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현역 최고령 사령탑인 성남 FC 박종환 감독이 선수 폭행시비로 구설수에 올랐다.지난 16일 성남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박 감독이 당일 성균관대와의 연습경기도중 소속팀 선수인 김상준과 김남건의 안면을 주먹으로 수차례 때렸다는 폭로 글이 올라오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진상조사에 나선 성남 구단은 결국 17일 박 감독이 선수들의 안면에 신체적인 접촉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사건이 처음 알려진 직후 박종환 감독은 일부 언론을 통해 "경기력이 너무 좋지않아 훈계 차원에서 꿀밤을 한두대 때렸을 뿐 폭행이라고 할 정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폭행 논란을 처음 자유게시판에 폭로한 팬에 대해서도 "당시 현장에 팬들은 없었다, 누군가  나를 음해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구단의 공식발표를 통하여 박종환 감독이 선수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폭행에 거짓말까지 한 꼴이 돼 이중으로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문제의 핵심은 꿀밤을 때렸든 주먹으로 가격했든, 폭행의 수위 차원이 아니다. 어떤 가벼운 신체접촉이라고 해도 상대에게 모욕감을 줄 수 있는 모든 행위 자체만으로 폭행이나 인격모독이 성립한다.

스파르타형 리더십, 젊은 선수들과 소통될 지 의문

이번 사건은 언젠가 한번은 터질 수 있었던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강성 지도자의 원조로 불리우는 박종환 감독은 과거에도 강압적인 지도방식과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종종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1993년 K리그 경기에서 심판을 때려 중징계를 받는 등 폭행과 관련한 구설에 오른 것도 여러 차례였다.

박종환 감독이 지난해 성남의 지휘봉을 잡아 8년만에 현장으로 귀환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때 많은 이들이 기대보다는 우려와 의문의 시선이 적지않았다. 76세라는 고령의 나이와 오랜 현장공백도 큰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박종환하면 떠오르는 스파르타형 리더십이 과연 달라진 요즘 세대의 선수들이나 축구문화와 소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부호였다.

물론 구시대적이고 권위적인 이미지만이 박종환이라는 축구인을 설명하는 전부는 아니다. 박종환 감독은 한국축구가 세계무대와 거리가 있던 시절, 1983년 멕시코청소년월드컵 4강신화를 통해 한국축구의 경쟁력을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았고, K리그에서도 성남을 이끌고 사상 최초의 3연패를 달성하는 업적을 세웠다. 기술과 압박의 조화를 통한 박종환식 공격축구는 당시로서는 전술적으로도 상당히 시대를 앞서간 트렌드였다. 한국축구와 프로리그의 역사에서 박종환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가볍지 않다.

박종환 감독은 재야에 머물던 시절에도 한국축구 발전을 위하여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박 감독은 항상 선수도 지도자도 프로의식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해왔다. 프로라면 책임과 경쟁심을 가지고 끝없이 자신을 발전시키고, 팬들을 즐겁게 줄 수 있는 축구를 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감독이 8년만에 성남 감독으로 귀환하면서 취임 기자회견에서 주장했던 목표의식과 일치한다.

하지만 노감독이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박종환 감독이 생각하는 프로의식의 정체성은 철저하게 '경쟁과 결과' 위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것은 박 감독이 살아왔던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승자만이 인정받는다고 배워왔고, 혹독한 낭떠러지에 굴려서 스스로 살아남는 선수들만 생존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시대다.

오늘날도 경쟁과 결과를 가장 중시하는 본질은 변함이 없지만 대신 '프로다움'에 요구하는 기준은 더욱 다양하고 까다로워졌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성적만큼이나 내용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기 시작했다. 지도자와 선수의 관계 역시 선수들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리더십보다 소통과 공감의 수평적 리더십가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지도자와 선수간의 상호 존중과 매너역시 현대적인 프로의식의 필수 덕목이라고 할수있다.

프로농구에서는 지난 2월 16일 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이 정규리그 경기도중 소속팀 함지훈이 작전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을 나무라는 과정에서 욕설을 하고 입에 강제로 테이프를 붙이게 하여 물의를 일으켰다. 유감독이 직접적으로 함지훈에게 신체접촉은 한 것을 아니지만, 성인의 프로선수에게 인격을 무시하는 행위를 공개적으로 저질렀다는 점에서 유감독은 세간의 비판을 받아야했고 결국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종목을 떠나 프로에서도 지도자에 의한 선수구타와 인격모독이 빈번했던 20년전, 30년전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만큼 체육계도 선수들의 인권과 개성을 존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분위기를 보여준다.

한국스포츠 문화에서 선수와 지도자는 종종 사제관계로 일컬어진다. 무언가를 배우고 가르침을 받는 사이라는 것이 상호간의 연대감을 결속시키는 효과도 있지만, 그것이 곧 상명하복의 원리도 악용되는 경우도 많다. 냉정히 말하면 프로에서의 선수와 지도자는 직장상사와 부하직원에 가깝다. 지도자는 능력에 따라 선수를 판단하고 중용할수 있지만, 선수의 인격이나 개성까지 통제할 권리는 없다. 아버지뻘, 할아버지뻘 되는 나이차이라고 해도 각자의 위치에 맞게 지켜야할 예의가 있다. 그것이 진정한 프로다운 공사 구분이다.

박종환 감독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21세기에 걸맞는 프로의식이다. 손주뻘 되는 제자에게 어쩌다 잘되라고 훈계좀 했던게 뭐가 그리 큰 문제냐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그것이 물리적 신체접촉의 유무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박 감독은 원로 지도자들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다. 짧은 시간 열악한 상황속에서도 노구를 이끌고 팀을 만들어가며 초반 선전하고 있다. 그 모든 노력이 한번의 잘못으로 모두 물거품이 돼 버린다면 박 감독 본인은 물론이고 성남으로서도 불행한 일이다. 박종환의 리더십이 흘러간 20세기의 유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21세기에도 통하는 연륜으로 거듭날지는 그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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