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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유령들을 아시나요?

누군가가 단잠을 자고 있거나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새벽 시간. 야간 노동을 마치고 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어떤 노동자들이 있을까요? 혹 평소에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콜센터 노동자입니다. 제가 일하는 콜센터에서 3개월에 한 번 일 주일씩 야간 노동을 하고 있어요. 야간 노동을 하다 보면 남들이 잠든 시간에도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보통은 야간에 빌딩의 바닥 청소를 하시는 청소 노동자들이나 경비를 서시는 경비 노동자들과 가장 자주 마주합니다.

사실 야간 콜센터에 전화를 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지만 비상 사태를 위해서 돌아가며 야간 노동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잠들지 않는 세상을 체험합니다. 야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청소 노동자나 경비 노동자 외에 참 많이도 존재합니다. 그 많은 노동자들이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잠들지 않는 세상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들의 노동은 마치 유령처럼 낮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무실의 쓰레기통은 새벽 일찍부터 노동을 시작하는 청소 노동자들이 있기에 늘 깨끗하게 비워질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노동의 가치에 감사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가져오는 고립감은 노동을 하는 이의 자존감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저희 회사 건물에는 청소 노동자분들의 한 평 조금 넘는 크기의 휴게실이 화장실 옆에 있는데 사람들은 그게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무관심의 시선들에 저는 더 큰 고립감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저는 성소수자 노동자이니까요 타인의 부당함이 그저 남의 일이라고만 여겨지는 사회에서 유령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 중 하나이니까요.

성소수자 노동자를 아시나요?

저는 성소수자 노동자 그중에서도 게이 콜센터 노동자입니다. 벌써 6년째 콜센터에서 감정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소수자 노동자 그중에서도 게이 콜센터 노동자입니다. 벌써 6년째 콜센터에서 감정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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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아니면 동성애자에 대해서는 들어보셨나요? 성소수자란 게이(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레즈비언(여자를 사랑하는 여자), 트랜스젠더(성전환자), 바이섹슈얼(양성애자) 등 성적으로 소수자인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도 여러 사람들처럼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로서 노동을 합니다.

저는 성소수자 노동자 그중에서도 게이 콜센터 노동자입니다. 벌써 6년째 콜센터에서 감정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콜센터에서 일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콜센터 대부분이 여성 노동자의 비율이 높아 남성 중심적이거나 남성성을 강요하지 않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노동을 하는 게이 노동자는 오히려 남성성을 더 강하게 의식하기도 합니다. 내 존재가 드러나면 어쩌나? 내가 게이란 게 알려지면 어쩌나? 나를 감춰야만 합니다. 혹시 노파심에 이야기를 드리자면 혹여나 이 글을 읽으셨다고 평소 의심스럽게 보였던 남성 노동자가 있었다고 너도 혹시 게이냐? 이야기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그건 저에게 슬픈 일이니까요.

아무튼 저는 6년 동안 3번 회사를 옮겼습니다. 처음엔 어느 대기업 인터넷회사의 자회사인 콜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고강도 노동을 하는 곳은 다 비슷비슷하겠지만 콜센터도 동료 노동자간의 친밀도가 무척이나 높습니다. 그래서 종종 퇴근 후에는 식사나 술자리를 가지면서 서로의 고민이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게이인 저는 일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지만 개인적인 제 일상에 대한 이야기나 연애에 대한 고민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습니다. 게이인 성소수자인 나를 빼놓고 하는 이야기들은 마치 남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인양 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커밍아웃이라고 합니다. 저는 처음 콜센터 일을 시작한지 2년 만에 직장 동료들에게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저의 직장에서 커밍아웃은 대실패였습니다. 나름 2년이나 알고 지냈고 신뢰가 있다고 생각했던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돌아오는 반응들은 냉담했습니다.

