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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진보진영의 가장 큰 싸움은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일 것이다. 특히나 새정치민주연합(당시 민주당)은 국기문란으로 규정하고 장외투쟁까지 벌였다. 그러나 시민들의 호응이 컸다고 말하긴 힘들다.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라는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임에도 분노가 불길처럼 번지거나 하는 현상은 없었다. 민주당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인지 궁금해서 지인에게 물었다. 왜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지?

 

처음으로 나온 답은 민주당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대선의 당락을 가를 정도는 아니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민주당이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정치적인 목적도 있지 않겠냐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당시 새누리당이 국정원 문제만 제기하면 대선 불복이냐고 따진 것이 나름 먹히고 있었다.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선거 패배에 대한 분풀이 내지 정쟁으로 몰고 간 것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조심스럽게 나온 말은 솔직히 괜히 관심을 보였다가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면이 있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 순방시 현지 교민과 유학생들이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당시 수행했던 새누리당 의원이 시위에 대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경고해 망언 논란이 일었다. 그런데 이게 단지 망언만은 아니었다. 실제 시민들은 정권에 반대되는 일을 했을 때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지를 은연중에 살피고 있었다.

 

내 삶도 벅찬데 정치문제까지 관심 가지긴

 

그러나 위에서 말한 것들이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정치 문제에 신경 쓸 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 코가 석자인데 그런 문제에 관심 쓸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즉,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내가 먹고 사는 문제도 벅찬데 다른 문제에 관심가질 여력이 없다는 말이었다. 한숨처럼 토해낸 말엔 짜증이 섞여 있었다.

 

지난 가을 나누었던 대화가 새삼 다시 떠오른 것은 재독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읽다 접한 한 구절 때문이다.

 

"오늘의 사회를 특징짓는 전반적인 산만함은 강렬하고 정력적인 분노가 일어날 여지를 없애버렸다."

 

한병철은 분노를 현재에 대한 총체적인 의문이며,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그런데 오늘날은 분노 대신 어떤 심대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짜증과 신경질만이 점점 더 확산되어간다고 말한다. 피로한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피로사회는 긍정성 과잉의 성과 사회에서 나오는 모습이다. 긍정성 과잉과 성과에 대한 집착, 이것들이 우리 사회의 중심적인 특징임을 부인할 순 없다. '할 수 있다'는 긍정성으로 무장하고 성과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 누가 시켜서 하는 것만은 아니다. 스스로 독려하고 다짐하면서 성과주체는 소진되고 탈진된다. 그러다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우울증이 된다. 우울증은 피로사회를 특징짓는 고유한 질병이다.

 

둘러보면 우울한 사람들이 참 많다. 특히 생존 위기감에 사로잡힌 40, 50대가 겪는 무기력감과 우울함은 사회문제로도 거론된다. 퇴근만 하면 화가 치밀어 자식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백화점에 가서 진상고객으로 화를 내며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런 화풀이는 한병철이 말하는 짜증과 신경질이다. 사회에 대한 심대한 의문인 분노와는 다르다. 이렇게 자신의 삶에 대한 불안으로 화를 내는 사람들이 스테판 에셀이 말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할 힘도 여유도 없는 것이다.

 

청년세대라고 다르진 않다. '자기소개서'라는 소설을 백번이나 써도 지치지 않고, "나는 할 수 있어"라는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자기 삶의 문제만으로도 충분히 지치고 벅찬 현실에서 내 문제 외에 다른 일에 관심을 갖긴 힘들다.

 

실은 내 삶이 안녕하지 않음을 느꼈던 '안녕'대자보

 

지난 연말 '안녕들 하십니까'란 대학가 대자보의 열풍은 의외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 대자보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느꼈을까를 생각해보면 다시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중앙대의 한 대자보는 "아등바등 취업준비와 시험공부에 매달린 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안녕하신가요?"라고 썼다. 다들 '할 수 있어' 아니 '잘될거야'라는 마음으로 정신없이 살고 있지만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에 실은 안녕하지 않음을, 피로하고 지쳐있음을 새삼 느낀 것이다. 물론 내가 내 삶의 안녕만 신경 쓰고 사회문제에는 무관심했다는 자각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내 삶이 안녕하지 않음을 대자보를 통해 공명한 것이다. 대자보 이후 대학가에서 사회운동이 더 활발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운동이 겪는 어려움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진보 운동은 사회문제를 제기한다. 국정원문제처럼 옳지 않은 현실을 고발하며 분노할 것을 호소하고, 강정이나 밀양처럼 힘든 현실을 알리며 관심을 호소한다. 하지만 피로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옳지 않음'에 분노할 여력이 없고, '그곳'도 힘들겠지만 내 삶도 힘들고 벅차서 그곳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한진중공업으로 희망버스가 몰려들고 진보적인 많은 이들이 운동의 희망을 발견하며 감동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정작 회사 내부에선 민주노조를 외면하고 사측에 협조적인 노조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피로한 사회의 현실이다.  

 

피로사회라면 진보운동도 그에 맞게 재구성되어야

 

사회가 이렇다면 사회의 현실을 살펴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옳음과 누군가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 나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운동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내 삶의 문제로 씨름하는 사회에서 나의 문제와 이익이라면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다. 그런데 나의 이익이라면 이기적인 생각이 들고, 운동이라면 옮음의 문제에 헌신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강하다. 또 대의에 헌신하는 모습이야말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갖는 정체성의 핵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모든 운동은 자기의 문제와 이익에서 시작했다. 자신들의 임금과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조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이기적이라고 비판받는 지점이 있지만, 그건 그들의 이익이 그들만의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잘 살펴보면 나의 문제엔 너의 문제이기도 하고 우리의 문제이며 사회문제가 되는 영역들이 있다. 이익도 나에게도 이익이 되고 너에게도 이익이 되는 공익이 있다.  

 

청년 취업만 해도 그렇다. 청년 취업 문제를 개인의 능력과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보수적인 접근이라면 사회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진보의 접근이다. 특히나 요즘 청년 취업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돌리기 어렵다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운동의 관점으로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 영역은 역설적으로 피로사회인 만큼 넓고 많다.

 

우리의 문제, 공익에서 진보의 주제를 만들어야 

 

서구 사회에서 진보적인 복지정치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출산, 양육, 교육 및 주택 문제들을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복지는 진보나 보수를 떠나 여전히 무상의 이미지가 강하다. 사회적 약자에게 무상으로 혜택을 주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 노령 연금에 의존한다면 인생 잘못 산 것"이라는 보수 인사의 발언처럼, 사람들은 그런 약자의 처지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애쓰며 피로하게 사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문제이면서 너의 문제인 우리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 나가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 모두의 이익, 공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함께하는 것이라면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삶의 문제가 더 이상 개인의 힘만으로는 풀어나가기 힘들다는 것을 피로사회에 지친 사람들은 다들 느끼고 있다. 결국 진보 정치나 운동의 미래는 이러한 우리의 문제, 공익을 발굴하고 정치의 주제로 만들어 나가는 역랑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2012)


태그:#피로사회, #국정원 대선개입, #한병철, #공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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