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는 대를 이어 스타플레이어로 활약하는 '부자 선수'가 많다. 바비 본즈와 배리 본즈는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300홈런-300도루'를 달성했고 셰실 필더와 프린스 필더는 홈런왕 부자다. 캔 그리피 시니어와 주니어는 같은 날 같은 경기에서 홈런을 친 부자로 유명하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부자가 대부분 같은 포지션에서 활약했다는 점이다. 본즈 부자와 그리피 부자는 호타준족을 자랑하는 외야수였고 필더 부자는 1루와 지명타자로 활약하는 거포다.

하지만 이들과는 달리 아버지와 전혀 다른 포지션에서 성장해 메이저리그에 정착한 아들도 있다. 류현진의 팀동료로 국내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LA 다저스의 내야수 디 고든이다.

부실한 방망이와 불안한 수비, 발만 빠른 1툴 플레이어 고든

디 고든의 아버지는 메이저리그에서만 21년이나 활약했던 우완 강속구 투수 톰 고든이다. 전광석화 같은 강속구를 던진다고 해서 '플래쉬'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투수였다.

선수 생활 초반에는 선발 투수, 30세 이후로는 불펜 투수로 활약한 톰 고든은 올스타 출전 3회와 구원왕 1회의 경력을 자랑한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만큼 엄청난 업적을 남기진 못했지만 통산 138승 158세이브를 기록하며 선발과 구원에서 모두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했다.

하지만 톰 고든의 아들인 디 고든은 투수 대신 내야수의 길을 택했다. 2008년 다저스의 4라운드 지명을 받은 고든은 3년의 마이너 수업을 받은 후 2011년 타율 .304 24도루를 기록하며 빅리그에 안착했다.

2012년에는 다저스의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차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 했지만 7월 5일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손가락 부상을 당하며 전력에서 이탈하고 만다(고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다저스는 트레이드를 통해 헨리 라미레즈라는 거물 유격수를 영입했다).

작년에도 고든은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가며 38경기 출전에 그쳤다. 빠른 발은 리그 정상급이지만 부정확한 타격과 불안한 수비, 게다가 빅리그 최경량 선수인 만큼 장타력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고든은 반쪽짜리 선수로 빅리그 4년차가 됐다.

2루 전향 후 날개 단 고든, 4할 타율에 빅리그 도루 전체 1위

스토브리그에서 다저스 전력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FA자격을 얻은 주전 2루수 마크 엘리스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을 체결하며 다저스의 2루 자리에 구멍이 생긴 것. 다저스는 쿠바 망명 선수인 알렉산더 게레로를 영입했지만 작년의 야시엘 푸이그가 그랬던 것처럼 빅리그 경험이 전무한 게레로에게 덥썩 주전 자리를 맡길 순 없었다.

결국 다저스는 유격수 수비에서 약점이 있고 공격력에서 라미레즈를 능가할 수 없는 디 고든을 2루로 전향시켰다. 고든 입장에서도 라미레즈의 백업이나 대주자 요원에 만족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포지션에서 주전 경쟁을 벌이는 쪽이 한결 나은 선택이었다.

2루수로 변신한 고든은 상대 투수가 우완일 경우 경기에 투입되는 '플래툰 플레이어'로 시즌을 시작했다. 타순도 주로 투수 바로 앞의 8번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고든은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기회를 완벽하게 살리고 있다.

다저스가 치른 13경기 중 11경기에 출전한 고든의 시즌 성적은 타율 4할(40타수 16안타) 1홈런 5타점 9도루. 타율은 내셔널리그 5위(팀 내 1위)에 랭크돼 있고 도루는 메이저리그 전체 1위다.

특히 14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는 1번타자로 출장해 무려  4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는 폭발적인 주루플레이를 선보이기도 했다. 여전히 좌완 선발이 나올 때는 선발 명단에서 빠지곤 하지만 시즌 초반 고든의 활약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국내 팬들에게 더욱 반가운 사실은 고든이 류현진과도 비교적 좋은 궁합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고든은 올 시즌 류현진이 등판한 4경기에서 타율 5할(14타수 7안타) 3득점 3도루를 기록하며 류현진의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수비에서는 어설픈 장면을 종종 연출하는 등 보완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하지만 고든이 시즌 초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활약으로 다저스의 전력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활약이 더 길게 이어질수록 국내 팬들에게도 더 큰 사랑을 받는 선수로 거듭날 것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메이저리그 LA다저스 디 고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