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와 집사람은 매일 아침, 할멈의 신세 한탄과 영감의 자포자기 가락의 맞장구처럼 티걱태걱으로 하루를 연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 때문에 '오늘은 무슨 일을 해나?'라고 생각하면서 일머리를 잡는 것이 짜증스러워 올리는 집사람의 변죽이 시작이다.

"내가 말년에 이게 무슨 꼴이여"
"할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여!"

부창부수(夫唱婦隨) 장단이지만, 오늘 아침에는 내 목소리가 더 크고 힘차다. 입구 석축의 가시넝쿨에 눌려 꽃을 피우지 못하는 철쭉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출사표를 던지는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지리산 주 능선이 잘 보이는 곳에 터를 잡고 살면서 능선을 거닐었던 젊은 날의 꿈을 추억하면서 여생을 보낼 것을 소망했다. 다행히 2005년 지금의 검화당 터를 마련할 수 있었고, 주말이면 직장이 있는 대전에서 구례까지 오가기를 7년 동안 지속했다.

나와집사람이 주말에 거주하기 위해 손수지은 오두막
▲ 시랑헌 나와집사람이 주말에 거주하기 위해 손수지은 오두막
ⓒ 정부흥

관련사진보기


2008년에는 시랑헌이라는 오두막을 지어 교두보로 삼았다. 시랑헌 덕분에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어 경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2010년이 되면서 나는 10년 전 인 2000년 시절을 돌아보고 10년 후인 2020년 나를 상상하면서 나의 인생을 설계했다( 2000년의 나, 2010년의 나, 그리고 2020년의 나). 지금은 상황이 너무 많이 변해 수정해야 할 처지지만 그래도 본 틀은 잘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2012년 6월 은퇴 후, 2년 동안 시랑헌 본집을 짓고 주변을 정리 해 왔지만 아직도 주변에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올봄에 했던 일 중, 대문과 울타리, 검화당 뒷산 정원만들기 같은 일들은 공사기간이 열흘이 넘게 걸린 큰 공사들이다.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이다.

퇴직 후 5년 정도는 힘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늦어도 70세 이전에는 부속건물들의 건축과 정원공사를 마치고 그 후에는 구축된 인프라의 활용과 관리에 여력을 다할 생각이다.

시랑헌 정원은 석회석 광산이었던 폐광을 부차드부부가 아름다운 정원으로 탈바꿈시킨 캐나다 빅토리아 '부차드가든'이 롤모델(Role Model)이고 스콧트이어링 부부가 살았던 삶의 방식은 나와 집사람이 흔들릴 때마다 갈 길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다.

나와 집사람은 매일 아침 식사 때 그날 해야 할 일을 결정한다. 시간을 다투는 일이 우선이고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일들은 뒤로 미루기 마련이다.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 그 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 즉 농사일이 그런 일들 일 것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별로 표가나지 않은 일들은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석축에 가시넝쿨 제거도 계속하여 뒷전으로 미뤄둔 일이다.

가시넝쿨에 갖혀 숨쉬기 조차 어려운 철쭉들
▲ 정원식 석축 가시넝쿨에 갖혀 숨쉬기 조차 어려운 철쭉들
ⓒ 정부흥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석축의 가시넝쿨 제거해야하는 일이 화급을 다투는 일이 되었다. 가시넝쿨아래서 철쭉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철쭉들을 덮고 있는 칡넝쿨, 월남가시, 쑥, 찔레, 열매도 맺지 않는 복분자, 미국자리콩 등은 번식력이 너무 강해 돌 틈에 심어 놓은 철쭉과 회양목들이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뒤덮고 있다. 매년 이 때 즈음이면 석축 청소를 했지만, 주말에만 다녀가기 때문에 시간에 쫓겨 뿌리까지 제거하지 못하고 마른 가시넝쿨만 치워주는 작업을 해왔다.

잡초들은 밑동을 잘라주면 잘린 자리에 더 많은 잔가지들이 나와 전보다 더욱 잘 자란다. 그 동안 가시넝쿨 제거작업은 철쭉과 회양목은 억제하고 잡풀들을 키우는 꼴이 되었다. 며칠씩 석축에 매달린 나와 집사람을 보고 지나가는 이웃들이 ' 제초제'사용을 권한다.

