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떨어진 개나리의 노란빛이 더 진하다. 떨어진 꽃도 여전히 꽃이다.
▲ 개나리 떨어진 개나리의 노란빛이 더 진하다. 떨어진 꽃도 여전히 꽃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올 봄은 이상고온으로 꽃들이 한 번에 피어났다. 그렇게 따스한 날들이 이어지다 한차례 닥쳐온 추위에 제대로 다 피지도 못한채 나뭇가지에서 말라버렸다.

이제 다시 봄, 꽃들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꽃비가 내리는 봄날도 그리 길지 않았고, 저 꽃들의 흔적들도 이내 사라질 것이다.

낙화한 꽃, 떨어진 꽃을 보면서 나는 이 사회에서 낙화한 꽃처럼 살아가는 이들을 떠올렸다.

꽃잎을 다 놓아버린 살구꽃의 꽃술, 그 찬란하게 피었던 날들이 헛된 날이었을까?
▲ 살구꽃 꽃잎을 다 놓아버린 살구꽃의 꽃술, 그 찬란하게 피었던 날들이 헛된 날이었을까?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오로지 승자만 살아남는 경쟁사회에서 패자들이 감내해야 할 아픔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이런 생각들은 내재화되어 경쟁에서 밀린 이들조차도 자신들의 탓으로 돌린다. 경쟁에서 이긴 자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모든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여긴다.

만일 떨어진 꽃이 없었다면, 저마다 모두 열매를 맺는다면 실한 열매를 얻을 수 있을까? 떨어진 꽃이 있었기에 남은 꽃들이 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으니, 떨어진 꽃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떨어진 꽃도 아쉽지만, 열매를 맺고 싶었지만, 그렇게 떨어진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 지독한 자기합리화라는 병이라도 되는 것일까?

살포시 땅에 기대어 있는 꽃잎 하나, 그들과 함께 온전한 꽃을 이루었던 꽃잎은 어디에 있을까?
▲ 개복숭아 살포시 땅에 기대어 있는 꽃잎 하나, 그들과 함께 온전한 꽃을 이루었던 꽃잎은 어디에 있을까?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살다가 만나는 바람과 비와 꽃샘추위 같은 것들을 반드시 견뎌내야만 아름다운 꽃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때론, 그 바람과 비와 꽃샘추위에 다 피어내지 못한 삶을 떨구는 것도 자연의 섭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왜 우리는 반드시 이겨야만 하고, 일등을 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가? 그리고 왜 그들이 모든 것을 독식해야 하는가?

지금껏 소위 일등이라는 자들, 경쟁에서 앞서간 이들이 이 나라를 쥐락펴락했지만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 문제라는 것이 썩어서 진동할 정도로, 회생불가능할 정도로 이 나라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으니 그 경쟁논리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오히려 경쟁에서 뒤쳐져 힘없고 약한 이들이 그나마 이 나라를 근근히 지켜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라도 일등이 아니라 꼴찌에게 박수를 쳐줘야 한다.

서럽게도 빨리 떨어지는 목련꽃잎의 마음이 다 타버렸는가?
▲ 목련 서럽게도 빨리 떨어지는 목련꽃잎의 마음이 다 타버렸는가?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활짝 피어난 꽃도 물론 아름답다. 그러나 떨어져 누렇게 빛바랜 꽃잎이 아름답지 않은 이유도 없다. 오히려 더 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가?

떨어진 꽃이나 핀 꽃이나 열매를 맺는 꽃이나 그렇지 못한 꽃이나 그들의 살아가는 삶의 정황이 다를 뿐이다. 그 어느 편에 섯다고 위세를 부릴 일이 아니다. 결국, 삶의 끝자락은 다 같지 않은가!

이제 막 떨어진 라일락, 지난 밤 바람에 시달렸는지도 모르겠다.
▲ 라일락 이제 막 떨어진 라일락, 지난 밤 바람에 시달렸는지도 모르겠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지난 밤에 바람이 불었는지 향기를 가득 품은 라일락 꽃이 떨어졌다. 과연 저것이 끝인가? 아니, 끝이 아니고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다른 꽃들보다 조금빨리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 앞에 서있을 뿐이다. 그 앞에 서있다고해서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자만하지 않는다. 아니, 자만할 것도 없다.

나는 떨어진 꽃들을 보며 이런 상상을 한다. 일등한 이들과 경쟁에서 승리한 이들이 자기보다 뒤쳐졌다고 생각되는 이들이나 못났다고 생각되는 이들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는 겸손한 생각을 하는 이들로 넘쳐나는 세상, 그래서 일등이나 꼴찌나 할 것없이 더불어 사는 세상.

피어나다 추위에 다 피어나지 못하고 떨어진 꽃, 찬란한 슬픔이다.
▲ 앵초 피어나다 추위에 다 피어나지 못하고 떨어진 꽃, 찬란한 슬픔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비가 내릴듯 찌뿌둥한 하늘이 하냥 낮다. 봄비가 한차례 내리면 목말랐던 새순들이 힘을 얻을 것이고, 피었던 꽃들은 떨어질 것이다. 새록새록 힘을 얻는 것들과 쇠락해가는 것들은 서로 비교하지 않는다. 누가 잘났고, 못났으니 군림하겠다 하지 않는다.

최근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떨어진 꽃들을 짓밟고, 심지어는 떨어지지 않은 꽃들조차도 흔들어 떨어뜨리고 짓밟는 형국이다. 오로지 자기만 꽃이어야 한다는 듯 야만적이다. 그 야만성을 지적하면 적이라고 규정한다.

떨어진 꽃이 차라리 아름다운 시절, 아름다운 계절이다. 떨어져 더 진한 색을 간직한 것들도 아예 흙빛으로 쪼그라들며 말라가는 것들이 차라리 더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래서 4월은 잔인한 달인지도 모르겠다.


태그:#낙화, #개나리, #앵초, #목련, #라일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