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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18일 오전 10시 04분]

전남대에 붙은 대자보들. 글로벌커뮤니케이션잉글리쉬 과목 수강과 토익시험 강요에 반발하는 내용이다.
 전남대에 붙은 대자보들. 글로벌커뮤니케이션잉글리쉬 과목 수강과 토익시험 강요에 반발하는 내용이다.
ⓒ 이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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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사라진 대학가에 다시 대자보가 나타났다. 광주 용봉동 전남대학교 경영대(상대) 뒷골목에서다. 신입생 영어 필수과목인 '글로벌커뮤니케이션잉글리쉬'(아래 글로벌잉글리쉬) 수업과 대학의 토익시험 강요에 반발하는 학생들이 작성한 것이다.

지난 7일부터 글로벌잉글리쉬 과목 1차 시험이 치러졌다. 처음 대자보가 붙은 곳은 지난주 전남대 인문대3호관 게시판. 그곳에 두세 개 붙어 있던 대자보는 15일 현재 인문대 1·3호관에 각 한 장, 경영대 뒷골목에 다섯 장으로 그 수가 늘어났다. 그 중에는 글로벌잉글리쉬 시험을 거부한 학생이 쓴 대자보도 있었다.

글로벌잉글리쉬는 올해부터 전남대 신입생에게 대학필수 교양과목으로 지정됐다. 이수하지 않을 시 졸업이 불가능하며 장학금을 비롯한 각종 혜택에서 제외된다.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2년 동안 이 과목을 수강해야 하며 성적은 네 차례의 시험 점수로 매겨진다.

750점 이상은 A+, 700점 이상 750점 미만은 A, 600점 이상 700점 미만은 B+, 500점 이상 600점 미만은 B, 500점 미만은 C+다. 시험 형식은 ETS(미국교육평가원) 특별시험으로, 토익시험을 그대로 적용한 형태라 보면 된다.

대자보들은 대학 본부가 글로벌잉글리쉬 과목에 대한 설명을 학생들에게 충분히 하지 않은 점, 장학금 혜택을 조건으로 필수이수를 요구하는 점, 강압적으로 이루어지는 영어 시험의 목적이 취업률 향상에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익명으로 작성된 한 대자보는 "우리는 시험을 왜 치러야 하는지 어떠한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시험결과에 따라 학점이 정해진다는 협박에 가까운 통보를 들었을 뿐이다"라며 "필참해야만 하는 중요한 시험이라면 그 시험의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가 시험을 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대자보에서는 "자본주의에 종속되어가는 대학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학생들의 권리를 무시한 것, 돈이라는 족쇄로 학생들을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전남대 학사과 담당자는 글로벌잉글리쉬 과목에 대한 사전 설명이 부족했다는 비판에 대해 "지난 학기 후반부터 교수 학과실을 통해 학사지도부의 협조를 받아 홍보를 해왔다"라며 "(오리엔테이션이나 교과목 시행일정 설명 때) 지도를 받지 못한 학생이나 사각에 있던 학생들에게 전달이 되지 않은 것 같다"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강제성에 대한 비판에는 "우리 대학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점으로 제시한 것일 뿐"이라며 "그렇다면 모든 졸업자격 기준을 강제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덧붙여 "저학년(1·2학년) 때부터 대학이 관심을 갖고 동기부여를 하기 위한 방편"이라며 "완성된 사회인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과정이라 여겼으면 한다"라고 주장했다.

신입생 필수 영어과목 반대하는 전남대생들 '릴레이 대자보'

전남대에 붙은 대자보들. 글로벌커뮤니케이션잉글리쉬 과목 수강과 토익시험 강요에 반발하는 내용이다.
 전남대에 붙은 대자보들. 글로벌커뮤니케이션잉글리쉬 과목 수강과 토익시험 강요에 반발하는 내용이다.
ⓒ 이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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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교육부는 대학평가를 실시하고, 일부 언론들도 저마다 다른 기준으로 대학평가를 진행해 그 결과를 지면에 싣는다. 이 때문에 전북대는 대학 본부에 평가지원과를 따로 두고 있을 정도다. 대학평가는 중요하다. 상대평가로 줄 세워진 대학들은 차례로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게 되고, 하위 순위 대학들에게는 구조조정이 행해진다. 지방대학이 통합되고 학과가 통폐합되는 근거도 바로 대학평가다.