한 동료는 제 이야기를 듣더니 혹시 자기를 좋아하냐고 물었고 또 한 동료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을 그만 두라며 한때의 혼란이니 결국 여자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고, 또 어떤 동료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가 뭐가 다른지를 몰라 저에게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상당히 모욕적이었고 결국에는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터에서 사라지는 노동자들

투쟁하는 노동자가 어디에나 존재하듯이 성소수자 노동자 또한 어느 일터에나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회의 편견과 차별 속에서 성소수자 노동자가 일터에서 그 모습을 내보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내보이지 않고 유령이 되기를 자처합니다.

유령 노동자. 이것은 성소수자 노동자만을 비유하는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사회는 투쟁하는 노동자들 또한 유령 노동자로 만들려고 합니다. 회사의 부당함에 대항하여 투쟁했다는 이유로 어떤 노동자들은 해고에 고소 고발, 구속, 손배 가압류를 당합니다.

그게 성소수자 노동자들이랑 투쟁하는 노동자들이랑 뭐가 같으냐?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부당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혹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성소수자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일터에서 노동자들은 너무나 쉽게 낙인찍히고 차별 당합니다.

며칠 전 한진중공업에서 희망퇴직을 하신 노동자의 자결 소식을 들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려 삶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는 그 노동자분의 사연을 읽다가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삶을 생각해 봤습니다. 언론에서는 너무나 쉽게 성소수자들이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듯이 이야기 하지만 성소수자들도 똑같은 사람들이고 똑같이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며 똑같이 삶에서 사소한 희망을 꿈꿉니다.

하지만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사소하고 일상적인 희망이 지켜지기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희망을 이야기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서 말할 때에도 비슷하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 권리가 침해 당하여 투쟁을 하는 노동자들을 세상은 너무나 쉽게 범죄자 취급하고 사회의 문제자인양 취급합니다.

그럴수록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사회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너 빨갱이지?", "그게 될 것 같아?", "조용히 좀 살아라" 같은 류의 말들을 내뱉어 낙인 찍어버리고 눈을 흘기거나 등을 돌립니다. 이런 무관심의 사회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존재를 내보이고픈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자발적으로 일터에서 사라지게 만들고 자발적으로 유령 노동자로 만듭니다.

희망의 일터를 이야기 합시다. 침묵하지 맙시다

우리 스스로가 침묵하면 할수록 일터에서 이야기 되지 않는 노동자들은 유령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침묵하지 맙시다. 계속 노동자의 권리에 대하여, 희망의 이야기를 계속 합시다.
 우리 스스로가 침묵하면 할수록 일터에서 이야기 되지 않는 노동자들은 유령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침묵하지 맙시다. 계속 노동자의 권리에 대하여, 희망의 이야기를 계속 합시다.
ⓒ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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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권리를 이야기할 때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권리 또한 함께 이야기되기를 희망합니다. 성소수자 노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또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일터를 희망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합니다.

이런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두렵게 만드는 세상 그 안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들 또한 함께 거리로 나가거나 함께 희망버스를 타기도 했습니다. 혹시 집회 현장이나 거리에서 무지개 깃발을 본적이 있나요? 그 무지개 깃발 아래에 성소수자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깃발 아래 더 많은 자리나 장소에서, 혹은 민주노조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존재합니다. 그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뿐입니다. 존재를 불러준다는 것, 기억해준다는 것이 때로는 사람에게 꽤나 큰 힘이 됩니다.

성소수자 노동자나 그냥 노동자나 우리는 같은 노동자입니다, 그저 서로가 그리는 희망의 그림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조금 다른 희망의 그림을 그린다는 이유로 차별 받아 마땅한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침묵하면 할수록 일터에서 이야기 되지 않는 노동자들은 유령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침묵하지 맙시다. 계속 노동자의 권리에 대하여, 희망의 이야기를 계속 합시다. 그리고 성소수자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성소수자들의 이야기가 더 읽고 싶으시다면 아래 페이지를 추천합니다.
동성애자 인권연대 웹진 랑 : http://lgbtpride.tistory.com/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형태'님은 동성애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민주노총 기관지인 노동과 세계에도 기고되었습니다.



태그:#성소수자, #노동자, #커밍아웃,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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