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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 같지 않다"는 말이 있다.

청해진해운 소속의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을 보며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통곡하는 부모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당장 잘잘못을 가리는 일이 급한 것이 아니라 단 한 명이라도 생존자가 있다면 그를 살릴 방도를 찾는 일이 시급하다.

이번 사고로 자식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님들과 많은 실종자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한다. 실종자 모두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생환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4월 중순인데 이미 산은 5월을 목전에 둔 것 같이 푸르다.
▲ 철쭉 4월 중순인데 이미 산은 5월을 목전에 둔 것 같이 푸르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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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들은 4~5월에 수학여행을 떠난다. 고등학생의 경우 2학년 때 주로 수학여행을 떠난다. 보통 3박4일 일정이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이후 한 장의 문서를 받았다. 계획된 일정에 대해 재동의를 해달라는 학교 측의 문서다.

동의서는 받아 보았어도 재동의서는 처음이다. 당혹스럽고 아이들을 설득하려 노력했으나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니 그들의 꿈을 꺾는 것 같아 어렵다.
▲ 수학여행 재동의서 동의서는 받아 보았어도 재동의서는 처음이다. 당혹스럽고 아이들을 설득하려 노력했으나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니 그들의 꿈을 꺾는 것 같아 어렵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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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에 각별한 신경을 쓰겠다는 약속을 하고 실천하더라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어야 할 수학여행이 아닌가. 그런데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대형 사고가 발생한 상태에서 수학여행이 진행되면 과연 아이들에게 교육적일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수학여행 참가' 여부를 부모에게 자필로 기록하고 서명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모습은 이해가 어렵다. 만약 사고가 발생하면 부모가 동의를 해 시행했다고 할 게 아닌가.

부모의 기록과 서명을 원하며 재동의서를 내미는 아이들은 부모가 반대하지 말 것을 애원한다. 아이들은 오랫동안 손꼽아 기다려왔던 여행이나, 아빠의 성격을 아는지라 울먹인다. 그 모습을 보니 '참가하지 못한다'고 하기도 난처하다.

1학년부터 6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짠 일정도 당황스럽다. 사전에 예약된 상태라 하더라도 학교장의 재량으로 몇 개월 연기를 게 교육적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학교로서는 취소하기도 난처할 듯싶다. 학교에 전화를 해보니, 여러 학부모들은 이미 참가서에 동의를 나타냈다고 한다. 아이들의 의사를 물으니 "아빠 조심할께요. 그러면 되잖아. 보내줘"라고 애원한다. 결국 아이들 엄마가 서명을 했다.

이번 사고는 우리 모두의 잘못으로 발생한 사고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우왕좌왕하며 더 큰 분노를 유발하는 무책임한 정부를 보면서 "나는 (이 정권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고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들을 보며 분통을 터뜨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한 시절 '재건복'으로 부르던 작업복 점퍼를 걸치고 회의를 하는 대통령과 각료들 모습을 보며 "저렇게 옷을 갖춰 입을 정도로 저들에겐 화급한 사건은 아니구나" 생각하니 서글퍼진다.

현장시찰도 아닌 각료들을 모아 회의를 하며 같은 복장을 갖춰 입도록 누군가 지시했을 것이다. 지난 장권에서 가죽으로 만든 야전점퍼를 입고 지하벙커에서 비상대책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모습과 뭐가 다른지 묻고 싶다.

학교를 다녀 온 아이들에게 "아빠는 이번엔 수학여행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이들이 아플 때 나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잖아"라는 말 외엔 할 말이 없었다. 그 말을 하며 만감이 교차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http://www.drspark.net의 ‘한사 정덕수 칼럼’에 동시 기재됩니다.



태그:#수학여행, #세월호 사고, #재동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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