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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초였다. 우리 반 아이 둘을 교무실로 불렀다. 2학년 전체에게 나눠 줄 활동학습지 인쇄물을 함께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혼자 하기에 조금 벅찬 양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인쇄물을 정리하는데, 두 녀석이 번갈아가며 내게 말했다.

"선생님, 일 도와드리는 거니까 상점 주시면 안 돼요?"
"상점 주셔야 해요. 점수 많은 걸로 주세요."

순간 '무슨 상점?'하고 반문했다.

"상점, 벌점 할 때 상점 있잖아요. 모르세요?"
"아, 그 상점? 알지. 근데 선생님 기분 별로 안 좋은데? 너희 혹시 선생님 일 억지로 돕는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근데 상점 많이 받아 놓으면 좋아요."
"왜?"
"상점을 많이 받아 놔야 나중에 벌점을 깎을 수 있잖아요."

상·벌점제는 '그린마일리지' 교육적인가?

상·벌점제는 '그린마일리지(green mileage)'로도 불린다. 지난 2010년경부터 교육부에 의해 적극 추진되기 시작한 제도다. 각급 교육청 차원에서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 학교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상·벌점제는 온라인시스템으로 관리·운영된다. 교사가 인터넷을 통해 그린마일리지 시스템에 접속한 후 상점이나 벌점에 해당하는 항목을 선택해 입력하면 자동으로 점수화하는 방식이다. 담임 교사는 수시로 개인별·학급별 상·벌점 누계 점수를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은 상·벌점 누계 점수에 따라 일정한 조치를 받는다. 우리 학교의 경우, 벌점이 20점을 초과하면 해당 벌점을 보호자에게 통보하도록 되어 있다. 30점이 초과하면 학부모 소환, 40점을 넘으면 교내 봉사 및 교외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상점이야 많이 받으면 상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 그렇다 치자. 벌점은 다르다. 받은 점수 크기에 따라 학생이나 학부모 모두 심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되는 조치들을 받아야 한다. 벌점을 과다하게 받은 자식 때문에 학교로 소환되는 부모의 심정을 상상해 보라. 자식이 무슨 중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도 착잡한 마음을 피할 수 없다.

상·벌점제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교사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상점이나 벌점을 줄 수 있는지 그 기준을 잡기가 어렵다. 상점과 벌점이 그때그때 교사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임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우리 학교에서는 인사 예절이나 고운 말 사용, 용의 복장 등에서 다른 학생의 '귀감'이 되면 해당 학생에게 상점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의문이다. 과연 아이들은 평소 어느 정도로 인사를 잘 해야 선생님으로부터 '귀감'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어떤 게 고운 말 쓰기에 해당하는지 교사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그래서일까. 상·벌점을 부과하는 주체인 교사들이 상·벌점을 임의적으로 활용하는 문제가 꽤 심각하다. 교사들이 아이들의 통제 수단으로 상·벌점제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평소 선생님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선생님에게 밉보인 아이들을 압박려는 수단으로 '벌점' 카드를 쓸 때가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그런 교사를 좋게 봐 줄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과 교사간의 정상적인 관계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상·벌점제는 교육적으로 온당한 제도가 아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 보자. 상․벌점제는 학생이라면, 아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서 지켜야 하거나 해서는 안 되는 기본적인 언행에 점수를 주는 제도다. 어찌 보면 사람이 지켜야 할 당연한 행동들에 대해 점수를 주는 것이다. 이게 과연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을까. 교육적으로 정당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학교 아이들은 수시로 상점과 벌점을 외친다. 뜬금없이 깍듯이 인사를 해 놓고 상점을 달라고 한다. 다른 친구가 휴대전화를 몰래 사용하는 것을 보고는 그 사실을 교사에게 냉큼 일러 바치면서 친구에게 벌점을 주라고 다그친다. 복도에서 심하게 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학교폭력을 신고했으니 상점을 달라고도 한다.

이런 아이들은 그 절반은 장난이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결코 장난이 아니다. 마땅히 하면 좋을 이른바 착한 일에 상점을 요구하는 '괴물' 같은 아이들을 누가 길러내는가. 우리 학교 상점 목록 중에는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등 학생으로서 금해진 행동을 하는 친구를 신고하는 학생에게 부과하는 3점짜리 항목이 있다. 준법 신고 활동에 포함되어 있는 항목이다. 점수가 매개하는 준법 신고를 통해 과연 아이들은 제대로 된 준법 정신을 기를 수 있을까.

벌금제 생기고 나서 평소 지각 안하던 학생도 지각하다니...

수년 전 학년 초였다. 첫 자치활동이 있는 날이었다. 반장과 부반장을 교무실로 불러 학급 회의를 제대로 이끌어 보라고 주문했다. 학급 규칙 같은 것을 정해 우리만의 제대로 된 학급 자치를 이뤄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였다. 모두가 흔쾌히 응했다.

아이들은 회의를 제법 진지하게 진행했다. 나는 중간에 교무실로 빠져 나왔다. 시간이 끝날 즈음 반장과 부반장이 왔다. 이런저런 회의 결과를 알려주었다. 학급 규칙도 정해 왔다. 회의록을 살펴보니 벌금제가 중심이었다. 무단 지각 벌금 500원, 야간 자율학습 무단 결과 벌금 1000원 등의 식이었다.

벌금제라 아이들에게 제법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용돈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500원이나 1000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잘만 하면 많은 담임 교사들의 꿈인 무지각·무조퇴·무결석의 한 해를 만들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벌금제 운영의 결과는 기대와는 전혀 딴판으로 나왔다. 지각하는 아이들이 멈추지 않았다. 야간 자율학습에 무단으로 빠지는 아이들도 많이 생겨났다. 물론 다른 반과 비교하면 많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벌금제를 운영하는 학급이라고 말하기가 무색할 정도였다.

미나(가명)는 그 해의 잊지 못할 아이다. 전 학년 담임 말에 따르면, 미나는 평소에 수시로 지각하고 결석하는 아이였다. 학년 초에 미나는 지각과 결석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묵은 습관 때문이었을까. 미나는 지각하는 날이 잦아졌다. 이틀이나 삼 일을 계속해 학교에 늦게 올 때도 있었다.

"미나야, 요새 무슨 일 있는 있는 거야?"

그날도 나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에 미나에게 물었다.

"아니요. 벌금 내면 되잖아요."

미나가 내게 던진 차가운 한 마디였다. 그뒤부터 벌금제와 같은 규칙은 내 교육 사전에서 깨끗이 지워졌다.

점수나 돈, 그밖에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보답물로 아이들을 지도하는 학교와 교사가 많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 보답물로써 아이들을 교육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 보았는가. 보답물로 아이들의 언행을 이끌었을 때 그들이 어떤 태도를 갖게 되는지 고민해 보았는가. 상점이든 벌점이든 점수가 지배하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교사 사이의 진심 어린 소통은 기대하기 힘들어서 하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상벌점제, #그린마일리지, #점수, #소통, #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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