 세월호 수중 수색작업 영상을 첫 공개하자, 한 피해자 가족이 "이게 최대한 노력을 기울인 수색작업이냐"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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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글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어떤 것을 떠올렸는지는 아마 제각각 다르겠지만, 방금 요약한 상황은 봉준호 감독이 제작하여 2006년에 개봉한 영화 <괴물>의 초반 줄거리다.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의 역사를 다시 쓴 이 영화는 묘하게도, 최근 한국을 통째로 충격에 몰아넣은 '세월호 침몰 사건'과 상당히 유사한 면이 많다. 사고가 시작된 초반부터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한 모습까지, 특종과 시청률에만 열 올리는 대형 언론과 결국 분노한 희생자 가족들. 마치 8년 전의 영화가 2014년을 예언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매우 닮아 있다.

영화 속에서 '정부와 공권력이 괴물을 무찌르고 시민들을 구하리라'는 사람들의 믿음은 끝내 수많은 사상자만 남기며 배신감으로 돌아왔다. 실제 세월호 사건에서도 기울어지다 끝내 뒤집어진 선박 안의 수백 명 실종자들을 구해내리라 믿은 한국 국민들은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사고 발생 5일 넘도록 배에 남아있던 생존자는 단 한 명도 구출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생존자가 없다'는 사실 자체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건 초기부터 "전원구출"이라는 오보의 원인을 제공하는가 하면, 수차례 탑승 인원과 사망자수 발표를 번복하며 혼란을 초래했다. 말로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우왕좌왕하며 구조장비 지원 및 지시전달에 너무 늦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피해 학부모들을 수용한 진도 체육관을 찾은 교육부 장관은 의전용 의자에서 컵라면을 먹다가, 현장을 찾은 당국의 한 고위공무원은 실종자 명단 앞에서 "기념사진이나 찍자"고 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이것은 영화 <괴물>의 주인공 강두(송강호 분)가 온갖 생체실험을 강요 당하다가 군 실험실을 박차고 나오자, 전투태세여야 할 군인들이 할 일을 미루고 불판에 고기나 구워 먹던 웃기고도 슬픈 장면의 실사판과도 같았다.

사건의 충격이 휩쓸고 간 한국, 그 자체로 괴물이 되어간다

 영화 <괴물>의 스틸컷. '괴물'이 출현한 뒤, 한국은 '이전까지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이전까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상태일 뿐이다.

영화 <괴물>의 스틸컷. '괴물'이 출현한 뒤, 한국은 '이전까지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이전까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상태일 뿐이다. ⓒ 청어람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SEWOL)가 침몰되자 해경 및 어선들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SEWOL)가 침몰되자 해경 및 어선들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 전남도청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로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봤던 5천만 국민들은 단체로 무기력함을 학습한 꼴이다. 비탄에 빠진 국민들을 다독이고 사태수습에 매진해야 할 정부와 여당 정치인은 '유언비어 단속'에만 열성적이다. 구출되었던 해당학교 교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될 정도로 소극적인 생존자 보호와, 체육관에 깔린 매트리스 위에서 지내야 하는 피해자 가족들의 현실을 보자면 전 국민적인 슬픔이 곧 거대한 분노로 바뀔 지경이다.

예방을 위한 안전교육과 점검에 더불어, 제대로 된 사고처리 매뉴얼이 부재한 상황은 혼란을 키웠다. 거듭 잘못된 발표를 한 정부기관은 신뢰를 잃었고, 이는 곧 '카더라'로 일컫는 유언비어 확산으로 이어졌다. 음모론과 억측, 오보가 난무하는 가운데 국민들은 "이제 무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탄식하는 지경이다.

이 와중에, 선거를 앞둔 탓인지 정치적인 발언도 덩달아 쏟아진다. 여당 한 정치인은 세월호 침몰사건을 두고 "좌파 색출"을 운운하며 색깔론을 내밀었고, 종편은 대통령의 지지율 계산에 바쁜 듯했다. 정치권 바깥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다. 위기관리에 서툰 정부를 비판하면 이내 '종북세력'이라는 비난이 날아든다. '일간베스트'에서는 희생자와 유족들을 '물고기밥'이나 '유족충'이라는 끔찍한 호칭으로 부르며 마치 놀이처럼 사람들을 비웃는다.

거대한 공포가 가시처럼 박힌 사회에서 인간성은 아이들과 함께 멀리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영화 속에서 '괴물'이 휩쓸고 간 한국이 이전과 전혀 다르게 낯선 세계로 변한 것처럼, 세월호 침몰의 충격이 국민들을 강타한 이후의 한국도 그 자체로 한 마리의 괴물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자기정당화와 감정 해소를 위해 이성을 잃은 상태로 서로를 물어뜯으려 안달난 세태를 바라보자면 말이다.

부디, 현실은 영화 속 결말과 다르기를

영화 <괴물>에서는 "우리 애가 살아있으니 구해달라"는 아버지 강두의 말이 묵살 당하자 '평범한 소시민'이 뭉친 가족이 직접 행동에 나선다. 막내딸 현서(고아성 분)를 잃은 분노가 그들을 '어벤져스'보다 더 용맹한 괴물 사냥꾼이 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실제로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영웅물'을 보며 "현실에서도 저런 강력한 힘을 지닌 영웅이 우릴 도와주기를" 바라곤 하지만, 정작 현실의 우리를 구원할 것은 '제 위치에서 책임을 다 하는 일반적인 개인'들의 합일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탈출한 선장, 안전교육에 소홀했던 선박 회사, 사고수습과 사태파악에 늦은 정부 관계자들까지. 아이들을 차가운 물 속으로 밀어넣은 사고의 원인은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어른들 모두에게 있는 것으로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영화 <괴물>

결말은 <괴물>과 다르기를... ⓒ 청어람


2006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 영화의 결말은 안타깝게도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한강공원 매점 주인, 한 때 열혈 운동권이었던 백수, 메달을 따기 위해 땀흘린 양궁 선수가 '가족'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어린 현서를 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모두 몸을 사리며 공권력조차 자기 안위만 챙기려는 상황에서 어찌 아니었겠는가.

한 편의 부조리극이자 '돌연변이 생물체'와 더불어 사회 전체가 '괴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이 영화가 현실과 닮아있음은 씁쓸하고도 슬픈 지점이다. 어느 누리꾼은 "세월호뿐만 아니라 어쩌면 한국 전체가 침몰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다른 누군가는 "지금까지 우리가 서로에게 있을 거라 믿었던 안전장치 같은 것들이 사실은 방아쇠일지도 모르는 일"이라 말했다. 슬프지만 진실 같아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떤 사건뿐만 아니라, 그 사건이 발생한 이후의 모습이 사회를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도 있다. 거대한 재앙이 닥치고, 공포와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드러내는 감정의 밑바닥이 영화처럼 살벌한 오늘날. 부디 '세월호 침몰 사건'의 결말만은 영화와 다르기를 바랄 뿐이다. 줄어가는 실종자 수만큼 사망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원고 학생들과 시민들이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괴물 봉준호 감독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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