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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은 말했다.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마세요."

'회장'은 말했다.

"제자리를 지켜."

일부는 그 말을 믿고, 제자리에 남았다. 허나 정작 두 사람은 가장 먼저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수백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선장은 2014년 침몰한 세월호의 총 책임자였고, 회장은 1995년 무너진 삼풍백화점의 총 책임자였다.

 1995년 무너진 삼풍백화점. 웹툰 <삼풍> 중 한 장면
 1995년 무너진 삼풍백화점. 웹툰 <삼풍> 중 한 장면
ⓒ 선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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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책임을 져야할 이준 회장과 그 일가들은 침몰하는 배와 다를 바 없었던 백화점에서 누구보다 발빠르게 도망쳤다. 회장은 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치고 나와 죽을 때까지 몇 년간 살아 있었고, 사장은 몽골 기독교 선교사가 되어 '어쨌든' 살아 남았다. 그들은 다른 의미의 생존자들이었다. 세월호의 선장이었던 사람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기시감이라는 말이 있다. 데자뷰라고도 한다. 처음 봤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 혹은 풍경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우리들이 뭔가를 기억할 때 특정 부분만을 확대해서 기억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착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착각에서 비롯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은 우리가 끊임없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반성하지 않기에 결과적으로 정말 비슷한 광경을 만들어내고, 그 끔찍한 광경을 악몽처럼 되풀이해서 바라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19년 전인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사망자 501명, 부상자 937명, 실종자 6명)과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건(19일 밤 11시 기준 사망자 33, 실종자 269, 구조 174)이 기름종이를 대고 베껴 그린 그림처럼 겹쳐 보이는 건 단순히 선장의 무책임한 탈출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기자들] 19년 전보다 더 악질이된 언론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뒤 현장을 취재하러 몰려든 기자들의 행태와 세월호 침몰사건을 대하는 기자들의 행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뒤 현장을 취재하러 몰려든 기자들의 행태와 세월호 침몰사건을 대하는 기자들의 행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 선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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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이 무너진 뒤 현장을 취재하러 몰려든 기자들의 행태와 세월호 침몰 사건을 대하는 기자들의 행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 발생한 뒤 기자들은 '좋은 그림'을 잡기 위해 피해자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취재를 강행했고, 인명 구조를 방해하기까지 해서 많은 질타를 받았다.

심지어 생생한 화면을 촬영하기 위해 현장에 띄운 헬리콥터들의 지나친 항공 취재 경쟁으로 구조대원이나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묻히기도 했으며, 진동으로 인해 후속 붕괴가 우려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사고현장과 가까운 곳에서 취재를 하기 위한 기자들 간 경쟁으로 부상자를 둘러메고 나오는 소방관을 가로막거나, 아무 곳이나 라이트를 비추고, 촌각이 급한 부상자를 인터뷰하겠다고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훗날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지만 MBC의 한 기자는(국회의원도 되는) 구조작업을 위해 비켜달라는 구조요원들의 요구에 "취재를 위해 자리를 비켜줄 수 없다"며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19년이 지난 현재. 세월호 침몰사건에서 드러난 언론의 추태는 그때보다 더 악질적으로 변했다고밖에 할 수 없다. 피해자 아이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친구 죽은 것을 아느냐"고 물었던 JTBC의 기자는 차라리 얌전한 축에 속했다.

<조선일보>는 학생들은 '동부화재', 여객선은 '메리츠선박보험'이라는 표제로 실제 보험사 이름을 그대로 드러낸, 사실상의 보험광고 기사를 내보냈고, MBC와 이투데이에서는 선박 조난 사고를 다룬 영화로는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거기다 실재 구조현장에서 벌어지는 모습과 전혀 다르게 편집된 뉴스보도들과 하루에도 몇 번씩 사상자 수가 바뀌는, 그런 잘못된 내용을 언론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여과없이 내보내고 있는 중이다.

[재난관리시스템] 대체 국가가 아는 건 무엇일까

 19년이 지나는 동안 대형 사고를 잇달아 겪으면서도 당국이나 관련부처는 그 경험의 축적을 통한 조직적인 구조체계를 전혀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년이 지나는 동안 대형 사고를 잇달아 겪으면서도 당국이나 관련부처는 그 경험의 축적을 통한 조직적인 구조체계를 전혀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선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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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지휘본부가 사실상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가운데 피해자 가족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삼풍 사건 때나 지금의 세월호 사건 때나 별반 다르지 않다.

"대형사고 때마다 나타나는 지휘체계 혼란이 이번 삼풍백화점 참사에서도 그대로 반복돼 실종자 가족과 시민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중략) 민간인들의 현장접근 통제 및 구조요원의 효율적인 배치 등. 일사불란한 지휘체계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 글은 1995년 삼풍백화점 사고 당시 한 신문 매체의 기사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범정부 차원의 총력 대응을 지시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와 달리 정부 부처 간 지휘 협조 체계의 혼선도 드러났다. 16일 내내 해양경찰청을 관할하고 해난 사고 전문가가 많은 해수부와 재난관리 주무 부서인 안행부의 임무와 역할이 정리가 안 돼 혼선을 빚었다."

이 글은 2014년 4월 18일 <한겨레> 뉴스에서 발췌한 내용의 일부이다. 나는 이 두 기사에서 어떤 본질적인 차이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의 이름이 언급된 것과 사고가 일어난 곳이 백화점이 아니라 '바다'라는 사실을 통해 아랫 기사는 2014년에 벌어지고 있는 재난이라는 걸 어림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19년이 지나는 동안 대형 사고를 잇달아 겪으면서도 당국이나 관련 부처는 그 경험의 축적을 통한 조직적인 구조체계를 전혀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군과 해양경찰, 민간구조대는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이질 못하고 있다. 공기를 주입해 달라거나, 조명탄 사용, 잠수부들의 적극적인 침투 등을 요구하는 피해자 가족들의 애절한 목소리는 맹골수도의 조류를 따라 지금도 흩어져 가고 있다.

