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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 인문학 포럼에서 강연 중인 한강
▲ 소설가 한강 강연 충남대 인문학 포럼에서 강연 중인 한강
ⓒ 신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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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2시. 충남대 문원강당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시민들로 가득 찼다. 바로 <몽고반점>으로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강연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이번 인문학 포럼은 이형권 교수의 사회로 시작되었으며 '글을 쓴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어린 시절에 이사를 자주 다녀 초등학교도 다섯 번을 옮겼어요. 교가를 외울 만하면 이사를 갔어요. 그래서 이 세계란 빨리 적응해야 하는 것이고 관계란 언제 어떻게 이별하게 될지 모르는 것이란 생각을 했어요."

"어릴 때의 기억 중에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어요. 교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글자가 안 보이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해가 진거죠. 그래서 불을 켜고 계속 책을 읽었어요."

그녀는 유년 시절의 기억들을 끄집어내며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다. 잦은 이사는 새롭게 만난 반 아이들과 친밀해질 때까지 그녀를 집에 머물게 했다. 그리고 책은 낯선 세상과 그녀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질 때까지 시간의 빈틈을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떠도는 시간 속에서 그녀는 글과 익숙해졌고 차츰 독서에 빠져들게 되었다.

"저도 중2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들을 던지게 되었어요. 인간이란 무엇인지, 나는 왜 태어났는지, 고통이 왜 있는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자칫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할 뻔했던 일화를 통하여 두려움을 경험하게 된 그녀는 인생의 연약한 면에 대하여 더욱 민감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인생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으며 유년 시절에 읽은 책들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찾아 읽은 작가와 시인들의 책 속에는 해답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그녀처럼 나약하고 더듬거리는 방식으로 쓰인 글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로 글을 쓴다면 그것이 곧 문학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밀한 질문들을 여러 해 동안 가슴 속에 담아 두던 그녀는 출판사에 근무하던 시절에 단편 소설을 응모하게 된다. 그녀를 등단 작가의 길로 이끈 것은 바로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이었다.

한강 작가는 다가오는 5월에 새로운 신작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를 출간할 예정이다. <소년이 온다>는 5·18민주화항쟁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어린 시절 그녀가 어렴풋이 보고 들었던 광주에서의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지난 1년 3~4개월 동안 그 이야기에 매달려 있었어요. 통과하기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어떨 때는 책상 앞에 앉는 게 벌을 받는 느낌이었어요. 지금까지 살아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써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녀의 나지막한 음성은 꾹꾹 눌러 쓴 글씨처럼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각인되었다. 무엇보다 현실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서 발아된 질문들이 그녀를 작가로 살아오게 만든 것이다.

80분 정도의 강연이 마무리되고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 글을 쓰는 데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희곡에 대한 책을 읽다가 어떤 글귀를 발견했어요. 투지도 창작성의 일부라는 구절이었죠. 이청준 선생님은 세상에 대한 원한 때문에 글을 쓰게 되었다는 말을 했어요. 강력한 동기라고 할까요? 특히 소설은 겸손한 장르라고 하잖아요. 재능이 어떤 결정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언어에 대한 감각이 있다면 좋겠지만 결정적이진 않은 것 같아요."

- 살아오면서 고민하고 질문을 던졌던 인간성 중에서 충분히 답을 얻지 못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언제나 인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어요. 인간에게 숭고한 면, 선하고 연한 부분이 있다는 걸 믿고 싶어요. 그러나 쉽게 화해하고 싶진 않습니다. 인간의 어두운 면을 뚫고 나가서 이게 진실이라고 믿는 걸 쓰고 싶어요.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인간의 잔혹함을 뚫고 인간의 존엄까지 닿으려고 했어요. 그리고 그걸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지난주에 런던 도서전에 다녀왔어요. 거기서 제가 제 소설에 관심을 가진 이탈리아 편집자를 만났는데 그가 저에게 당신은 시장작가가 아니라 '리터러시 라이터' 아니냐 라고 했어요. 시장 작가가 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제 소설이 대중적이진 않다는 것이겠죠.

제가 막 등단했을 때는 자본주의의 위세를 많이 못 느꼈어요. 서점에서 사인회를 하게 되면 '꼭 이렇게 해서 책을 팔아야 하나'라는 자괴감을 느낄 때였죠.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백일하에 공개되는 시대예요. 글을 쓴다는 건 이런 사회에서 인간 자신의 내면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숨을 쉬도록 하는 거죠.

글을 쓴다는 것은 저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이고 저는 그런 질문들을 하면서 서성이며 살았던 것 같아요. 글을 써서 잘 해보겠다는 마음보다는 질문이 강력해서 쓰지 않는다면 인생의 고비들을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점점 너무 뜨겁기도 하고 너무 차갑기도 한 질문들을 껴안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글이란 나의 질문을 독자에게 내민다고 할까요. 장편이라면 한 권이 하나의 질문이죠."

덧붙이는 글 | 충남대 인문학 포럼은 2014년 상반기 격주 화요일 2시부터~4시까지 문원강당에서 진행된다. 강연자 안내: 유예진(4/29), 김신명숙(5/13), 김상봉(5/27)



태그:#글을 쓴다는 것, #소설가 한강, #한강, #충남대, #인문학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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