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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는 가운데 긴급 출동한 해경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는 가운데 긴급 출동한 해경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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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습관적으로 튼 TV에서 속보가 나온다.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아침 방송 앵커들이 심각한 얼굴로 첫 소식을 전한다.

"한국 해변서 여객선이 침몰해 현재 300여 명이 실종중입니다. 실종자 대부분은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찰과 소방관들이 실종자들을 수색하고 있지만  어둠과 낮은 기온 때문에 현재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뉴스 화면에는 위태롭게 기울어져 있는 거대한 선체 위를 경찰과 헬기들이 어지럽게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얼이 빠진 생존자들과 우왕좌왕하는 실종자 가족들이 보인다. 익숙한 글자에 익숙한 얼굴들, 익숙한 풍경들이다. 망치에 맞은 듯 머리가 띵하다.

어젯 밤, 인터넷에선 분명 큰 사고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두 명이 사망했다고는 했지만 대부분 구출되었다는 소식에 불행 중 다행이라며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런데… 290명이라니. 내가 곤히 잠든 사이 차가운 물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290명이나 되었다니….

매일 미국의 주요 뉴스를 장식하던 말레이시아 여객기 실종사건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하루 전 있었던 보스톤 마라톤 1주기 행사 얘기는 들리지도 않는다. 어서 구출되길 바란다는 앵커들의 웅얼거림에 왈칵 눈물이 나왔다. 차려놓은 아침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오전에 접속한 SNS에는 슬픔과 분노가 가득했다. 생존을 기원하는 이들의 간절한 기도와 급박함과 안타까움의 반대쪽엔 주황색 구명 조끼를 입고 제일 먼저 구조된  선장과 기관사, 항해사에 대한  분노가 넘실댔다.

거기에 간신히 살아 돌아온 아이들을 붙들고 친구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기자, 사망과 부상, 핸드폰 파손시 보상금이 얼마인지 빠르고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보험회사 광고 같은 방송국, 그리고 아이의 사망을 확인한 부모에게 새까맣게 달려드는 언론사의 행태가 더 도마에 오르고 있었다. 정제하지 않아도 되는 SNS에서 기자들은 이미 기레기(기자+쓰레기), 하이에나로 불리고 있었다.

유족을 믿고 기다리게 하는 신뢰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16일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자녀 이름이 구조자 명단이 없는 학부모가 오열하고 있다.
▲ '어떻게 어떻게...우리 이제 어떻게'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16일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자녀 이름이 구조자 명단이 없는 학부모가 오열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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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0일, 미국에서도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남캘리포니아 고등학교 (Southern California high school) 학생 44명 등 총 48명을 태우고 캠퍼스 투어를 다녀오던 스쿨버스가 트럭과  충돌해 1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트럭은 시간이 생명인 물류 차량이었고 잔디로 된 중앙분리대를 넘어와 맞은편 버스와 충돌했다. 고속도로 상이었으니 모두 120km이상의 속도로 더 큰 희생자가 나오지 않은 걸 다행이라 할 판이었다. 그게 다였다.

사고 후, 모든 언론은 현장에 있던 이가 찍었음 직한 페덱스(FedEx) 트럭과 스쿨버스가 처참하게 충돌해 검은 연기가 나는 현장 사진만을 반복해서 자료 화면으로 내보냈다. 망원렌즈로 찍은 듯한, 경상을 당한 학생이 경찰과 이동하는 영상도 잠깐이나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잔디로 된 중앙분리대를 넘어 스쿨버스와 부딪친 트럭 운전사의 신원이나 사망 학생에 대한 정보는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어느 언론사도 그러지 않았다. 하루 아침에 자식을 잃은 부모의 울부짓는 모습도 볼 수 없고 친구를 잃은 생존 학생들의 인터뷰도 들을 수 없었다. 여기에  사망한  학생들 명단도 매우 느리게 발표됐다. 사망자의 신원이나 사고 원인에 대한 기사에는 꼭 NTSB(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 미국 교통안전위원회)가 인용됐다. 

지난 2009년, 뉴저지와 버팔로를 왕복하는 통근 비행기가 주택가에 추락해 승객 48명 전원과 지상에 있던 민간인 1명이 사망했다. 당시 유족들은 미 연방 항공청(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 FAA)의 조사를 기다리며 친지들과 조용히 장례식을 마쳤다. 그리고 몇 달 후 그들에겐 정중하고도 성의있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조사 결과가 건네졌다.  

