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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뺏고 짓밟는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요?"

밀양에 사는 송전탑 반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 말이다. 10년 가까이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공사에 반대하며 싸우는 밀양사람들 가운데, 17명이 마치 '아리랑'처럼 하고 싶은 말을 읊은 것이다.

책 <밀양을 살다-밀양이 전하는 열다섯 편의 아리랑>(오월의봄 간)을 통해서다. 기록노동자, 작가, 인권활동가, 여성학자 등이 주민 17명의 구술을 정리한 책이다.

이들은 2013년 '밀양구술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모였고, 올해 2월까지 직접 밀양을 찾아가 주민들의 삶을 기록했다. 주민들은 '왜 송전탑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송전탑으로 인해 마을이 어떤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었는지' '삶의 터전이 어떻게 짓밟혔는지'를 토로한 것이다.

밀양구술프로젝트가 송전탑 반대 주민 17명의 이야기를 듣고 <밀양을 살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사진은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 가운데 구술에 참여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
 밀양구술프로젝트가 송전탑 반대 주민 17명의 이야기를 듣고 <밀양을 살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사진은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 가운데 구술에 참여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
ⓒ 밀양구술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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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편파적이면서 가장 온전한 밀양의 기록이다. 밀양구술프로젝트는 "그동안 정부, 한국전력공사 관계자, 그리고 그 어떤 언론도 제대로 묻지 않았던 질문을 던졌고, 밀양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그 답을 들었다"며 그래서 편파적이고 가장 온전한 밀양의 기록"이라고  소개했다.

이 책은 '전기는 밀양의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사실을 일깨우게 한다. 밀양구술프로젝트는 "주민들 중 80세가 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생애에는 굴곡 많은 한국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주민들은 싸움 속에서 스스로 깨우치며 '고통스런 학습의 터널'을 통과했고, 사람을 죽여서 얻는 전기를 필요 없다고 단호히 선언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주민들의 구술을 들은 기록자들은 "송전탑은 양자택일을 강요했고, 합의냐 반대냐,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될 틈이라고는 전혀 없었다"며 "찬반에 따라 동네가 갈라지고, 친인척이 등을 졌으며, 1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살림살이에도 축이 나고 여기저기 빈자리가 드러난다"고 밝혔다.

송전탑에 반대하는 밀양사람들은 그동안 한전 직원과 용역, 대규모 경찰, 밀양시청 공무원, 그리고 찬성하는 관변단체와 싸웠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주민들은 후회 없이 싸웠고, 또 싸운다.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끝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으로 스스로 희망이 되어 가고 있다.

주민들은 "조그만 희망이라도 있으면 그 틈을 비집고 가서 어떻게든"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고 있다. 이들은 구술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놓았다.

"이 골짜기 커 갖고 이 골짜기서 늙었는데 6․25 전쟁 봤지, 오만 전쟁 다 봐도 이렇지는 안했다. 이건 전쟁이다. 이 전쟁이 제일 큰 전쟁이다. 내가 대가리 털 나고 처음 봤어. 일본시대도 …, 빨갱이시대도 (이러지는 않았다). 근데 이거는 밤낮도 없고 시간도 없고, 이건 마 사람을 조지는 거지. 순사들이 지랄병하는 거 보래이. 간이 바짝바짝 마른다. 못본다 카이 못봐."

"이래서 우리가 그렇게 목숨 걸고 싸웠던 거구나. 내가 싸우지 않다가 이걸 봤으면 얼마나 후회했겠나. 송전탑 안 들어오게 하려고 그리도 오래 싸웠는데 그래도 들어왔구나. 그러나 역시 싸웠으니까. 이제 어쩔 수 없다. 내 힘으로는 되지 않는가 보다.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우리 정말 많이 싸웠다. 밤낮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양심껏 살아야 그기 사람 가치가 있지, 돈이 지금 인자 내 벌어놓은 것만 해도 다 못 쓴 건데. 절대 돈 그거는 추접은 돈이고 필요 없는 돈입니다. 돈 모할 낀데? 사람이 살아가는데 똑바로 살아야 합니다."

"한전이라 카는 집단은 공기업 아닙니까. 공기업이면 일반 민간기업, 일반 개인들이 운영하는 것보다 좀 더 높은 수준의 윤리성과 도덕성을 가지고 기업을 경영해야 하는데, 한전이라는 집단은 양아치 집단이라. 마을에서 합의가 안됐다 잘못됐다 카면은 마을에 와 가지고 뭐가 잘못 됐는지 살펴보고 그러면 피해가 많이 가는 마을 사람들한테 도장을 받고 해야 그게 합의가 되고 하는 거지."

"꿈에서도 막 싸웁니더. 일이 손에 안 잡힙니더. 갔다 오면 사람 몸만 피곤하고, 동네가 얼마나 좋습니까. 공기도 좋고. 예전에는 정부에서 하는 일은 다 잘해주겠지 생각했는데, 진짜로 송전탑 문제 경험 안했으면 몰랐지예. 데모하시는 분들 이해가 갑니다. 일방통행입니더. 한전 사람들이 나는 참 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집집마다 가서 일부러 받아갈라고 하는데 다 이유가 있을 거거든예. 주민들이 아무 뜻 없이 있는데 저거가 와가지고 댕기면서 거짓말하지예. 그것 때문에 주민들이 나놔지고 …. 주민들을 무시하니까."

"밀양 어르신들의 10년 투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어르신들의 남은 생애에 이 싸움은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 밀양 송전탑은 널리 알려졌지만 여전히 오해와 몰이해의 문턱에서 서성이고 있다. …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직업이란, 이 싸움의 진실을 드러내는 일이다."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27번 철탑 현장에 움막 농성장과 '무덤 구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사진은 손희경, 곽정섭 할머니가 움막 안에서 산나물을 손질하는 모습.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27번 철탑 현장에 움막 농성장과 '무덤 구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사진은 손희경, 곽정섭 할머니가 움막 안에서 산나물을 손질하는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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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사람 김말해, 김사례, 조계순, 이사라, 희경, 곽정섭, 이종숙, 권영길․박순연 부부, 구미현, 김영자, 안영수․천춘정 부부, 박은숙, 강귀영, 성은희, 김옥희씨가 구술했다.

그들의 구술을 미류, 배경내, 김영옥, 유해정, 명숙, 박이은희, 변정필, 안미선, 육성철, 박희정, 희정, 변정윤, 류현영, 진주, 이묘랑, 서분숙, 이계삼씨가 기록하고, 정택용 사진작가가 그들의 모습을 찍었다.


태그:#밀양 송전탑, #밀양구술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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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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