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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배상금이 또다시 문제다. 이번엔 '시효 계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16부(부장판사 이정호)는 17일 정동영(61)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과 국악인 임진택(64)씨 등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피해자와 가족 3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의 배상 의무는 인정했다. 하지만 피고들이 소멸시효(일정 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면 그 권리를 소멸시키는 제도)가 지난 뒤 소송을 제기했다며 피고 대한민국이 원고들이 요구한 위자료 총 97억 5000여만 원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고 봤다.

그런데 지난해 4월 2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부장판사 심우용)가 다른 민청학련 사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소송에서 소멸시효 기준을 '재심 확정 판결시점'으로 삼은 것과 셈법이 달랐다.

17일 재판부는 그 기준을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가 민청학련 조사결과를 발표한 2005년 12월 7일로 잡았다. 임진택씨 등은 당시 영장도 없이 체포·구금됐고 구타, 협박 등으로 허위진술서를 쓴 뒤 풀려났지만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국정원 발표일부터 "이날부터 원고들이 피고에게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종료됐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아무리 늦어도 민법 766조 1항이 정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으나 3년이 지난 뒤인 2012년 9월과 12월에 걸쳐 소송을 제기했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기소 여부만 달랐을 뿐 똑같은 피해자인데... 형평성 안 맞아"

임진택씨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법원 판결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국가배상금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2012년 초에 알았고, 그로부터 6개월 안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했다. 형사재판 재심으로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는 기소자들과 달리 기소유예자들은 진실규명 절차를 밟을 길이 없어 억울함만 호소해왔는데 그때에야 길이 열렸다는 얘기였다. 임씨는 "우리처럼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또 다른 민청학련 피해자가 형사사건 재심에서 무죄판결 난 사람들과 민사소송에서 이긴 것을 본 뒤에야 우리도 국가배상금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형평성 문제도 지적했다. 다른 기소유예자들이 시효를 인정받아 국가배상금을 받은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임씨는 또 "기소 여부만 달랐을 뿐 불법 구금·고문 등을 당하고 변호인 접견권까지 뺏긴 점은 동일하다"며 "형사재판을 받은 사람이든 아니든 당시에는 아무도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석방 후 일상생활이 어렵고 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은 일 등도 "민청학련 사건으로 (당시 유죄 판결난 사람들과) 똑같이 겪은 고통이었다"고 했다.

그는 "공소시효라는 게 악법이란 생각도 든다"며 "국가폭력에는 공소시효가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또 다른 국가폭력"이라는 얘기였다. 이어 "사법부가 다시 정치의 영향을 받는 게 아니냐는 부당함과 불안함을 느낀다"며 "국가배상금을 비용문제로만 다루는 보수언론 눈치도 보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임씨는 다른 피해자들과 조만간 항소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태그:#민청학련, #국가배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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