이와 유사한 여러 사건들을 보며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 차이는 바로 관계 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였다. 스쿨버스 피해자들은 지금 미국 교통안전위원회라는 관련 기관의 조사 결과를 믿고 기다리고 있고 기관은 정확하게, 가능하면 신속하게 사고 결과를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학교와 버스 기사와의 커넥션이나 대형 물류 업체 페덱스의 로비쯤은 무시해도 될, 거래와 음모보다 더 힘센 관련 기관의 능력을 믿으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가족을 잃어 황망한 유족들이 정부 기관을 찾아 다니고 농성하고 악을 쓰고 모멸 당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 그리고 조직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하는 조사 결과는 국민의 기관에 대한 깊은 신뢰가 만들어 낸 합작품인 것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도는 소문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16일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 차려진 응급환자 진료소에서 구조자들이 옷과 음식을 배급 받고 안정을 취하고 있다.
▲ 응급진료소 차려진 진도체육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16일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 차려진 응급환자 진료소에서 구조자들이 옷과 음식을 배급 받고 안정을 취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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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항공 미스터리가 될 것 같은 말레이시아 항공기 실종 사건에 대한 말레이시아 현지의 소문을 들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부패한 말레이시아 정부가 선거를 앞두고 야당 지도자들을 탄압하면서 마지막으로 최고 지도자를 동성애 혐의로 감옥에 가두려 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에 분노한 기장이 관제탑과의 교신을 통해 야당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면 비행기를 납치할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고. 당황한 정부가 공군기를 보내 민간 항공기를 위협하다 결국 인도양 해상에서 폭격했다는... 그런 소문이다.

나도 들은 이 소문을 하루하루 애타게 새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항공기 유족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마지막 교신 내용을 비롯해 매일같이 말을 바꾸고 테러 운운하며 무속인을 불러 굿이나 해대는 말레이시아 정부 관계자의 행동이 유족들에게 모두 의심스러운 것은  당연할 것이다. 가족을 잃고 흔적도 원인도 찾지 못해 초췌해진 그들이 말레이시아 정부를 상대로 악다구니 싸움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죽은 이들을 살려내라고가 아니라 제발 진실을 밝히라는 것.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정부는 얼굴 마담격의 정치인을 내려보낸다. 그는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고 분노한 유족들과 악다구니를 하고 돌아간다. 그리고는 시간이 흘러 어느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결론을 내놓고는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만다. KAL기 폭발이 그랬고 대구 지하철 참사와 씨랜드 참사가 그랬고 천안함이 그랬다.

허술한 사건 조사에 누가봐도 진짜 몸통은 놔두고 힘없는 꼬리만 자르고는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해결은 피해자들에겐 더 큰 폭거이고 충격이고 절망일 뿐이다. 정부를 믿지 못한 유족들이 직접 현장으로 향했다. 사건 신고도 학부모가 처음 했고 제일 먼저 구조를 시작해 아이들을 구해낸 게 인근 섬의 어부들이라는 뉴스도 나왔다. 선장과 항해사 등은 살고 그들이 책임졌어야 할 목숨들은 경각에 달려 있는 이 현실에 어느 누가 분노하지 않겠나.

이미 세상이 정의롭지 않다고 믿는 부모들을 해경의 제지에도 직접 나가 구조하겠다고 절규한다. 선상 방송만을 믿고 선실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들에게 어른 말씀 잘 들으라고, 선장님 말씀 잘 따르라고 얘기했던 부모는 얼마나 가슴을 칠까 싶다. 세상이 이렇다는 걸, 요령껏 살아 남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못한 걸 말이다.

얼음판에 넘어져 팔이 부러진 엄마와 두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열 여덟, 열 아홉의 대학 신입생 아이들은 부실 설계된 건물이 무너져 죽음을 맞이했다. 수학여행으로 제주에 간다고 들떠 있던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모두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하고 성기고 때묻지 않은 고리들이다. 이들의 비극에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이 시대에 어떻게 살라고 가르쳐야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일까. 황망한 아침을 맞아 순수하고 어린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에 쓴다.


태그:#페리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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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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