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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15일 서울 내곡동 청사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사건에 대해 대국민사과하고 있다.
▲ 대국민 사과하는 남재준 국정원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15일 서울 내곡동 청사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사건에 대해 대국민사과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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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준 국정원장이 15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남 원장은 이날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전날 기자들에게 엠바고를 걸고 미리 배포했던 A4용지 1장 남짓의 사과문을 읽고 바로 사라졌습니다.

으레 이어지는 질의응답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낭독 후 쌩~' 하고 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기자들은 국민들의 알 권리를 대신해 현장을 취재하는 것인데, 남 원장의 사과문 내용에 대해서는 일절 묻지도 따지지도 못한 채 현장을 떠나야 했습니다.

현직 국정원장이 증거조작으로 간첩사건을 만들어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도 아주 불명예스러운 일이지만 사과하는 그의 태도가 너무나 당당해서 과연 진심으로 이 사건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할 뜻이 있었나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 원장은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는 정보기관으로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해 왔으나, 일부 직원들이 증거위조로 기소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참담하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수사관행을 점검하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완전히 뿌리 뽑아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개혁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낡은 수사관행과 절차의 혁신을 위해 TF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지요.

이어 "과학화된 수사 기법을 발전시키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국정원 본연의 업무인 대공 수사능력을 한층 더 강화하겠다"며 "엄격한 자기통제 시스템을 구축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법률위원장은 이 같은 남 원장의 사과에 즉각 반발합니다. 박 위원장은 "간첩사건이라는 게 1년에 한두 건 있을까 말까 한데다 (국정원이) 홍보를 거듭했던 대형사건이고, 게다가 이 사건이 1심에서 유우성씨에 대해 무죄가 났으면 조직이 발칵 뒤집힐 사건인데, 국정원장은 책임이 없고 그저 대공수사의 최고책임자였던 2차장만 사의를 표명하면 되는 것이냐"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심각한 보고체계의 왜곡이 벌어진 데 대해 국정원장이 지휘 관리 책임을 져야 한다"며 "남 원장이 군 출신답게 조직의 수장인 내가 책임을 지겠다 하고 아랫사람들에 대해 선처를 구하는 것이 진정한 도리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사과문 통해 두 가지 강조한 국정원장

남 원장은 이날 사과문을 통해 두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첫째 낡은 수사관행과 절차의 혁신을 위해 TF를 구성하겠다. 둘째, 과학화된 수사기법을 발전시키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국정원 본연의 업무인 대공 수사능력을 한층 더 강화하겠다.

첫 번째로 이야기한 낡은 수사관행은 유우성씨의 여동생 유가려씨에 대한 고문과 불법 구금 때문에 언급한 것일까요? 유가려씨는 2012년 10월 30일 입국한 뒤 국정원의 합동신문센터에서 법에 규정된 최장 6개월간 머물렀습니다. 6개월 동안 달력도 없는 방에 갇혀서 CCTV로 24시간을 감시당했다고 폭로한 바 있지요. '오빠는 간첩이다' 자백을 강요받았고, 이를 거절하면 주먹으로 치거나 뺨을 때렸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거나 전기고문실로 데려가겠다는 협박도 받았다고 했지요.

국정원은 그녀를 상대로 '오빠가 간첩이라고 자백하면 김현희(대한항공 858기 폭파범)처럼 한국에서 잘살게 해주겠다'고 회유했고, 끝내 유씨는 독방에 갇혀 지낸 지 한달여만에 '오빠는 간첩'이라고 허위자백을 한 뒤 법정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합신센터에서 나온 뒤 적당히 머물 곳이 없었던 유씨는 인권변호사 이재정씨의 집에 며칠간 머물렀다고 합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유씨는 거의 잠을 못 잤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울었으며 누구도 믿지 못하는 등 매우 불안해했다는 겁니다. 고문후유증 같다고 이 변호사는 전했습니다.

둘째, 남 원장이 과학화 된 수사기법을 발전시켜 대공 수사능력을 한층 더 강화하겠다고 밝힌 취지는 무엇일까요? 조력자를 동원한 간첩 증거조작이 사실로 드러난 마당에 과학화된 수사기법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의 선거개입의혹사건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사건입니다. 국정원 직원들이 각종 사이트에 댓글을 달거나 트위터, 온갖 커뮤니티 사이트 등을 다니며 조직적으로 여론조작에 가담한 증거가 나왔지요. 당시 이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의 수장 원세훈 전 원장은 재판 중입니다. 이 사건의 결과로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문제가 됐고 결국 국회에 국정원 개혁특위가 마련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주된 논점 가운데 하나가 대공수사권 폐지였습니다.

정치권에선 국정원이 정보취급과 수사권을 동시에 쥔 것은 매우 기형적이라고 질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 국회 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국정원 개혁문제가 물 건너갔습니다. 정치권은 남 원장의 이 같은 주장을 '언어도단'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현재로선 정치권이 국정원의 무소불위의 힘을 견제할 재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5일 남 원장의 사과문 발표 이후 곧바로 이어진 박근혜 대통령의 유감 표명, 그리고 재발방지 노력에 대해 매우 불쾌해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이 문제의 책임이 있는 남 원장에 대한 해임이 단행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정의당도 같은 입장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남 원장에 대한 파면촉구 결의안을 낼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야권의 해임 결의안 통과가 가능할까요? 그래서 정치권에선 151석이 아닌 한 나머지는 모두 똑같다는 자조가 나도는 모양입니다.

영화 <변호인> 그리고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의 진실'을 접한 다수의 시민들은 영화 <변호인>이 결코 과거사가 아닌 현재라는 사실에 소름끼쳐 합니다. 영화 주인공들이 당했던 고문과 불법구금, 변호인 접견금지 등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다는 점에 깜짝 놀랍니다. 그것이 이 사건의 본질입니다.

정권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간첩 정도는 조작해낼 수 있다는 끔찍한 현실. 그것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최고위원의 말대로 "우리 모두 어느날 갑자기 국밥집 아들이 될 수 있다"는 말처럼, 이 엄청난 인권과 민주주의 파괴 사건을 그저 국정원장의 몇 마디 사과로 끝내도 되는 걸까요? 박근혜 대통령의 말대로 재발방지는 가능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태그:#남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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