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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건' 5일째인 20일 오전 전남 진도군 군내면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정부의 더딘 구조작업에 항의하며 진도대교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행진을 벌이자, 경찰이 이를 막고 채증을 하고 있다.
▲ 세월호 실종자 가족 채증하는 경찰 '세월호 침몰사건' 5일째인 20일 오전 전남 진도군 군내면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정부의 더딘 구조작업에 항의하며 진도대교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행진을 벌이자, 경찰이 이를 막고 채증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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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널 찍고 있어.

CCTV, 블랙박스, 스마트폰, 파파라치, 쓰파라치 등 기술문명의 발달로 우리는 카메라 앞에 쉽게 노출된다. 당연하고 필요하기 때문에 '감시사회'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자 받아들여야 할 것이 돼버렸다. 이는 사회질서의 안녕과 인권침해 사이에서 언제나 논란이 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시선의 당연함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시선에 의한 통제에 저항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때에 따라서는 위로부터의 감시를 거부하고 아래로부터의 감시를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서도 그렇다.

경찰이 '부착형 채증 카메라'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부착형 채증 카메라는 명함 크기의 소형 카메라로, 경찰관의 제복 윗주머니에 부착해 실시간 채증이 가능한 카메라를 말한다.

경찰청은 지난 14일 "이성한 경찰청장이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는 경찰관의 제복과 모자에 카메라를 부착해 법 집행에 활용하고 있다. 우리도 부착형 카메라 도입의 법적 문제와 활용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2008년 부착형 채증 카메라 도입을 시도했지만 사생활 및 인권 침해 논란으로 무산된 바 있다.

지난 15일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 부착형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다는 경찰 쪽 근거에 대해 "미국에서도 도입하려고 했다가 인권침해 논란이 많아 포기했다"며 "확인된 외국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경찰은 왜 부착형 채증 카메라를 도입하려고 할까? 경찰 쪽에서는 아직까지 부착형 채증 카메라 도입의 분명한 목적을 이야기한 바 없다.

'부착형 채증 카메라' 도입 검토하는 경찰

경찰의 채증 활동은 오래 전부터 계속돼왔다. 채증은 "위험한 사태 발생 또는 위험성 있는 현장에서 정확한 상황 파악과 불법 행위자의 사법처리를 위한 활동"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사복을 입고 채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경찰의 채증활동은 집회·시위 현장에서 논란이 많았다. 일부에서는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 방해와 초상권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라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경찰관직무집행법상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은 채증에 대한 구체적 개별법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경찰법 제3조에서는 치안정보의 수집을 "경찰의 임무"로 규정하고 있고, 경직법(경찰관직무집행법) 제2조에서는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를 "직무"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안전보장, 치안질서유지, 국민생활보호, 기타 치안 유지 활동상 필요한 정보"는 다소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채증이 경찰의 자의적 해석에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013년 8월 14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제7차 범국민촛불대회가 열리는 가운데 부근 청계광장에서 근무중인 한 경찰이 '채증' 조끼를 입고 있다.
▲ '채증' 조끼 입은 경찰 2013년 8월 14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제7차 범국민촛불대회가 열리는 가운데 부근 청계광장에서 근무중인 한 경찰이 '채증' 조끼를 입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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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나라 일본의 경우, 엄격한 조건 아래에서 시위 현장의 채증을 인정하고 있다. 일본은 "현재 범죄가 이루어지고 있거나 이루어진 직후라고 인정되는 경우로서 그 위에 증거 보전의 필요성 및 긴급성이 있고 또한 촬영이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한도를 넘지 않는 상당한 방법이 이루어질 때 시위진행의 사진촬영이 허용될 수 있고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판례를 가지고 있다. 또한 시위 현장에서 경찰관들이 사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경우에는 경찰관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완장을 찬다고 한다.

2007년 한국경찰연구 학술지에 실린 연구 논문에 따르면, 미국은 "집회·시위 현장에 소수의 정복 경찰관이 배치되며, 폭력 등 불법행위가 발생되지 않는 한 사복 경찰관이 집회·시위 장소에 출입하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채증 관련 법적 근거 구체화 해야

우리나라 경찰의 채증 활동이 "무분별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채증과 관련된 법적 근거가 구체화 될 필요가 있다. 사진 촬영은 초상권과 자기정보 결정권의 침해와도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엄격한 제한이 없으면 언제나 논란의 여지를 만들 수 있다. 경찰의 부착형 채증 카메라 도입을 달갑게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도 우리나라 경찰의 채증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 누군가 날 찍고 있다고 한다면, 어디선가 내가 찍히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느 누가 위축되지 않을 수 있을까. "평화적 시위를 위한 채증"이라는 경찰의 활동이 오히려 평화적 시위를 방해하는 일을 만들 수도 있다.

이번에 새롭게 검토하는 부착형 채증 카메라는 1000만 화소에 대용량 메모리카드와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찍히는 것에 익숙해졌다. 다양한 사람, 다양한 정보가 축적되는 사회에 우리는 쉽게 노출돼 있다. 카메라가 날 보고 있다면, 더 나아가 나는 모르는 새에 내 얼굴이 고화질의 기록으로 남겨진다면, 그런 사회에서 우리가 자유를 외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채증을 두고 '감시'라는 분야로 너무 과대해석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채증도 폭력을 막기 위한 일종의 감시방법이라 말할 수 있고, 모든 감시는 사실 본질적으로 같은 위험성을 띄고 있다고 생각한다. 존경하는 한 교수님의 글을 통해 "감시를 부추기는 행정 권력을 감시하는 것, 이를 발전적이고 건강한 감시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적 있다. 이후로 나는 진정한 질서는 자율과 소통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진리를 믿고 있다. 감시가 일반화 되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다.


태그:#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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