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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지방선거를 50여 일 앞둔 시점에서,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이 교육 비리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음해성 편지'가 나돌아 강원도교육청이 조사에 나섰다.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이 편지가 학부모들의 오해와 불신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이 편지는 전체적으로 춘천 시내 A고등학교 교감의 비리를 고발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편지 내용 중에 A고등학교 교감과 민 교육감이 서로 '사촌 관계'인 것처럼 적어 놓음으로 해서, 민 교육감이 마치 '비리 교감'을 감싸고도는 것 같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이 편지는 4월 11일자 우체국 소인이 찍힌 상태로, A고등학교의 일부 학부모들과 교원단체 등에 발송됐다. 편지를 발송한 사람은 '박OO 교사 외 전체 교사 올림'으로 되어 있지만, A고등학교에 확인한 결과 '박OO 교사'는 이 학교에 근무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도교육청에 따르면, 편지는 SNS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도교육청은 이 편지가 담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편지가 작성된 배경과 편지 내용의 사실 관계 등을 규명하기 위해 지금 학교를 대상으로 임시 감사를 벌이고 있다.

도교육청은 또한 이 편지가 6·4지방선거에 출마할 예정인 민 교육감을 음해할 의도로 작성이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도교육청은 먼저 교육청 차원에서 조사를 진행한 뒤,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다는 계획이다.

편지는 여러 가지 의문을 낳고 있다. 편지가 선거를 앞둔 시점에 유포가 된 그렇고, 고등학교 교사가 작성한 것으로 보기에는 문장이 너무 조악한 점도 의문이다. 그리고 명예 훼손의 여지가 다분한 편지들을 우체국에서 버젓이 발송하는 모험을 감행한 것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민병희 교육감과 '비리 교감'이 사촌 관계?

A고등학교 B교감의 비리를 고발하는 내용의 편지.
 A고등학교 B교감의 비리를 고발하는 내용의 편지.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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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A고등학교의 B교감을 문제가 많은 인물로 지목하고 있다. B교감이 2013년 초 중앙정부 감사원으로부터 감사를 받은 내용을 비롯해,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에게 자습을 강요하는 등 학생들의 학습권을 방해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을 시시콜콜할 정도로 자세하게 적고 있다.

편지에 적힌 대로 하면, B교감은 2013년 2월 "재단에 협조하여 온갖 비리의 중재자 역할"을 하다 감사원의 감사를 받는다. 감사원은 이후 강원도교육청에 "B교감의 직위해제 등 처벌명령"을 지시했다. 그런데도 B교감은 "무죄로 풀려나 현재 (학교에서) 근무중"이다.

그러면서 편지는 "(B교감이) 무죄로 풀려나 현재 근무 중"이라고 쓴 문구 바로 뒤에, "참고로 민병희 교육감은 B교감의 사촌형임"이라고 적어, 마치 B교감이 민병희 교육감의 사촌 동생이어서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은 채 무죄로 풀려난 것 같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감사원이 B교감을 감사한 후 징계 처분 명령을 내린 건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하지만 이 편지에는 강원도교육청이 그 내용을 다시 학교로 내려 보내 '중징계'를 요구한 사실은 빠져 있다. 그리고 도교육청에는 징계를 강제할 권한이 없다는 사실도 생략돼 있다.

게다가 '민병희 교육감이 B교감의 사촌형'이라는 문구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민병희 교육감과 B교감은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편지는 학교 비리 문제로 감사를 받은 B교감과 민병희 교육감을 한데 묶어 놓아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후, A고등학교는 B교감이 검찰 수사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이유로 도교육청의 중징계 요구를 거부하고, B교감을 단지 '불문경고'(문서를 남기지 않는 형태의 경고-기자 주)하는 데 그쳤다. 이 사건은 결국 학교 측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것으로 귀결된 셈이다.

"민병희 교육감이 음해를 당할 수도 있다"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봉투.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봉투.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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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이어서, B교감이 인문계 학생들의 S대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교사들을 심하게 압박했다는 내용과 함께, 대학에 진학하려는 실업계 학생들을 위해 다른 실업계 학생들의 실습권 등 학습권을 박탈했다는 내용을 상당히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편지는 또 B교감이 인격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데도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B교감을 "(교사들이) 두려울 정도로 협박과 폭언으로 혼"을 내거나, "(교사들이 그 앞에 서면) 몸이 경직될 정도"로 무서운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편지는 "교사들은 B교감을 정신병자로 투서를 해야 하는지 신고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학부모들께 알려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편지는 명목상 A고등학교 학부모들에게 "A고등학교 학생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교사들의 뜻"으로 작성됐다.

하지만 이 편지는 학교 비리를 고발하는 편지로 보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다. 먼저 편지를 발신한 사람은 의혹만 제기한 채 완전히 몸을 감춘 상태다. 편지 내용을 확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전체 교사' 이름으로 발송된 편지가 문장이 너무 조악한 것도 의문이다.

편지 내용 중에 사실과 다르거나 사실 관계가 불분명한 내용도 상당수다. B교감이 감사를 받은 날짜도 학교 측이 감사 결과를 통보받은 날짜와 혼동하고 있다. 그리고 B교감이 학생들의 수업을 방해했다는 내용도 보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일 수 있다.

B교감은 현재 편지 내용 전부를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정하고 있다. 결국 남는 문제는, 편지가 B교감을 숱한 비리와 비행을 저지른 데다 인격적으로도 큰 결함이 있는 인물로 그려놓고 나서, 그런 인물을 바로 "민병희 교육감과 사촌 관계"로 연결한 부분이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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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편지를 접하는 사람들은 이 편지를 작성한 사람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B교감과 민병희 교육감을 친척관계로 꾸민 문구에 주목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 결과, 이 편지는 그 이면에 또 다른 의도가 숨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교육청은 사태 수습에 나섰다. 도교육청 최승룡 대변인은 "사실 확인을 위해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 편지로 인해서 민병희 교육감이 음해를 당할 수도 있고, 또 편지가 현재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어 정치적인 타격까지 입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만약 (편지 내용이) 사실이라면 도교육청에 민원을 내거나, 신문고라든가 그런 방법들을 이용했어야 하는데 이것은 지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는 데서 상대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그런 느낌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 편지 때문에 곤혹스런 입장에 처해 있는 건 학교도 마찬가지다. A고등학교 교장은 17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편지 내용이 사실과 다르고 과장된 부분이 있어 교사들이 치욕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무엇보다 학생들이 다칠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태그:#민병희, #음해, #강원도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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