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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비어 있다. 이름 뿐이다. 선장이란 이름표가 붙어 있는 사람은 있어도, 배를 이끌고 지켜내야 할 우두머리는 없다. 안전행정부라는 표지판은 있어도, 그 속에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구체적 계획과 역량을 갖춘 공무원들은 없다.안개 속에서 배를 띄우는 회사도,대규모 수학여행을 보내는 학교도 비상시를 대비하는 훈련과 교육은 안중에 없다. 그 결과는 300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너무나도 참담하고 허무한 죽음과 실종이다.최소한의 내용이라도 갖춘 사회라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혹은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사고가 한국 같은 사회에서는엄청난 재앙이 된다.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매우 어리석기 때문이다. 충실한 과정 없이 결과만을 탐하기 때문이고,내용 없는 허울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것에 전혀 주목할 줄 모르고,겉으로 드러나는 타이틀, 명분, 유행, 이미지, 트렌드 같은 것에 온통 쏠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어설프게 이해하고 실천해왔기 때문이다.본래 자본주의가 돈과 소비에 대한 맹목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 제도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것은 사실과 구체성에대한 엄정한 존중이다. 거기서 발생하는 성실과 책임성이다.쉽게 말해, 배는 기울면 난파하게 되어 있으며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과 주의를 기울여야하는가에 대한 생각보다는,배는 띄우면 잘 가게 되어 있고 이 항해로 벌어들이는 수입은얼마인가에 대한 계산으로만 살아가고 있는 것이 한국인들의 모습 아니겠는가.

그러면 혹자는 반문할지 모른다. 나는 이 사회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고 책임있게 살아가고 있다고.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그러나 여기가 바로 잘못된 지점일지 모른다. 한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유지되는데 필요한 성실과 책임은 나와 내 가족에 대한 것이아니라 타인들,내가 얼굴을 모르는 다른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직업윤리이다.내가 지금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타인들의 삶과연관되어 있으며,이 일의 결과가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항상고려하지 않는다면,내 일은 윤리와 책임이 결여된 허울뿐인 것이다. 내 직업은 오직 나와 내 가족의 수입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게되고, 나는 타이틀에 불과한 사람이 된다. 그렇게 존재 이유가 모호한 직업인들이 늘어나는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행복과 안녕을 증진시키기는 커녕 보이지 않는 가스처럼 스며들어 어느 순간 폭발하는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된다.윤리의식 없는 사회가 어리석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라도,너무 늦었지만, 우리가 하나의 사회로서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왜 우리는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결과에만 집착하는가.그 과정에서 어떻게 안전과 책임에 대한 감각과 의식은 실종되었는가. 왜 그것은 수십년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는가.백보를 양보해서,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 무의식에 남긴 왜곡을 겪고 살아온  우리는 구제불능이라 치고,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는 더 나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되기 위한 희망의 교육을 제공하고있는가.그러기는 커녕 그들에게도 타이틀과 스펙뿐인 내용 없는 인간이되기를 훨씬 더 센 강도로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을 돈의 크기로 줄세우는 고삐 풀린 자본의 힘을 제어할 인간적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하고있는가. 정치는 이 경제제일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가 .왜 정치 역시 구호뿐이고 진영뿐이고 이미지뿐인가. 정치인들은 왜 온갖 모순과 부조리를 하나씩 해결할 구체적 대안을 만들어내지않으며,시민들은 왜 그것을 요구하고 검증하지 않는가.언론과 미디어는 왜 시민의 편에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실체가담긴 담론을 형성해 내지 않고, 흥미와 인기, 충격과 선정 위주의 보도를 일삼는가. 그리고 대중은 왜 이런 재난의 시기 외에는 연예인과 드라마와 예능과 스타발굴 프로그램에그렇게 열광하고 집중하는가.요즘 대세인 인문학은 과연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시킬 수 있을것인가.그것도 또 하나의 유행은 아닌가. 왜 어느 인문학 책 스타는 힐링캠프에 나와서 쇼를 하는가.한마디로 우리는 왜 이렇게 천박한가.

어떤 종교도 한국에 들어오면 극성스러워진다고 한다. 종교만 그러한가. 정치사상도 이데올로기도 경제형태도 문화도 다 마찬가지다.나는 이것을 사물이나 생각의 본질을 꿰뚫어 내 것으로 만들지못하고 껍데기에만 집착하고 만족스러워하는 경향이라고 읽는다. 이렇게 된 연유야 어찌됐든, 이 천박한 우리의 자화상을 직시하고 반성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구성원 전체가 노력하지 않는한, 우리가 세월호 속에서 어처구니없이 물 속으로 처박히는 세월은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태그:#세월호, #윤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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