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어야 할 두 선수가 어울리지 않게 관중석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원하지 않는 부상을 당한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와 수비수 헤라르드 피케(FC 바르셀로나)였다. 시즌 마지막 엘 클라시코 맞대결에서 그들의 빈 자리가 승부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도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였다. 종료 휘슬이 울린 직후 그라운드에 멋쟁이 모자를 쓴 양복 차림의 호날두가 활짝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이끌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 CF가 우리 시각으로 17일 새벽 4시 30분 스페인 발렌시아에 있는 메스타야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3-2014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 결승전에서 맞수 FC 바르셀로나를 2-1로 물리치고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역습', 레알 마드리드 특산품

현대 축구가 추구하고 있는 방향성을 한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이번 시즌 경기로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일부 축구팬들은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FC 바르셀로나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최고의 맞수 대결이 더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런 의미에서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레알 마드리드는 간판 골잡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없이 왼발잡이 두 선수의 맹활약에 힘입어 끝내 웃을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역습 공격 실력을 맘껏 뽐냈다. 축구 경기에서 역습 전술을 어떻게 준비하는지를 가장 잘 말해주는 장본인들이었다.

'공간 패스, 빠른 드리블 실력, 상대 팀 오프 사이드 함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그 역습 전술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또 한 번 보여준 셈이다. 그 중심에 '카림 벤제마-앙헬 디 마리아-가레스 베일'이 우뚝 서 있었다.

경기 시작 후 10분이 지나가면서 레알 마드리드가 멋진 선취골을 터뜨렸다. 중앙선 부근에서 시작된 역습 과정에서 패스의 줄기와 속도, 타이밍 모두가 남달랐다. 그 출발점은 이스코였다. 침착한 그의 공간 패스부터 심상치 않았고 이 공은 곧바로 가레스 베일을 거쳐 카림 벤제마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벤제마도 논스톱 찔러주기로 앙헬 디 마리아를 선택했다. 오프 사이드 함정을 이처럼 완벽하게 허물어버리는 패스는 좀처럼 보기 드물었다. 이 기막힌 연결을 받은 디 마리아는 상대 수비수 호르디 알바를 따돌리고 왼발 대각선 슛을 바르셀로나 골문 오른쪽 구석에 차 넣었다. 꽁지머리 문지기 호세 마누엘 핀토의 손끝에 공이 닿았지만 역동작이었기 때문에 그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수비수 피케의 빈 자리가 더 컸다

디 마리아가 터뜨린 이른 시간의 선취골이 마치 승부를 가를 것처럼 후반전 시간도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을 때 바르셀로나의 동점골이 코너킥 세트 피스로 만들어졌다. 68분, 챠비 에르난데스가 왼쪽 구석에서 오른발로 감아올린 공을 수비수 바르트라가 정확한 헤더로 성공시킨 것. 레알 마드리드 문지기 이케르 카시야스가 왼쪽으로 날아올랐지만 바르트라의 이마를 떠난 공은 오른쪽 기둥을 스치며 빨려들어갔다.

이 덕분에 바르셀로나는 기사회생했지만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의 강한 압박 수비를 벗겨내기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특히, 네이마르에게 항상 두 명 이상의 겹수비가 따라붙었고 그 과정에서 신경전도 자주 벌어졌다. 레알 마드리드 수비수 페페의 거친 몸싸움에 네이마르가 덩달아 흥분했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평정심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86분에 짜릿한 결승골이 터졌다. 그 주인공도 역시 레알 마드리드의 왼발잡이 날개공격수 가레스 베일이었다. 왼쪽 옆줄 가까이에서 이스코의 역습 패스를 받은 가레스 베일은 보는 이들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드리블 실력을 맘껏 자랑했다.

중앙선도 못 미친 곳부터 달리기 시작하여 반대쪽 바르셀로나 골문 바로 앞까지 공을 몰고 도착했으니 어림잡아도 60미터 이상의 거리였던 것이다. 더구나 바르셀로나 수비수 바르트라가 몸싸움을 걸어 그를 옆줄 밖으로 밀어냈지만 아랑곳않고 내달렸다. 문지기 핀토 앞에서도 그의 왼발 끝은 반 박자 빠르게 반응하며 결승골을 만들어낸 것이다. 경쾌한 드리블러가 역습 과정에 왜 필요한가를 분명히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반면에 바르셀로나로서는 마스체라노와 짝을 이뤄 중앙 수비의 커버 플레이를 든든하게 해내야 할 헤라르드 피케가 빠진 자리가 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실점 후 3분 뒤 결정적인 동점골 기회가 네이마르 앞에 찾아왔을 때에도 그들은 절망스런 표정을 지어야 했다.

챠비 에르난데스의 찔러주기가 기막히게 네이마르 발 앞에 도달했을 때 누가 봐도 이것은 극적인 동점골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문지기 카시야스가 각도를 줄이며 달려나오고 있었지만 발재간과 드리블 실력이 남다른 네이마르에게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는 순간인 줄 알았다. 하지만 네이마르의 오른발 토 킥은 야속하게도 레알 마드리드 골문 오른쪽 기둥을 강하게 때리고 나왔다. 오죽하면 카시야스가 그 공을 가슴에 안고 달려가 기둥을 어루만지며 감사의 뜻을 표했겠는가!

정말 축구장의 골대 불운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는 추가 시간 3분도 허무하게 흘러가 경기는 끝났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트레블의 꿈을 가시화시키며 환호성을 질렀고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진출 실패에 이어 국왕컵까지 놓친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고개를 숙였다.

이제 레알 마드리드는 또 하나의 트로피를 위해 달린다. 24일 새벽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을 치르기 위해 디펜딩 챔피언 바이에른 뮌헨(독일)을 안방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맞수 FC 바르셀로나는 이제 정규리그(스페니니 프리메라 리가) 일정만 남겨놓게 되었다. 1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비해 승점 4점이 모자란 형편이기에 남은 다섯 경기 모두를 승리로 장식해야만 하는 부담감을 안고 뛸 수밖에 없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 2013-2014 코파 델 레이 결승전 결과(4월 17일 새벽 4시 30분, 메스타야 스타디움)

★ 레알 마드리드 CF 2-1 FC 바르셀로나 [득점 : 디 마리아(10분,도움-벤제마), 가레스 베일(86분) / 바르트라(68분,도움-챠비 에르난데스)]

◎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
FW : 앙헬 디 마리아(86분↔이야라멘디), 카림 벤제마(90분↔라파엘 바란), 가레스 베일
MF : 이스코(88분↔카세미루), 사비 알론소, 루카 모드리치
DF : 코엔트랑, 세르히오 라모스, 페페, 카르바할
GK : 이케르 카시야스

◎ 바르셀로나 선수들
FW : 리오넬 메시
MF : 이니에스타, 파브레가스(60분↔페드로 로드리게스), 세르히오 부스케츠, 챠비 에르난데스, 네이마르
DF : 호르디 알바(46분↔아드리아누 코레이아), 마스체라노, 바르트라(86분↔알렉시스 산체스), 다니엘 아우베스
GK : 호세 마누엘 핀토
축구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CF 코파 델 레이 가레스 베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