[정치인] 영향력 없는 김문수는 왜 진도에 내려갔을까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당시 퇴임을 반나절 남겨두고 있던 최병렬 서울시장은 현장을 방문했다. 사람들은 서울시장이 직접 나서 대책본부 간 통합이나 구조현장의 보다 조직적인 운영체계를 마련해 주길 원했다. 그는 현장에서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책본부의 통합은 이뤄지질 않았고, 관련 공무원들은 며칠이 지나도록 누구하나 모여 어떤 방향으로 업무를 분담하자는 의논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6월 29일 현장의 기온은 29도에 달했지만 각기 다른 위치에 놓여있던 사람들의 온도차는 여름과 겨울을 오가고 있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이틀째인 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전남 진도군 진도체육관을 방문하였다. 대통령은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35분간 질문과 건의사항을 들으며 실종자 가족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전달하면서 관계부처의 신속한 조치와 지원을 약속했다.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전날 16일 중앙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받는 자리에서 했던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듭니까?"라는 어처구니없는 질문과 함께 씁쓸함을 자아낸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에 무너진 백화점안에서 일주일 이상은 생존할 수 없다던 전문가들의 의견과는 다르게 10일만에 구조되어 나왔던 생존자도 있었다. 섣불리 희망을 접을 필요는 없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에 무너진 백화점안에서 일주일 이상은 생존할 수 없다던 전문가들의 의견과는 다르게 10일만에 구조되어 나왔던 생존자도 있었다. 섣불리 희망을 접을 필요는 없다.
ⓒ 선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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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대책본부에 앉아있던 김문수 경기도도지사는 언론플레이만 하면서 제대로 된 수색재개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관련하여 "책임질 수 있는 발언을 하고 있는 거냐"며 항의하는 한 실종자 학생의 부모에게 "저는 경기도지사지만, 경기도지사는 경기도 안에서는 좀 영향력이 있는데 여기는 지금 경기도가 아닙니다"라고 답변을 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진도까지 내려간 걸까.

그는 아마도 시를 쓰기 위한 시상(詩想)을 찾기 위해 진도를 방문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날 오후 <밤>이란 제목의 시 한 편을 트위터에 올렸다.

어린자식
바다에
뱃속에
갇혀 있는데
부모님들
울부짖는 밤
괴로운 밤
비까지 내려
속수무책 밤
긴긴 밤
괴로운 밤.

[희망] 그래, 우리에겐 늘 기적같은 일들이 있었다

 희망.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웹툰 <삼풍> 중 한 장면.
 희망.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웹툰 <삼풍>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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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었다.' 1995년 7월 10일. 삼풍백화점 사고발생 11일째인 9일 오전 8시 20분. 무너진 A동 중앙부 2층 상판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최명석'씨의 구조내용을 전하는 기사의 제목이었다. 에스컬레이터 H빔과 각종 철골, 배관들에 의해 무너진 2층 상판이 올라왔고, 그 협소한 공간에서 떨어지는 물과 종이상자를 뜯어 먹으며 최씨는 살아나왔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희망의 끈을 놓던 그 순간에 벌어진 '기적'이었다.

2014년 현재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는 아직도 수많은 실종자들이(특히 단원고 학생들) 가라앉는 배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모두가 부정적이고 암울한 예측만을 하고 있지만, 만약 역사와 재난은 비슷한 광경으로 반복된다면 그래서 삼풍백화점과 지금의 이 재난이 비슷한 면이 있다면 분명 침몰한 배 어딘가엔 1995년도의 생존자 '최명석'씨와 같은 '기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포기해선 안 된다. 절대로.   

우리에게 묻자, 우린 어떤 선택을 했을지...

앞서 말한 것처럼 19년 전과 지금은 과연 어떤 것이 달라졌는가? 생각해 보면 달라지지 않아서 절망적인 것들도 있지만 달라지지 않아서 다행인 것들도 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모든 기자들이 소위 '기레기'같은 짓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던 MBC '김은혜' 기자는 목숨을 걸고 백화점 붕괴현장으로 들어가 백화점 안에 있던 구조변경 후 도면을 가지고 나와 사건의 진상을 알렸다. 세월호 사건을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 중에도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기자들이 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백화점 사장놈'은 도망쳤지만, 다른 한쪽에선 직원들을 먼저 탈출시키고 자신은 희생됐던 화교계 '중국집 사장님'도 있었다. 세월호의 나이 드신 선장은 배가 침몰하기 전에 도망쳤지만 젊은 선원 '박지영'씨는 승객들의 탈출을 도운 뒤 숨졌다.

상황은 다르지만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무너진 백화점 안에서 일주일 이상은 생존할 수 없다던 전문가들의 의견과는 다르게 10일 만에 구조되어 나왔던 생존자도 있었으니 섣불리 희망을 접을 필요는 없다.

19년 전 삼풍백화점 붕괴와 현재 세월호 침몰을 하나의 축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지 묻지 않으면 안 된다.

고루한 이야기겠지만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해결될지는 알 수 없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사고(事故)에 대처하는 당신과 우리들의 사고(思考)다.

* 글쓴이는 소설과 웹툰 <삼풍>의 공동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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