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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세월호에서 구조된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지난 16일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 차려진 응급환자 진료소에서 치료받고 안정을 취하고 있다.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세월호에서 구조된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지난 16일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 차려진 응급환자 진료소에서 치료받고 안정을 취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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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머리가 무겁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 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탄 세월호가 바다 한 가운데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날 이후 어렵게 잊고 있던 옛 기억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습니다. 수학여행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할까봐 가슴 졸였던 가족의 심정을 어찌 다 헤아릴까요? 하지만 잠시나마 수학여행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이가 내 동생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을 졸였던 악몽이 떠오릅니다. 이 시점에 이런 글을 쓰는 것도 고민이 되지만,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이가 앞으로는 더 없기를 바라봅니다.

가족의 심정 어찌 다 헤아려 볼수 있을까요?

지난 1990년 4월, 한 살 차이 나는 제 동생은 당시 중2였습니다. 그날 동생은 한껏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교길에 친구와 들렀던 분식점 아줌마가 텔레비전을 보며 하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악몽 같은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야야~ 너네 저 학교 학생들이지? 오늘 야들 수학여행 갔었지?"
"예, 그런데요?"
"저거 봐라, 오늘 수학여행 간 너희 학교 아이들이 탄 버스 한 대가 전복됐다고 하네. 그 버스에 탄 아이들이 많이 다쳤대... 죽은 애들도 있다던데..."
"예?"

이른바 안양 OO여중 수학여행 버스 전복사고. 이 사고로 학생 등 9명이 사망하고 23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버스는 뒤집힌 듯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어떤 정신으로 집에 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텔레비전 앞을 지키며 수학여행을 떠난 동생에게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학교에 전화도 해 보았지만, 몇 반 버스가 그렇게 됐는지 확인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엄마와 나는 얼음이 되어 텔레비전에 사망자 명단이 뜨고, 버스가 뒤집힌 장면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공교롭게도 동생 반이었던 버스가 사고 났다는 뉴스를 보고 또 한 번 오열했지만 정신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생이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텔레비전 뉴스만 붙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뉴스를 봐도 정확히 몇 명이 수학여행을 갔는지,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사고가 난 아이들이 몇 명 정도 되는지 등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 동생이 안전하게 잘 있다는 전화를 받기까지 엄마와 나는 손을 꼭 붙잡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동생은 사고가 난 버스에 타고 있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그때, 5년 치 애간장을 다 태웠다고 말합니다.

제주도 수학여행에 나선 뒤 '세월호' 침몰사고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과 인솔교사들이 실종되어 일부는 시신으로 발견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7일 오후 비가 내리는 단원고 운동장에서 수백명의 학생들이 '조금만 더 힘내자' '모두가 바란다. 돌아와줘' '희망 잃지마'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 '희망의 불빛' 켜진 단원고 운동장 제주도 수학여행에 나선 뒤 '세월호' 침몰사고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과 인솔교사들이 실종되어 일부는 시신으로 발견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7일 오후 비가 내리는 단원고 운동장에서 수백명의 학생들이 '조금만 더 힘내자' '모두가 바란다. 돌아와줘' '희망 잃지마'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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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화가 없다는 게 정말 놀랍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 심각해 보입니다. 처음 사고 소식을 보도할 당시,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선실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동영상이나 당시 상황에 대한 카톡 내용이 생중계되는 것 등은 사고자 가족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가슴을 더욱 멍들게 하는 것입니다. 25년 전 그때 기억으로 뉴스를 지켜보는 저도 가슴이 떨리고 저려오는데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지금도 애간장을 태우고 있을 안산 단원고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구조에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날이 저물어 가는 걸 보는 가족들의 심정은 어떨지, 저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제발 무사히 잘 돌아오길 하늘에 대고 기도할 뿐입니다.

제발,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해 봅니다

이번 사고로 전국에 예정됐던 수학여행이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1994년 그때도 그 사건 후 수학여행이 많이 취소됐습니다. 과연, 올해 수학여행만 취소하면 앞으로 일어날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까요?

25년 전 그날 밤, 학교에는 사고로 죽은 학생들을 위한 빈소가 차려졌습니다. 낯익은 후배들의 영정사진이 걸리고 아이들이 공부했던 교실에는 짙은 향이 가득했습니다. 어둑어둑해진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였고, 학생과 부모들은 수학여행을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을 기다렸습니다. 그 공포스러울 정도로 아팠던 기억이 다시 떠올라 머리가 무겁습니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가족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제발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해 봅니다. 제발.


태그:#수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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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유를 꿈꾸는 철없는 남편과 듬직한 큰아들, 귀요미 막내 아들... 남자 셋과 사는 줌마. 늘, 건강한 감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 남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수련하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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