서울 면목동에 있는 서일대의 경우도 3월 21일, 취업률 등을 기준으로 삼은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문예창작과, 연극과, 사회체육골프과, 레크리에이션과 야간학부를 폐과하겠다고 통보했다. 그에 반발해 문예창작과 학생 70여 명은 정부서울청사 후문 앞에서 침묵시위와 서명운동 등을 진행했으며, 3월 27일부터는 수업거부에 돌입했다.

상명대·한남대 등 대학들이 대학취업률을 허위로 공시한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3월 26일 교육부 감사실에서 작성한 '고등교육기관 취업통계실태 특정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 대학들은 지난해 4월부터 5월까지 시행된 감사에서 취업률을 허위로 작성한 사실이 적발돼 징계 및 시정명령을 받았다.

목원대의 경우 미취업자를 취업자로 작성·공시하여 업체에 인턴십 지원금 600만 원을 지원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교육부는 관련 부교수, 조교수에게 징계 및 주의 조치를 취했고, 부당하게 지급된 인턴십 지원금도 회수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대학교육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학생들의 교육환경은 어떤지가 모두 수치로 결정되고, 그에 따라 잘난 학교와 못난 학교가 가려지고 있다. 전남대가 강제로 학생들에게 영어 시험을 보게 한 이유 역시 이것 때문이다.

대학평가 지표 중 취업률과 학생 충원율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대학평가에서 높은 순위를 받으려면 학생들의 취업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직종을 망라하고 영어 점수는 취업의 필수요소이기 때문에 '강제로' 영어 시험을 보게 하는 것이다.

대학순위 때문에 영어점수 강요하는 대학... 대학은 이런 곳인가

전남대에 붙은 대자보들. 글로벌커뮤니케이션잉글리쉬 과목 수강과 토익시험 강요에 반발하는 내용이다.
 전남대에 붙은 대자보들. 글로벌커뮤니케이션잉글리쉬 과목 수강과 토익시험 강요에 반발하는 내용이다.
ⓒ 이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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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 3월 현재 취업인구의 평균 토익 점수를 조사한 결과, 742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점이나 높았다. 기업이 요구하는 영어 점수가 해가 다르게 상향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학생들 역시 기업의 요구에 맞추어 영어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3월 30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영어 공부에 하루 평균 3.94시간을 투자했다. 이는 전공 공부(1.98시간), 제2외국어 공부(0.51시간)에 비해 훨씬 길었다.

대학생 평균 총 사교육비는 20만5천 원으로 조사됐는데, 이 중 절반에 달하는 평균 10만2천원을 영어 사교육에 썼다. 전공 공부를 위한 사교육에는 평균 4만8천원을 투자, 영어공부에 들인 금액의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취업률에 따라 달라지는 대학평가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전남대의 글로벌 잉글리쉬 과목은 대학서열화의 영향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그 때문에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영어 시험장에 들어서게 됐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장학금 제도의 수혜 자격도 영어시험 응시 여부로 결정되게 된 것이다.

대학이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가. 또 가르쳐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취업인력을 만들어내는 공장마냥 학생들을 상품으로 바라보는 대학의 시선 때문에 진정한 배움이 무엇인지 잊혀져가고 있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각종 제도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초학문에 대한 연구는 소홀해지게 됐고,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는 이제 고리타분한 말로 들릴 정도로 되풀이되고 있다.

영어 점수가 높은 사람을 뽑는 기업, 취업률이 높은 대학에만 투자하는 정부, 대학순위에 연연하여 영어 점수를 강요하는 대학, 거기에 순종하여 영어 점수에 목숨을 거는 대학생. 원인을 알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굴레는 모두가 본래의 역할을 잃게 만들었다. 우리 사회가 대학생들에게 바라는 훌륭한 어른의 모습이, 정말 높은 토익 점수와 초봉 3000만 원으로 대표되는 '안정된 직장인'뿐인 것인지 되묻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은향 기자는 오마이뉴스 1기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대학순위, #전남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잉글리쉬, #전남대 대자보, #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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