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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에 애 어른이 어딨어?"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한 집안의 가장인 이상현의 딸인 이수진이 남고생들한테 성폭행 당하여 끔찍하게 사망하게 된 사건으로 시작한다. 공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딸의 복수를 감행하는 상현과 그를 쫓는 형사 장억관의 갈등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공권력이 사건 해결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인공 스스로 복수를 하러 떠난다는 서사 구조는 이미 많은 영화에서 써먹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방황하는 칼날>은 '미성년자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사건의 발단이 된다는 점에서 조금 특별한 시각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은 이미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한 기사에 따르면 아동 청소년 성범죄 가운데 가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가 2008년 37명에서 2012년 132명으로 3.6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또한,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청소년 범죄자들 10명 중 4명은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다고 한다.

그 외 성매매 알선 및 강요를 받는 미성년자 연령도 2007년 16세에서 2012년 15.5세로 점점 낮아지는 추세이다. (출처 - 김하영, 아시아뉴스통신, <미성년자 성범죄자 40%이상 집행유예, "말도 안되는 사회"> 2014.3.13) 2004년에 있었던 밀양 여중생 사건은 이러한 청소년 범죄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청소년 범죄 관련 현실이 영화에 잘 반영되어 있음은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확인할 수 있다. 극 중 마지막 범죄자 조두식이 자기 친구 김민기와 통화하면서 "자수할거야. 깜빵 한번 가지 뭐"라는 대사가 그 예이다. 자신에게 가해질 처벌이 별로 두렵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볍다는 것이다.

또한 극 중 이상현이 찾아갔던 청솔학원은 사실 학원을 가장한 청소년 성매매 업소였다. 조두식은 예전부터 이 업소와 연계하여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던 것이다.

조두식을 비롯한 범죄자 캐릭터 이외에, 집중해서 봐야 할 캐릭터가 한 명 더 있다. 바로 김민기이다. 영화는 공권력이 청소년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 정당한가에 대한 물음을 관객에게 던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기에 김민기라는 인물을 더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청소년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김민기는 영화 내의 모든 사건 전개의 시작을 알리는 인물이며, 자세히 보면 극 중 이상현이나 조두식만큼 고생을 많이 하는 인물이다. 김민기는 학교에서 거의 왕따로 지내고 있으며, 아버지 차를 운전하여 성폭행을 도와줬다. 그리고 성폭행을 한 아이들의 위치를 상현에게 익명으로 문자를 보냄으로써 상현이 아이들을 추적하게끔 만들었다.

이후 민기는 학교에서도 폭행을 당하고, 집에서조차 아버지에게 욕설을 듣고 폭행 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정에서조차도 사랑과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자라왔음을 암시한다. 극 말미에 가서는 조두식을 유인하는 미끼로 이용당한다. 역설적으로 민기의 아버지는 민기에게는 모질게 대하다가도 형사와 경찰들에게는 친절한 모습을 보여준다.

민기와 두식은 모두 소외된 청소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영화에서 소외된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쪽은 민기이다. 가족, 친구 그 어느 영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만약 영화가 현실의 연장선이라면, 민기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모든 청소년의 모습이다.

영화를 보고 현실 속에서 무언가를 생각하게 된다면, 청소년 관련 처벌 수위를 올려야 된다고 주장하거나, 청소년 범죄자들을 뭐라고 나무라기 전에, 우리 사회에서 왜 이런 아이들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가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열화된 입시 위주의 교육, 아이들의 '존재'에 대한 고려가 없는 교육 아래에서 소외된 아이들은 결국 민기나 두식이와 같은 아이가 되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여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어른들은 거의 유일한 놀이도구인 컴퓨터 게임이나 스마트폰조차 셧다운제로 막으려하고 있다. 거기에 남은 시간에 어른들은 아이들보고 학원을 가란다. 청소년들은 우리 어른들에 의해 어쩌면 가장 불행한 시기에 살고 있다.

이상현 역을 맡은 배우 정재영이 한 인터뷰에서 <방황하는 칼날>은 청소년이 아닌 어른이 봐야 할 영화라고 이야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영화를 보고 단순히 영화 한편 본 것으로 끝낼 것인지, 반성이나 경각심을 가질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개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만약 후자를 선택한다면 우리 어른들이 먼저 가져야 하는 것이다.


태그:#방황하는 칼날, #영화,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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