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에티오피아 묘지에서 사는 할머니를 하옥선 씨가 소개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묘지에서 사는 할머니를 하옥선 씨가 소개하고 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매일 기다렸는데,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할머니. 제가 지난주에도 왔었잖아요."

에티오피아 데브라제이트 지역에 있는 옥토도스(에티이피아 정교) 교회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에티오피아에서 14년을 거주한 한국 교포) 하옥선(55)씨가 손을 내밀자 냄새로 그녀임을 알아차렸다. 오랜 기간 이곳에서 살아온 듯한 초췌한 모습의 할머니는 앞을 보지 못하셨다.

단지 냄새로 혹은 목소리로 사람들을 구별한다고 했다. 건네주는 빵보다 사람이 더 그리웠나 보다. 하씨의 손을 잡고 좀체 놓으려 하지 않았다.

이 방 아래에 뭐가 있는 줄 아세요? 시체가 있어요

할머니가 사는 묘지 안, 부패한 음식물을 말리고 있다.
 할머니가 사는 묘지 안, 부패한 음식물을 말리고 있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할머님 사시는 곳을 보여 드릴게요."

집인지 창고인지 모를 할머니가 앉아 계신 뒤쪽 어둑한 시멘트 벽돌 공간으로 들어서자, 햇빛을 받아 희미하게 안이 들여다보였다. 전기시설은 보이지 않았다. 

환기시설도 없는 후덥지근한 조그만 공간 안은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옆을 보니 인제라 (에티오피아에서 손으로 먹는 전통음식인)가 흩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구걸해서 받은 음식을 좀 더 오랜 기간 보관하기 위해 건조시킨다는 것이 부패가 진행되고 있었던 거다. 그 냄새에 둔감해진 할머니는 그것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밖에 말려도 될 것을 왜 집안에 들여 놨을까. (앞을 볼 수 없기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함에서였을 게다.

"이 아래에 뭐가 있는 줄 아세요?"

자세히 보니 좁은 할머니 보금자리 내부 옆쪽엔 철제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시멘트 뚜껑이 보였다.

"글쎄요... 창고인가요?"
"아뇨. 이것을 열면 시체가 있어요."

머리가 쭈뼛 서는 듯한 충격. 어떻게 사람이 시체 위에서 살 수 있단 말인가. 또 그곳에 음식을 널어놓다니, 어느 소설책에서나 읽었을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거다.

"이 근방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이들이 많아요. 이런 곳도 없어서 못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러고 보니, 교회 주변에 할머니가 사는 곳과 비슷한 건물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묘지 주인은 묘를 지켜주는 사람이 있어 좋고,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겐 은신처가 되는 공간. 그곳 사람들에겐 공포보다 살아야 산다는 현실이 더 절박했다.   

베푸는 것으로 복을 짓는 사람들

교회 입구 길가에 앉은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 줬다. 주면 주는대로 욕심도 없다.
 교회 입구 길가에 앉은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 줬다. 주면 주는대로 욕심도 없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지난 4월 6일, '한국전 참전 에티오피아 장병 후손들 장학금 전달'을 위해 에티오피아에 도착한 5일째 날, 하옥선씨는 (일요일이기 때문에) 교회에 가자고 제안했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나선 길, 느닷없이 빵을 준비했다는 말을 했다. 그것도 200개나.

"200개라야 가격으로 따지면 우리나라 돈으로 몇천 원도 안 돼요."

에티오피아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서 1시간 40분여를 달린 끝에 도착한 시골 마을 데브라제이트 지역 교회 입구. 그곳을 오가는 흰 두건을 걸친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교회의 신도들이다.

길가 양옆에는 생전 빨래라곤 해 본 적이 없어 보이는 누더기를 걸친 사람들이 표정 없는 얼굴로 우리 일행을 바라본다. 마치 제식훈련이라도 받은 양, 길옆에 질서정연하게 엎드려 있다. (검은 피부색 때문에) 쉽게 구분이 되지 않지만, 우리를 향해 내미는 손바닥엔 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한꺼번에 몰려들어 빵을 달라고 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은 나만의 기우였다. 그들은 그냥 손만 내밀고 있었다. 주면 주는 대로, 안 주면 안 주는 대로 더 달라는 사람도 없다.

"교회 입구에 이처럼 천사(거지)들이 많은 이유는 이 나라 사람들의 종교관 때문일 거예요."

그곳은 일요일 에티오피아 정교(옥토도스)를 믿는 사람들이 찾는 교회다. 개신교보다 가톨릭에 가까운 사상을 신봉하는 종교란다. 맹목적인 자기해탈 내지는 당사자의 천국인도를 위한 기도에 매달리는 신앙이 아닌, 어려운 이들에게 음식물 등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 자신이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 것이 이 종교의 특성이란다.

하씨가 데브라제이트 옥토도스를 찾게 된 동기

지금은 묘지 주인이 폐쇄를 시켰지만, 어느 여인의 분만 광경을 본 이후 하옥선 씨는 매주 이곳을 찾는다.
 지금은 묘지 주인이 폐쇄를 시켰지만, 어느 여인의 분만 광경을 본 이후 하옥선 씨는 매주 이곳을 찾는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그 까만 아기의 영롱한 눈빛이 얼마나 순수하던지..."

하옥선씨 부부는 3년 전 산책하기 위해 우연히 이곳 교회를 찾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어느 여인의 괴로운 신음소리. 시멘트 구조물의 철문을 열고 들어서 목격한 건 어느 젊은 여인이 분만 광경이었다고. 그곳 또한 인근의 조그만 묘지였단다.

집으로 돌아와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모습. 하씨는 다음날 빵과 병아리 몇 마리를 사 들고 다시 그곳으로 찾았다. (병아리가 커 가는 모습으로) 산모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싶었단다. 그런데 며칠 뒤 방문했을 때 병아리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고. 누군가 다 훔쳐갔다고 울먹이는 산모. 이후 그녀의 측은함 때문에 매주 그곳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는 게 하씨의 설명이다.

산모는 묘지에서 얻은 아기를 어느 가정에 입양을 보내곤 말없이 묘지를 떠났다. 언젠가 당당하게 성공한 모습으로 나타날 아기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게 하씨의 작은 소망이란다.  

* 에티오피아 세 번째 이야기는 '하늘나라로 떠난 엄마가 그리워 못으로 자신의 팔에 어머니 이름을  새긴 아이' 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에티오피아, #데브라제이트, #하옥선, #오태일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밝고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마이뉴스...10만인 클럽으로 오십시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