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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건' 사흘째인 18일 오후 전남 진도군 인근해 침몰현장에서 해군 해난구조대(SSU)이 침몰한 선체를 부력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리프트 백(공기주머니)을 설치하고 있다.
▲ 침몰한 세월호, 리프트 백 설치하는 구조대원 '세월호 침몰사건' 사흘째인 18일 오후 전남 진도군 인근해 침몰현장에서 해군 해난구조대(SSU)이 침몰한 선체를 부력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리프트 백(공기주머니)을 설치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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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정적에 휩싸였다. 뉴스는 침통한 소식뿐이고, 방송은 웃음을 잃었으며, 스포츠 경기는 생기를 잃었다. 모두가 할 말을 잃은 채 입을 꾹 다물었지만, 가슴 속에선 분노가 응어리진 채 스멀거리고 있다. 고장 나버린 대한민국은 어느덧 '괴물'이 되어 애꿎게 수백 아이들을 제물 삼아버렸다. 세월호 참사의 본질이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원인으로 지목되는 '안전 불감증'과 늘 허둥대다 되레 피해를 키운 '무능한 정부'라는 말은 이제 식상할 정도가 됐다. "언제는 안 그랬느냐"며 국민들 사이에 기대를 접은 지 이미 오래다. 고장 난 우리 사회에서 올 초 경주 마우나리조트 건물 붕괴 사고는 예고편에 불과할 거라던 한 지인의 우려는 예언이 됐다.

시나브로 정적은 분노로 변했다. 목숨을 잃었거나 실종된 이들의 유가족이야 더 말해서 무엇할까마는, 이번 참사에 가장 분노하는 이들은 누가 뭐래도 희생된 또래의 학교 아이들이다. 학교마다 중간고사를 코앞에 둔 시기지만, 솔직히 수업을 진행하기가 힘들다. 참사와 수습 상황을 실시간 접하고 있는 아이들의 동요 때문이다.

기성세대 향한 분노에 휩싸인 학교...수업 진행 힘들어

교실 안은 정부와 기성세대를 향한 분노의 공기로 덮였다. 아이들은 자기 또래 친구들이 왜 침몰하는 배 안에 갇혀 죽어야했는지를 비통해하고 있다. 잘못은 어른들이 저지르고, 책임은 아무런 죄 없는 아이들이 져야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또래 친구들이 불의의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기성세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라 규정하고 있다.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검은 리본 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아침 명상 방송을 통해 0.01%의 기적을 바라는 기도를 하고, 산 이와 죽은 이들 모두와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들을 모으고 있다. 문제는 수그러들 줄 모르고 쌓여만 가는 응어리진 분노다. 어떻게든 분노의 조절이 필요하다. 이러다간 TV로 사고를 지켜본 아이들조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

수업을 하다말고 아이들에게 편지지를 돌렸다. 그렇잖아도 참사 수습 진행 상황을 물으며 흥분하는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하느라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리 만무했고, 답변을 거듭할수록 아이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비록 계획에도 없던 즉흥적인 것이긴 했지만, '손편지 쓰기'로 그들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단원고 친구들'에게 편지쓰기...그 내용에 '참담'

대상은 '단원고 친구들'로 했다. 목숨을 잃은 아이든, 구조된 아이든, 학교에 남은 1학년과 3학년 아이든, 다가가 위로해주고 싶은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보자고 했다. 편지를 한 줄 한 줄 정성껏 써내려가다 보면, 끓어올랐던 분노도 어느 정도 가라앉고, 더불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감수성도 커질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이내 아이들은 차분해졌고, 종이 위에 볼펜 긁히는 소리만 들렸다.

"제발 살아 돌아와라. 눈물로 부탁한다."
▲ 광주 학생들이 단원고 친구들에게 쓴 편지들 "제발 살아 돌아와라. 눈물로 부탁한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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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아이들은 말이 아닌, 글로 응어리진 분노를 쏟아냈다. 욕지거리도 곳곳에 등장할 만큼 표현에 거침이 없었다. 차분히 건네는 위로와 공감의 말 대신, 모두가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 '대한민국이 싫다'는 식의 글들로 가득했다. 그것은 차라리 정부와 기성세대를 향한 적개심이었다. 일부 편지글 내용을 여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이보다 더 비참할 순 없다. 우리나라 ×같다."
"그 많은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달아난 선장이라는 ×은 사람도 아니다."
"그 많은 구명정은 데코레이션? 겉모양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곪아터진, ×같은 우리나라."
"당장 구조작업도 못할 거면서, 세월호 주변에 온갖 배들은 왜 띄워놓은 거지? 능력도, 대책도, 의지도 없는 쓰레기 정부야! 구조작업을 차라리 어민들에게 맡겨라."
"누구를 원망하나.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죄다."
"그 많다던 생존자가 한꺼번에 실종자로 둔갑하다니요? 지금 장난해요? 썩어문드러진 정부!"
"부모 잃고 구조된 가엾은 6살 꼬마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다니요. 왜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아요. 오늘부로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했어요."

차마 읽기조차 어려운 섬뜩한 표현도 많았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분노의 절정은 '선장'에게로 모아졌다. 수합된 백여 장이 넘는 편지글 중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선장'에 대해 분노하지 않은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미로 같은 통로와 비상구를 알려주고나 도망치지"라는 글부터, "승객들은커녕 자신의 명령만 기다리던 승무원들조차 죽음으로 내몬 ×"이라며,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그만큼 아이들에겐 충격적이었던 거다.

