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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인 아내와 나는 결혼 44년 차다.

우리 부부는 시골에서 한 내의 의류 대리점을 운영한다. 소매는 주로 아내가 맡아서 하고, 나는 도매에만 전념하여 두 남매를 키웠다. 지금, 아이들은 모두 40대 초반의 기업주이거나 회사원 부인으로 잘 지내고 있다.

처형보다 생일이 빠른 아내... 무슨 일이지?

어느 날 처형의 주민등록증을 볼 기회가 있어서 자세히 보니... 아니, 이건 뭔가? 아내의 주민등록번호가 처형과 생년은 같은데 생일이 오히려 빠른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경우가 있느냐는 생각에서 물어보니, 6·25 때 호적이 잘못되었다는 거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동생이 언니보다 나이가 많을 수가 있는가?

하기야 6·25 당시 호적이 잘못되지 않은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아내의 나이는 사실 나보다 3살 아래다. 게다가 호적에는 아내의 음력 생일인 7월 26일로 되어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겼다.

"여보, 내 생일이 어느 날이지?"

나는 혹시 아내가 남편으로서 자기 생일을 잘 기억하는가 생각하는 줄 알고 묻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날에 또 묻는 거다.

"양력으로 8월 29일이잖아. 음력 7월 26일."

두 번째로 말을 하니, 아내는 알았다고 한다. 아내의 생일이 되어 아이들과 아내의 생일 파티를 레스토랑에서 했다. 와인으로 축배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랬더니 아내가 하는 말은 "사실은 진짜 생일은 내일"이라고 말한다. 호적에 생일도 잘못 올라간 것이라며. 그제서야 우리 가족은 아내 진짜 생일이 음력 7월 26일이 아닌 27일인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생년월일이 모두 잘못된 거다. 아무튼, 이때부터 아내에게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여보 오늘 며칠이야?"라고 묻는다. 처음에는 꼬박꼬박 대답해 주었는데,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길눈이 어두워서 대전 누나네 집에 가려면 가는 동안 수십 번 여기가 어디냐고 묻는 거다. 여자들은 다 그런 거지 하며 알려주었다. 아내는 한국타이어 공장 대형간판이 보이면 '아 이제 다 왔구나' 라고 말했다.

매번 갈 적마다 그러는 데 차츰 나이가 들면서 증세가 심해진다. 요새는 금방 쓴 가위를 앞에 놓고도 가위가 어디 갔느냐고 찾고, 밥주걱을 전기밥솥에 두고도 주걱을 찾고, 건망증 증세가 도를 넘는 것 같다.

날짜를 묻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이고 뭐든 찾으려면 나에게 묻는다.

매일 쓰는 물건도 사사건건 묻는 아내, 혹시...

영화 <내 머릿속 지우개> 한 장면.
 영화 <내 머릿속 지우개> 한 장면.
ⓒ <내 머릿속 지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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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깎이, 알코올솜, 안경, 열쇠 등 매일 쓰는 물건도 사사건건 묻는다. 그래서 한동안은 아예 안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 결국 자기가 찾아낸다. 혹시 치매 증세가 아닌가 하여 병원에서 진찰해도 절대 아니란다. 이러다가 치매가 될까 봐 걱정이라고 하면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치매에는 더 잘 안 걸린단다.

사실은 아내가 물을 때마다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평생 그렇게 살아온 아내가 딱한 생각이 들어 요즘에는 잘 가르쳐 주고 하나씩 필요한 물건 자주 쓰는 물건은 꼭 제자리에 놓아준다. 그러면 거기서 찾아 쓴다. 그러나 아내에게 나쁜 버릇이 하나 있다. 아내는 뭐든지 쓰고는 휙 던져 버린다. 그러고는 또 찾는다.

나는 던져진 물건을 다시 제자리에 놓아두고 다음에는 거기서 찾아 쓰도록 했다. 앞으로 하나씩 고치면 될 것 같다.


태그:#건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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