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재벌닷컴>이 2013회계년도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2148개사의 연간 보수 5억 원 이상 등기임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보수가 5억 원 이상인 등기임원 수는 699명으로 나왔다. 이중 10억 원이 넘는 등기임원은 모두 292명이었다.

100억 원대 보수를 받는 사람도 6명이나 되었다. 그중 최고액 연봉자는 301억 원을 기록한 에스케이그룹 최태원 회장이었다고 한다. 주5일 근무로 계산하면 일당만 1억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배당까지 합한 최 회장의 소득액은 586억 원이었다. 입이 쩍 벌어지는 액수다. 물론 연봉과 배당을 합산한 재벌 총수 소득 1위인 삼성 이건희 회장의 1078억 원에 비하면 어림도 없는 돈이지만.

이들 모두 거대 회사의 최고 경영자이니 그 정도 돈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그들이 회사에 생긴 이런저런 골치 아픈 일을 처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회사 수익의 어디까지를 경영진의 능력 덕분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그룹 총수 등 대기업 경영진들은 회사의 수익 실적이 나빠도 고액 연봉을 받아 챙기는 경우도 많다. 대기업 임원들의 고액 연봉에 대해 비판 여론이 거센 배경이다.

더 큰 문제는 경영진의 고액 연봉 규모가 해마다 늘어나는 데 반해 평범한 직장인들은 월급을 포함한 전체 소득에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사회 전체적으로는 부자와 가난뱅이 사이의 격차가 커지고, 상대적 빈곤층의 삶이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 일반인이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고, 이를 바탕으로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여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평범한 우리가 보통의 사회인으로 살아가기에 이 시대는 삭막하기만 하다.

일본 사이타마대학의 명예교수이자 원로 생활경제학자인 저자 데루오카 이츠코는 <나는 사회인으로 산다>는 책에서, 그럼에도 우리가 우리 자신만 볼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리며 살 것을 힘주어 강조한다. 책 제목이 전하는 메시지 그대로 사회인으로 살자는 게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것은 어렵거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사회인으로 산다는 것은 인간 본성에 따라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일 뿐이다.

저자가 정의하는 사회인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사회를 만들어가는 개인'이다. 그의 나이가 몇 살인지, 그가 노동자인지 아닌지 등과 무관하다. 저자가 보기에, 사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사회를 만들어가는 개인이기만 하다면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청년이나 정년퇴직한 고령자, 주부, 장애인 모두 사회인이 될 수 있다.

저자가 사회인으로 사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격차사회의 확대를 문제시한다. 격차사회가 갈수록 확대되면 많은 개인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는 희망조차도 말할 수 없는 사회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개인의 만족을 전부 합한 것이 결과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합성의 오류'라는 사회현상이다. 예컨대 자동차의 대중화는 개인에게는 편리하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대중교통을 약화시키고 도로혼잡을 일으키며 지구온난화를 부추긴다. ··· 이제는 개인의 영역만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사회와의 관계, 미래와의 관계 속에서만 판단할 수 있으며 살아가는 의미와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7, 8쪽)

저자는 많은 사람이 '사회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동떨어진 '개인'이나 '회사인'으로 살아가는 이유를 자기책임론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일본의 교육이나, 조직 전체의 성과와 실적, 타조직과의 경쟁 등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회사 문화 등에서 찾는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노력하면 할 수 있다'라는 슬로건을 외치면서 은연중에 '못 하는 것은 게으르고 노력이 부족한 내 탓'을 강요하는 교사들의 태도, 장점을 키우는 게 아니라 결점을 고치는 교육뿐이어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자각하기보다 열등감을 갖기 쉬운 교육 현장의 생생한 모습은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들이다.

저자는, 원전 관련 전문기술직 회사원으로 있다가 그 일을 그만둔 다나카 마쓰히코 씨가 사회인이 된 뒤의 심경 변화를 적은 글의 일부를 길게 인용한다. 그것은 회사와 같은 조직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일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서늘하게 일깨워 준다.

원전 설계에 기여했을 때 ··· 적어도 나는 ··· 원전 건설이라는 것이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 조직의 역학은 사람의 마음을 어떤 특유한 상태로 만든다. 비판정신은 의식 아래로 내려가고, 가치판단은 정지되며, 조직의 목적-원전을 만든다는 것-을 향해 자기를 초월해버린다. (42쪽)

저자는 사회인으로서의 의식이 사라지면 미래에 대한 책임도, 희망도, 더 나은 사회로의 개혁 의지도 사라지고, 간교하고 약삭빠른 처세술만이 삶의 목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 사회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살기 힘든 곳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저자는 개인으로서의 사생활과 사회인으로서의 사회적 관계가 서로 균형을 잡을 때 사람이 가장 자기답게 살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타인을 안중에 두지 않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민주주의사회를 무너뜨리는 한 요인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사람들간의 사회적 격차나 대립, 분열과 갈등 등이 커질 때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분열된 사회를 내버려두면 커다란 폐해가 생긴다. 분열을 역이용해서 자기 세력의 확대를 꾀하는 권력자도 있고, 합의보다도 힘으로 다른 의견을 억누르는 결정이 옳다고 믿게 만드는 정치가도 나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일을 어쩔 수 없다며 무기력하게 체념해버리거나, 스스로 하나하나 쌓아올리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로 있을 수 없는 영웅이나 리더십이 나오기를 기다려 전부 맡겨버리기도 한다. (174쪽)

한때(?!)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안철수 현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안철수가 영웅이 아님을, 알 만한 사람은 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사회적 연대가 희박해진 일본 사회의 현실을 말하기 위해 저자가 드는 예화는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얼룩말과 버펄로는 사자가 습격하면 무리가 결속해 싸워서 사자를 쫓아버린다고 한다. 하지만 누우는 치타의 습격을 받아도 뿔뿔이 흩어져 도망칠 뿐 치타에게 습격당한 동료를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습격당한 것이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식으로 또 다시 풀을 뜯는다는 것이다.

목이 날아간 일본의 누우가 회사 정문 앞에서 전단지를 돌리고 있어도, 며칠 전까지 동료였던 사람이 건네는 전단지초자 받으려 하지 않고 지나쳐버리는 일본의 누우떼들. 이래서는 노동자 전체의 지위와 권리가 지켜질 리 없다. (201쪽)

노동자뿐이랴. 이 정글 같은 세상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만을 유일한 살 길인 양 여기며 동분서주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이들은 친구를 딛고 더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직장인들은 동료를 제치고 더 많은 연봉과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가.

저자는 인간의 본성을 사회성에서 찾는 발달심리학과 여러 인접 과학의 예를 다수 들고 있다. 하지만 굳이 그런 예를 빌리지 않더라도, 개인이 사회와 분리할 수 없는 사회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힘주어 강조하는 것처럼, 개인이 사회를 바꾼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낯선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 관계 맺기에 힘써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사회인으로 산다>(데루오카 이츠코 지음, 조한소 옮김 / 궁리 / 2014. 3. 25. / 273쪽 / 15,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나는 사회인으로 산다 - 연대와 공존으로 나아가는 유쾌한 삶의 방식

데루오카 이츠코 지음, 조한소 옮김, 궁리(2014)


태그:#<나는 사회인으로 산다>, #데루오카 이츠코 지음, #조한소 옮김, #궁리, #사회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