제거하고 돌아서면 다시 살아 나 번성하는 잡초를 없애버리는 제초제, 그것도 제거하고 싶은 잡초만 없애주는 제초제는 환상적인 농약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고엽제와 제초제는 이름만 다를 뿐 성분이나 작용기전이 같다. 제초제의 부작용을 알게 되면 사용해서는 안 되는 물질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석축을 점령해버린 가시넝쿨. 집사람은 가시넝쿨과 잡초가 어우러져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원석 석축을 싫어한다.
▲ 가시넝쿨 석축을 점령해버린 가시넝쿨. 집사람은 가시넝쿨과 잡초가 어우러져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원석 석축을 싫어한다.
ⓒ 정부흥

관련사진보기


올해는 가시넝쿨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뿌리까지 파서 없애버리기로 하였다. 가시넝쿨들과 선전포고를 한 상태라 3일이 걸리던 4일이 걸리던 철저히 제거할 것이다. 나는 정지가위를 허리에 차고 한 손에 톱, 한 손에 낫을 들었다.

목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꼈다 2중으로 껴야 가시넝쿨을 손으로 잡을 수 있다. 낮에는 초여름 날씨인지라 두터운 옷이 작업할 때 부담스럽지만, 특히 바지는 가시가 파고들지 못하도록 두터운 옷을 입지 않을 수 없다.

봄에 그을린 얼굴은 님도 알아보지 못한단다. 자외선 차단재를 바르고 귀까지 덥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잡초를 뽑다보면 흙까지 뽑아져 눈으로 흙이 들어가기 일수다. 보안경을 착용하고, 챙이 긴 모자를 눌러썼다. 곡괭이와 삽은 곁에두어 사용하기 편하도록 하였다. 집사람은 낫과 호미를 들었다.

전투가 시작되었지만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가시넝쿨들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쑥은 쪽수가 많고, 칡과 찔레는 뿌리가 크고 깊다. 돌틈으로 파고든 뿌리를 뽑아낸다는 것은 말과 같이 쉽지않다. 그래도 비교적 상대하기 쉬운 것이 월남가시와 미국자리콩, 복분자 등이다.

가시넝쿨을 걷어내자 철쭉들이 지지개를 켜기시작한다.
▲ 숨통이 터지는 철쭉들 가시넝쿨을 걷어내자 철쭉들이 지지개를 켜기시작한다.
ⓒ 정부흥

관련사진보기


'지치도록 종일 일했다' 와 '일을 많이 했다'는 완전히 별개의 의미인 것을 깨달았다. 칡 뿌리를 파기위해 반나절을 씨름 했지만 파지 못했다면 몸은 지치고 일은 못한 결과가 된다. 헛수고를 일컷는 말이다. 칡뿌리와 전투를 벌렸지만 돌틈으로 파고드는 칡뿌리는 '티토의 파르티잔'을 연상케 했다. 상대에 따라 다르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

칡과 갈대는 뿌리가 깊어 직접 제거가 불가능하다. 줄기를 짧게 자르고 금사미(제초제)원액을 찍어 발라주기로 했다. 뿌리전체로 퍼져 세포분열을 못하게 하여 칡과 갈대를 고사시킬 것이다. 제초제와 타협이고 최후의 선택이다. 잡초에 밀려 다시 도시로 역 귀농할 수는 없다.

석축은 높이가 5m 내 외이며 길이가 80m 정도 크기다. 나와집사람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전투에 임했지만 이틀이 지나도 절반정도밖에 진도가 나가질 못했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피폐해졌다. 전투 의욕을 상실한 집사람이 은심씨에게 SOS를 청한다. 내일은 은심씨 부부가 합류한다. 4년간 검도 무예로 닦은 은심씨 부부는 우리같이 무르지 않고 막강하다.

"칡, 갈대, 복분자, 월남가시, 미국자리콩, 찔레, 쑥... 기다려라!"

나와집사람이 이틀, 은심 씨 내외와 하루, 가시걷어내기 작업 후 시랑헌 석축
▲ 시랑헌 철쭉 나와집사람이 이틀, 은심 씨 내외와 하루, 가시걷어내기 작업 후 시랑헌 석축
ⓒ 정부흥

관련사진보기




태그:#귀농귀촌, #시랑헌, #정부흥, #지리산 , #구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