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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킨타나르 한 건물에 그려진 돈키호테의 모습
 스페인 킨타나르 한 건물에 그려진 돈키호테의 모습
ⓒ CU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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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싸우는 가녀린 늙은 기사 돈키호테를 기억하는가?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하늘의 별을 따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자던 돈키호테는 당신에게 어떤 이미지인가?

지난 8일(현지시각)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무대가 된 스페인의 라 만차(La mancha) 지역 작은 도시 킨타나르(Quintanar)의 한 빌딩 벽에 돈키호테가 등장했다. 그런데 이 돈키호테의 모습, 그동안 우리가 생각했던 그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한편으로 전투적이기도 한 색다른 돈키호테의 등장으로 인해 벌어지는 논란도 만만치 않다.

'세상에서 가장 큰 돈키호테'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높이 50m, 면적 500㎡의 돈키호테 벽화를 둘러싼 이야기를 들어보자.

2013년 10월, 이 작은 도시 킨타나르에서 시작된 첫 벽화 프로젝트는 돈키호테의 영원한 연인 '둘시네아'에 대한 것이었고, 프로젝트를 진행한 단체는 CULM(Construir Un Lugar Mejor sin destruir lo que tenemos, 기존에 있는 것을 파괴하지 않고, 더 나은 공간을 창조하기)이다.

거대 벽화를 꿈꿨던 청년, 드디어 꿈을 이루다

돈키호테의 영원한 연인 둘시네아 벽화
 돈키호테의 영원한 연인 둘시네아 벽화
ⓒ CU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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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체를 만든 이는 예술사를 전공했는데, 도심예술에 관심을 갖고 여러 나라에서 활동한 이 지역의 젊은 청년 산티아고다. 최근 기자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산티아고는 "외국에서 공부할 때, 다른 나라의 벽화 예술을 보면서 언젠가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이런 프로젝트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 산티아고는 몇 년간 꾸준히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제안했지만, 현실화시키기가 쉽지 않았다고.

"둘시네아 벽화를 그린 건물은 1968년 도시 건물 높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을 때 건설된 건물로 지역 경관을 망친다는 이유로 항상 철거가 고려되고 있는 건물이었다. 철거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 건물을 창조할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했고, 여기에서 CULM에 대한 아이디어도 나왔다. 그 아이디어와 벽화 프로젝트를 연결시켜 탄생한 것이 바로 둘시네아 벽화다."

면적 350㎡의 둘시네아는 유명한 아르헨티나 벽화예술가 밀루(Milu Correch)에 의해 탄생됐는데, 이는 도시의 새로운 이미지가 된 것은 물론 주민들 사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CULM의 프로젝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둘시네아를 계기로 바로 다음 프로젝트인 돈키호테 벽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돈키호테 프로젝트는 규모만큼이나 진행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예산은 크라우딩 펀드를 통해 전부 충당해야 했다. 펀드를 이용해 3개월간 1만1500유로(한화 약 1650만 원)를 모았지만, 여유롭게 작업을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시청에 벽화를 그릴 건물에 대한 허가를 받고 프로젝트를 홍보하고 진행하는 모든 과정이 산티아고와 젊은이들 몇 명으로 이뤄진 CULM의 몫이었다.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그런 만큼 잊지 못할 순간들도 많았다. 크라우딩 펀드를 통해 어렵게 1차 목표금액을 모았을 때, 마드리드의 한 예술가 기업이 공식 후원을 결정해 주었을 때, 칠레 벽화예술가 인티(INTI)가 기꺼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를 결심해 주었을 때 등 힘든 과정을 잊게 해주는 순간들이 많았다."

벽화 완성 뒤 좌파 논란에 휩싸인 돈키호테

돈키호테 벽화의 밑그림 작업 모습
 돈키호테 벽화의 밑그림 작업 모습
ⓒ CU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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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벽화가 공개된 뒤 돈키호테는 다른 논쟁에 휘말렸다. 킨타나르 시청 쪽에서 돈키호테 벽화의 수정을 요구한 것이다. 시청측이 수정을 요구한 이유는 돈키호테의 입을 가린 수건과 그 위에 새겨진 15M(분노한 시민들로 알려져 있는 스페인 거대 시민운동) 마크, 심장에 꽂힌 칼, 별 등의 이미지가 너무 좌파적이고 선동적이어서 돈키호테를 형상화한 벽화라고 볼 수 없고, 시민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CULM은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허가 받을 당시 이미 기본 밑그림을 보여준 상태였고, 작가의 자유에 벽화를 전적으로 맡긴다는 내용으로 허가를 받은 상태"라고 시측의 수정 제안을 거부하며 이를 지지하는 의견을 모으고 있다.

벽화를 그린 인티(INTI)는 자신의 그림이 논란이 되자, 벽화의 돈키호테 심장에 깨어진 금을 그려 넣었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이 상황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아쉬움을 나타낸 것이다"라고 그 의미를 밝혔다.

일련의 상황에 대해 산티아고는 "나에게 이 돈키호테는 세계에서 가장 큰, '라 만차의 돈키호테'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며 "내가 생각하는 돈키호테는 자신의 신념대로 사는 것이 힘들었던 시대에 자신을 믿고, 지치지 않고 이상을 찾아 여행했던 지극히 저돌적인 바로 지금 벽화 속의 돈키호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거의 돈키호테가 아니라 바로 지금의 돈키호테이다"라고 덧붙였다.

돈키호테 벽화의 모습
 돈키호테 벽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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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돈키호테 벽화에 대한 논란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또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44명의 예술가와 함께 40개의 벽화를 8개 마을에 그리는 프로젝트를 기획중이란다.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것을 하는 것이 CULM의 꿈이다."

혹 여행길에 라 만차를 찾는다면 아마 이 거대 돈키호테가 당신을 맞을 것이다. 라만차의 한 작은 도시에 우뚝 그려진 '2014년의 돈키호테'는 그렇게 또 다른 자신의 여행을 시작하며, "당신도 이제 당신의 별을 찾는 길을 떠나라"고 우리의 등을 떠밀 것이다.

벽화 완성 뒤 시측이 수정을 요구하자, 벽화를 그린 작가는 돈키호테의 심장에 금이 간 것처럼 그려놓았다.
 벽화 완성 뒤 시측이 수정을 요구하자, 벽화를 그린 작가는 돈키호테의 심장에 금이 간 것처럼 그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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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톤키호테, #벽화, #CU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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