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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관들이 다섯 충신을 모신 오충사를 향해 큰절을 하고 있다
 제관들이 다섯 충신을 모신 오충사를 향해 큰절을 하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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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10시, 여수시 웅천동에 소재한 오충사에서는 춘기 석채례(釋菜禮)가 열렸다. (사)이충무공 유적영구보존회(이사장 오한석)가 주관한 석채례에는 지역의 유림과 정씨 종친회원 120여 명이 참석했다.

여수시 웅천동 웅동 마을에 있는 오충사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을 따라 종군하다가 전사한 정철(충절공)·정춘(충의공)·정인(충숙공)·정대수(충정공)의 4위를 모셔 '사충사(四忠祠)'라 했다.

하지만 1864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폐됐다. 오충사(五忠祠)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1921년 웅천동에 사우를 다시 세울 때 충무공을 주벽으로 모시고 기존의 4충신을 배향한 데서 유래했다.

정철과 정춘, 정인, 정대수 등은 임진왜란 초부터 충무공 휘하에 자진 종군해 의병활동을 전개, 큰 전공을 세운 해전 공신들이다. 당시 정철은 수문장으로, 정춘은 판관으로, 정대수는 부장 신분으로 모두 1등 공신에 올랐다. 또한 정인의 경우, 역시 부장으로 2등 공신에 등재됐다. '정씨4충(丁氏四忠)'이란 이름이 생긴 까닭이 여기 있다.

오충사 석채례는 봄(음력 3월 16일) 가을(음력 9월 16일) 두 차례 열린다. 향교와 삼황묘에서 지내는 석전(釋奠)은 '다 차려놓는다'는 뜻으로 굉장히 화려한 반면 석채(釋菜)는 '단조로운 차림'을 의미한다. 석전례는 임금을, 석채례는 충신 등을 모신 사당에서 행한다. 따라서 여수에 있는 충민사와 오충사에서는 석채례를 지낸다.   

이들 두 행사는 선현들의 학문과 인격, 덕행과 사상을 단순한 이론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를 숭모하고 존중하며 진리를 소중히 여기는 기풍을 체득하기 위해 문묘에서 거행하는 의식이다.

석채례에 쓰이는 모든 음식은 날것으로 올린다. 상에 올린 삼치와 돼지고기, 심지어 콩나물까지도 날것이다. 벽에는 임진 정유의 왜란 때 사용했던 거북선과 무기들이 그려져 있다
 석채례에 쓰이는 모든 음식은 날것으로 올린다. 상에 올린 삼치와 돼지고기, 심지어 콩나물까지도 날것이다. 벽에는 임진 정유의 왜란 때 사용했던 거북선과 무기들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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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는 익힌 음식을 제사상에 올리지만 임금과 충신들한테는 날것만 올린다. 제사상을 살펴보니 과일은 물론이고 삼치, 돼지고기, 간, 쌀과 조, 무우, 미나리, 심지어 콩나물까지도 날것 그대로다.

초헌관(박영채), 아헌관(장영섭), 종헌관(정병득)과 정씨 종친회원 순으로 큰절을 하고난 유림들은 제사 음식을 음복한 후 달라진 오충사 주변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오충사는 웅동 마을에서도 높은 지역에 건축해 마을 주민과 지역민들이 숭모하며 예를 보였던 곳이다. 그러나 웅천택지개발계획으로 인해 오충사 지붕만 보이자 강력히 반발("충신 모신 오충사를 이렇게 대우해도 되나"<오마이뉴스 2014.3.6.>) 해 여수시가 인근 부지를 1미터 낮추는 공사를 했다. 여수시가 성의를 보였지만 아직도 불만이라는 종친회장 정채홍씨의 얘기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도열한 유림들
 제사를 지내기 위해 도열한 유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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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1미터이상 더 낮춰져야 오충사가 돋보입니다. 동편 정수장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5미터이상 높아 도로에서 오충사를 바라보면 지붕만 보여 경관을 해치고 있습니다"

제례를 지낸 유림과 정씨 종친회원들은 간단한 음식을 먹으며 다섯 충신들의 애국혼을 기렸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오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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