그가 피의자로서 법적 처벌을 받는 것과는 별개로,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그들로 인해 우리 교육은 가치관의 혼돈을 겪으며 적어도 희화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기성세대가 무슨 낯으로 미래 세대인 아이들 앞에서 정의롭게 살아가라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정부에 대한 불신, 정부는 알까

편지글에 담긴 아이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도 극에 달했다. '꿈과 끼를 키워달란 이야기 안 할 테니까, 그냥 죽지 않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만 해 달라'거나, '임금 행차하듯 사고 현장이나 분향소에 사진 찍으러 다니지 말라'는 조롱이 넘쳐났다. 수백 명이 죽고 실종된 대참사에도 변함없는 정부 관료들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아이들조차 혀를 내두르고 있는 것이다.

정부기관에서 제대로 점검했다면 구명정이 '장식품'으로 전락할 일은 없었을 거라고 가슴을 쳤고, 통합적이고 효율적인 재난 대비 체계가 갖춰져 있었다면 이렇듯 구조작업이 혼선을 빚진 않았을 거라며 분노했다. 만날 같은 점퍼 입고 청와대 지하벙커에 모여 회의만 하면 뭐하나, 막상 재난이 벌어지자 어찌할 바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정부의 무능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선장에게서 정부와 어른들의 모습을 보게 돼요. 입만 열면 안전과 효율, 원칙과 책임을 외치던 어른들은 다 꽁무니를 빼고, 순진하게 어른들을 믿고 따른 아이들만 죽은 거잖아요. 입으론 다 공자님이고 예수님이죠. 이젠 어른들 말 곧이듣는 친구들 거의 없을 걸요."
"죽거나 실종된 350여 명의 아이들 중 자기 자식이 있었대도, 과연 선장이 도망치듯 먼저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요? 그에게 아이들은 안전하게 모셔야 할 '고객'이 아닌, 그저 돈이나 벌어 주는 '남의 자식'일 뿐이었던 거죠."

들끓는 분노에 정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뒷북을 쳤다. 이쯤 되면 무능하다기보나 어처구니없다는 표현이 차라리 더 적확할 듯싶다. 아이들조차 하나같이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가면 되레 구조작업에 방해만 되는, 장관과 총리, 그리고 대통령의 사고 현장 방문, 늘 사후약방문인 관련자 엄벌 조치, 그리고 수학여행 등 체험학습 전면 보류 방침이 그것이다.

안전사고가 날 때마다 하달되는 '똑 같은' 공문. 받아 읽는것만으로도 괴롭다.
▲ '낡은 레코드판' 공문 안전사고가 날 때마다 하달되는 '똑 같은' 공문. 받아 읽는것만으로도 괴롭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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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낡은 레코드판' 같은 일련의 사후 조치를 예상 못한 국민들은 없을뿐더러, 또 들어야하는 것만으로도 괴롭다. 이태 전 해병대 캠프 사고 때도 그랬고, 얼마 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 때도 그랬다. 그러다 여론이 잠잠해지면 아무런 반성과 변변한 대책도 없이 다시 슬그머니 제재 조치가 풀리는 걸 늘 봐오지 않았나. 차이라면 고작 대통령의 방문 여부 정도다.

그래도 희망한다 "제발 살아 돌아와라. 이렇게 울며 부탁한다"

요컨대, 이번 참사는 그 피해 규모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가치관 전도와 교육의 근간을 뿌리 채 뒤흔든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기성세대로서 참담하고 미안한 마음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업시간 아이들의 교사를 바라보는 눈빛이 사고 발생 전과 후로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끼게 된다. '이게 나라냐'는 분노의 눈빛 앞에 나는 죄인이라도 된 듯 움츠러들었다.

끝으로, 이곳 광주의 고등학생들이 목숨을 잃었거나 실종된 또래의 안산 단원고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담긴 눈물겨운 메시지를 소개한다. 부디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하며, 이번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빈다.

"나 수영 잘 하거든! 지금 당장 달려가 너희들을 구해내고 싶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 친구들아 미안하다."
"하필이면 배 위에서 생일을 맞았다는 반장. 너의 리더십과 헌신적인 행위에 감동했다. 너를 닮아 열심히 살게."
"너희들과 연락이 안 되는 건, 스마트폰 배터리가 다 닳아서, 요금이 다 돼서라고 믿고 있다. 그렇지?"
"구조돼 돌아온 친구들아 제발 울지 말라. 친구들의 마음이 더 아플 거야."
"복된 부활절, 그러나 조금도 기쁘지 않다. 너희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너희들을 위해 기도할게."
"제발 기적이 일어나길. '기적'이란 말은 이럴 때 일어나라고 만들어진 단어다. 제발 살아 돌아와라. 이렇게 울며 부탁한다."

제주도 수학여행에 나선 뒤 '세월호' 침몰사고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과 인솔교사들이 실종되어 일부는 시신으로 발견되고 있는 가운데 17일 오후 비가 내리는 단원고 운동장에서 수백명의 학생들이 '조금만 더 힘내자' '모두가 바란다. 돌아와줘' '희망 잃지마'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 '희망의 불빛' 켜진 단원고 운동장 제주도 수학여행에 나선 뒤 '세월호' 침몰사고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과 인솔교사들이 실종되어 일부는 시신으로 발견되고 있는 가운데 17일 오후 비가 내리는 단원고 운동장에서 수백명의 학생들이 '조금만 더 힘내자' '모두가 바란다. 돌아와줘' '희망 잃지마'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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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참사, #단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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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세월호' 침몰사고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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