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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경청하고 있다.
▲ 실종자 가족 요구사항 듣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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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훼리호가 침몰한 1993년 가을. 나는 인근 섬 해군기지의 말년 수병이었다. 사고가 나자 기지의 해군 함정들은 모두 실종자들을 찾는 일에 출동하고 당시 레이더병이었던 나는 사고가 수습될 때까지 한 달여를 거의 뜬 눈으로 보내야 했다. 사고 해역을 지켜보는 레이더병으로서가 아니라 부대장의 상황 보고를 돕는 이른바 '따까리'로서.

사고 직후 장관급 인사들이 기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의 기상상황은 최악. 수색 나선 함정들도 높은 파도에 침몰의 위험을 무릅쓰던 그 시기에 기지 대원 모두는 장관들 영접을 준비하느라 총 대신 대걸레를 들고 설쳐야 했다.

작전실 소속이었던 나는 레이더를 갓 전입 온 하사관에게 맡기고 대령이었던 부대장의 상황보고 준비 작업에 투입됐다. 차트를 만들고 글씨를 '그리고',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을 정리해서 보고하는 일 따위. 장관들은 평소의 양복 대신 점퍼를 입고 수십 명의 보좌진들을 이끌고 나타나 그렇게 준비된 상황 보고를 듣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사진을 찍고 하는 일 없이 떠나갔다.

장관들이 사라진 뒤에는 별들이 나타났다. 그렇게 귀하다는 별들로 그 좁은 섬이 미어질 지경이었다. 심지어는 별 한 개 준장이 커피를 타올 지경이었으니까. 별들이 와서 하는 일은 상황 보고를 듣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사진을 찍고 '바이바이'.

별들이 떴다 지는 그 기간 동안 부대원들은 평소 하던 일은 모두 손 놓고 걸레로 창틀을 닦거나 화단 낙엽 줍는 일이거나 커피잔 설거지에 투입되었다. 끗발 없는 투스타 따위가 헬기 대신 배를 타고 들어왔다가 날씨가 나빠 섬에 묶이기라도 하는 날이면 모든 부대원들은 스타와 일행들의 잠자리 수발에 매달려야 했다. 당연히 실종자 수색 업무는 뒷전이었다. 

그리고 당신들이 거기 진도에, 팽목항에 갔다는 뉴스를 들었다. 국무총리부터 대통령까지.

아아. 제발 그러지 말자. 거기는 지금 당신들이 필요한 곳이 아니란 말이다. 거기에 당신들이 무슨 낯으로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으되 아, 제발 그러지는 말자. 당신들은 나중에, 아주 아주 나중에, 거기 상황이 어느 정도라도 수습된 뒤에, 그런 뒤에 유족들이 던지는 계란세례를 묵묵히 견디는 역할로만, 오로지 그런 역할로만 거기 필요하단 말이다.


태그:#서해페리, #진도, #팽목항, #국무총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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