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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비가 많이 들어 '변화의 시나리오'에서 '나무'로 이름이 바뀌었다.
▲ 카페 나무 간판 간판비가 많이 들어 '변화의 시나리오'에서 '나무'로 이름이 바뀌었다.
ⓒ 하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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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커피, 한 뼘 가게, 청년 보통씨, 별의별상담소, 주님 오신 날…. 웬 문화센터 프로그램들이냐고? 사실 이 모든 것은 부산 반송 지역의 작은 카페에서 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다. 부산 반송 지역 지하철 4호선 영산대역 앞에는 청년의,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카페 '나무'가 있다.

8일 카페 나무를 찾았다. 2011년 '희망세상'이라는 지역공동체에서 마을기업으로 시작한 카페 나무. 처음에는 도시락과 카페, 두 가지 사업을 했다. 하지만 카페 직원들은 모두 가정을 책임지는 엄마들. 그러다보니 모두 저녁 시간이 되면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러 들어가야 했고, 오후 7시에는 카페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주요 손님이라고 볼 수 있는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많이 올 시간에 카페 문을 열 수 없었다. 그게 결국 적자로 이어졌고, 3년간의 악순환 끝에 카페 나무는 변화를 선포했다.

가장 먼저 바뀐 건 카페 직원이었다. 반송 지역의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차출된 사서 손수진씨는 '손마담'으로 이름을 바꾸고 청년들을 위한 공간 마련에 나섰다. 느티나무도서관은 희망세상에서 2007년에 만든 주민 도서관이다. "열정적인 혹은 매력적인"이라는 말을 줄여 만든 '열매청년'들과 함께 카페 나무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거다.

부산의 유명한 카페부터 대안공간까지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했다. 그 결과 이윤을 선택할 것인지 청년을 위한 공간을 만들지 고민이 생겼다고 한다. 결국 후자를 선택하면서 카페 나무는 2014년 2월, 청년들이 만들어나가는 대안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손마담'의 손끝에서 새롭게 태어난 청년카페 '나무'

1평 남짓한 공간에서 청년들이 직접 만든 물건들을 팔고있다.
▲ 한뼘가게 1평 남짓한 공간에서 청년들이 직접 만든 물건들을 팔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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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직원의 월급도 잘 안 나오고, 간판 제작비가 없어 '변화의 시나리오'라는 긴 이름을 버리고 '나무'라는 짧은 이름을 선택할 만큼 팍팍한 사정이지만, 카페 나무에서는 다양한 무료 프로그램들을 진행 중이다.

'손마담' 손수진씨는 그중 핫(?)하다는 프로그램들을 소개해줬다. 첫 번째로는 더+커피. 서스펜디드 방식으로, 청소년들부터 자녀를 둔 주부들까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커피를 마실 돈이 없는 사람을 위해 얼마의 돈을 가게에 미리 지불하면 그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한테 커피를 제공하는 것이다.

부담 없이 50원을 적립하는(?) 사람부터 통 크게 5만 원을 낸 사람까지, 작은 정성이 모여 꽤 큰 돈이 됐다. 이 돈으로 반송 지역 결식청소년들은 월 1회 자유롭게 카페 나무의 음료를 마실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카페 안에 1평 정도의 크기로 있는 한 뼘 가게. 청년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만든 물건을 팔아서 용돈을 벌어가는 공간이다. 그 중 자신의 이름을 달고 파는 '은비쿠키'가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손마담이 은비라는 청소년한테 "쿠키 만들어보지 않을래?"라고 제안을 해서 그 이후로 판매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처럼 한 뼘 가게에서는 자격증 없이도 판매자가 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청년들이 만들어가는 잡지인 <청년 보통씨>. 3월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에 기자도 참여하고 있다. 청년 25명 정도가 약 6개월 동안 하나의 잡지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매주 수요일 7시부터 9시까지 기초 글쓰기부터 인터뷰, 사진 찍는 법까지 자세하게 배운다.

자격은 따로 없다. 처음 글을 써보는 사람부터 많이 써본 사람까지 모두 가능하다. 아직 프로그램 초반이지만 종종 보이는 숨겨진 문장가들과 진솔한 청년들의 이야기 덕에 수업시간마다 열정이 더해지고 있다. 카페 나무는 청년들에게 스펙 걱정 없이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 외에도 영화를 함께 보고 감상을 나누는 '마실극장'이나 심리학과 학생이 상담을 해주는 '별의별 상담소' 같은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이렇게 다양한 프로그램 때문에 일반 손님들이 카페 입구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특히 영화를 보는 마실극장 프로그램이나 잡지를 만드는 청년 보통씨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는 카페 입구에만 와도 수십 개의 눈이 쳐다보니 손님들이 부담스러워할 만도 하다. 매출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가는 손님은 아쉽지만 그 덕에 카페 나무가 얻은 것들도 많다. 청년들의 빠른 입소문 덕에 더 많은 프로그램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스펙 걱정 버리고 누릴 수 있는 대안공간으로 쑥쑥 자라라~ 

"나무 총회가 끝나고 10분정도가 꽃나무 사진으로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더라고요"
▲ 후원회원들을 위해 준비한 꽃나무들 "나무 총회가 끝나고 10분정도가 꽃나무 사진으로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더라고요"
ⓒ 하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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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반송의 달콤한 라디오'라는 방송, 청소년들을 위한 만화 인문학 강좌, 주변 자취생들을 모아 밑반찬을 같이 만드는 모임, 주변 중학교 학생들을 위한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참신한 프로그램 아이디어는 열매청년들의 정기적인 모임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수다를 떨다가도 불쑥 튀어나온다고 한다.

그 순간부터 카페 나무 SNS를 통한 홍보를 시작하고, 참여하겠다는 사람이 3명만 있으면 프로그램은 만들어진다. '되면 하고 아니면 말고'라는 마인드지만, 아직 단 하나도 포기한 프로그램이 없고 오히려 너무 늘어서 관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카페 나무의 또 다른 특별한 점은 후원회원이 있다는 것이다. 월 5000원부터 후원이 가능한데, 5일에는 후원회원 37명과 함께 나무 총회도 열었다. 나무라는 이름에 걸맞게 꽃나무를 준비해 선물도 하고, 카페 나무에 대해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나무 총회가 끝나고, 열 분 정도가 꽃나무 사진으로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바꿨더라고요. 이럴 때가 가장 뿌듯한 순간이에요"라는 손마담은 사실 후원회원을 '후원'해주고 있다. 후원금액을 모아 나무를 운영하는데도 쓰지만, 회원들에게 더 많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생일 때는 카드를 써 주고 월 1회 음료도 제공한다. 후원회원은 나무의 유료 프로그램을 반값에 이용할 수 있다 보니, 고등학생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사람들이 후원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카페 나무에서 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무료지만 현재 우쿨렐레 수업은 유료로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나무의 목표는 어떤 도움 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꿈이 있는 청년이든 없는 청년이든, 청년들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아직 3개월밖에 안 됐지만 여러 프로그램과 SNS를 통해서 카페 나무가 핫(?)해진다는 게 느껴진다니, 앞으로 뚝심 있는 청년들의 대안공간으로 자라날 것을 기대해봐도 좋을까?

취재를 끝내고 '은비쿠키'에서 머핀을 하나 구입했다. 앞으로 성장할 반송의 나무를 꿈꾸면서.

덧붙이는 글 | 하선정 기자는 오마이뉴스 1기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카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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