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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듣던 중 한 실종자 가족이 무릎을 꿇고 호소하고 있다.
▲ 무릎 꿇고 애원하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듣던 중 한 실종자 가족이 무릎을 꿇고 호소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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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천지신명이라는 것이 있나 의문이 든다. 만물의 조화를 관장한다는 천지신명이 있다면 이런 참극은 어떤 조화를 위한 것인가 묻고 싶다. 

처음에 배가 뒤집혔다는 보도를 보았을 때 텔레비전 풍경은 서해 훼리호 사건과 너무나 닮아 보였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그때 비통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이 290명이 넘는다. 그 중에 위도 사람들이 58명이었다. 작은 섬에서 한 날 한 시에 제사를 지내는 집이 그리도 많게 되다니. 이는 전쟁 때나 벌어질 일이다. 지금도 서해 훼리호 사고 위령탑 앞에선 매년 10월이면 향이 피어오른다. 그때 서해 훼리호 침몰은 인재라고 판명이 났다. 바다는 죄가 없었다.

어른 말 잘 들은 아이들이 왜...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큰 배도 뒤집힐 수 있다. 살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어떤 일이든 생길 수 있다. 용납하기 어려운 것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한 아이들이 희생자가 되는 일이다. 죽음이 두려운 선장과 선원들이 먼저 도망칠 수 있다. 어른이라고 해서 다 어른은 아니니 말이다.

1시간 가까이 동안 "움직이지 마라, 선내에 대기하라"는 말을 고분고분 따랐던 아이들이 잘못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어른 말 잘 듣는 건, 칭찬 받을 일이 아닌가. 어이없게도 그 말을 순종한 대가는 컸다.

위기가 닥쳐도 판단을 못하고 두려움 앞에 모든 것을 잊어버린 어른들이 비루한 목숨 줄을 움켜잡는 동안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배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으니까. 거기에 천지신명은 없었다.

비정한 선장과 선원들이 육지에서 안전하게 숨을 쉬는 동안, 맹골수도 바다에서 무수한 목숨들이 사경을 헤매는 동안, 배가 완전히 뒤집어지고 난 후 그 24시간 동안, 어른들이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비가 왔고, 파도가 높았고, 출렁이는 바다 표면보다 바다 속은 더 회오리쳤다 해도 무슨 일이라도 했어야 한다. '에어포켓' 운운하면서, 바다가 가라앉길 기다리면서 배가 뒤집어진 지 24시간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은 너무 어이가 없다.

그동안 어른들이 한 일은 분석과 진단 그리고 단죄였다.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찾고, 선장을 참고인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바꾸고 그리고 배를 이용한 수학여행을 금지한다는 발표를 했다. 이런 대형 참사엔 반드시 단죄할 대상을 찾아야 하고 뭔가를 금지해야 변명거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어른 말 잘 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어른들의 문제 해결 방식이다.

아이들이 죽어가는 바다를 앞에 두고 이러쿵 저러쿵 분석하고 진단하는 전문가들의 청산유수한 입들을 테이프로 막아버리고 싶었다. 교육을 관장한다는 어른들은 단원고 측이 수학여행 안전규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단죄하고 배로 수학여행 가는 것을 금지시키며 변명거리를 찾기 바빴다. 비행기가 아닌 배로 수학여행을 갔기 때문에 참사가 벌어졌단 말인가? 교실에서 뛰어내리는 일을 막으려면 창문에 펜스를 가로지르면 되고 참사를 막으려면 배를 못 타게 하면 된다? 차라리 입을 다물기 바란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배우지 못한, 빠른 정보 전달과 특종 능력 갖춘 기자정신만 투철한 기자님들! 당신들도 입을 다무시오. 펜은 칼보다 강하다. 그 펜과 입술이 칼보다 더 예리하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태그:#세월호, #어른, #고등학생, #수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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